‘제주 4.3 폭력진압 주역’을 유공자 등록한 보훈부 vs "취소하라"는 李대통령

보훈부 “합법적 근거로 등록” … 법 개정 등 후속조치 따르려나

최영태 기자 2025.12.15 12:42:39

이재명 대통령이 12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교육부-국가교육위원회-법제처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주 4.3사건 당시의 악역 중 한 명으로 4·3단체들이 지목하는 고 박진경 대령에게 이재명 대통령 명의의 국가유공자 자격증이 지난 달 수여된 이후 한달만에 4.3단체들의 규탄에 따라 15일 이 대통령이 “취소를 검토하라”고 보훈부에 지시해 향후 그 처리 과정이 주목된다.

박 대령은 4.3사건 발생 뒤 한 달쯤 지난 시기인 1948년 5월 당시 제주도 소재 9연대장으로 부임한 뒤 취임사에서 “제주도민 30만을 희생시켜도 무방하다. 민간인과 폭도의 구별이 곤란하다”고 말해 양민 학살의 책임자라는 비판을 4.3 관련 단체들로부터 받아왔다.

그가 부임한 9연대는 지휘자와 병사 대부분이 제주도 주민으로 이뤄진 이른바 ‘향토 부대’였다. 박 대령의 전임자였던 김익렬 연대장 역시 제주도 사람이었고 그는 4.3 발발 뒤 군-경과 이른바 ‘산 부대’와의 충돌 상황에서 협상으로 사태를 해결하려 했다.

 

지난 11월 4일자로 유가족에게 발급된 고 박진경 대령에 대한 국가 유공자 증서와 박 대령의 사진. (제주방송 화면 캡처) 

 

김 연대장은 산 부대 측에 “모슬포항에 나포되어 있는 십여 척의 일본 어선 가운데 1척을 제주도 탈출용으로 제공하겠다”고 제안했고, 이에 산 부대 대장 김달삼은 “귀순과 무장해제가 끝나 모든 약속이 준수-이행된다면 나는 당당히 자수하고 모든 책임을 지겠다. 그리고 법정에서 이번 행동이 자위를 위한 정당방위였다는 사실과 경찰의 압제-만행을 만천하에 공표하겠다”고 답변해 타협이 이뤄지는 듯 했다.

그러나 당시 미 군정은 김 연대장을 즉각 해임하고 경남 남해 출생으로 일본군 소위 출신의 박진경으로 9연대장을 교체했으며, 이후 4.3사건의 보복과 학살이 본격화됐다.

 

제주시 한울누리공원 인근 도로변의 박진경 추도비를 제주4·3 관련 단체와 시민단체들이 2022년 ‘역사의 감옥에 가두다’라는 제목과 함께 감옥 형태의 조형물로 들러싼 모습. 철창 조형물은 윤석열 정부 당시 철거됐다.(사진=연합뉴스)


해임된 김 전 연대장은 “우리 방식으로 수습했다면 참혹한 유혈 사태는 편했을 텐데 미군과 경찰이 이를 망가뜨렸다”고 규탄했다.

초토작전을 밀어붙인 박 연대장은 부임 한 달여 만에 대령으로 승진했다. 6월 18일 대령 진급 축하연을 마치고 숙소에서 잠을 자던 중 9연대 부하들에게 암살당했다. 이후 그는 1950년 12월 을지무공훈장에 추서됐다.

박 대령을 암살한 9연대 병사 41명은 무기, 탄약, 장비를 대량 탈취해 산 부대로 합류했다.

고 박 대령은 전몰군경으로서 기존에 이미 원호대상자(현재의 국가유공자)였지만 올해 을지무공훈장 수훈을 근거로 무공수훈자로 다시 국가유공자로 등록됐다고 보훈부는 밝혔다.

이러한 보훈부의 결정에 따라 이재명 대통령 명의의 국가유공자 증서가 지난 11월 4일 유가족에게 전달됐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4.3 관련 단체들과 제주도민들이 강력 반발했다.

 

제주4·3 당시 강경 진압을 주도한 고(故) 박진경 대령이 국가유공자로 등록된 사실이 알려진 이튿날인 11일 오후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이 제주4·3평화공원 위패봉안실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에 권오을 보훈부 장관은 사과했고, 이어 이 대통령이 국가유공자 지정의 취소 검토를 지시하기에 이르렀다.

권 장관은 사과를 하면서도 유공자 등록 취소와 관련해서는 “절차를 모두 검토했지만, 그것은 입법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다. 현 제도에서는 등록을 취소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힌 바 있어, 이 대통령의 지시가 앞으로 어떻게 처리될지는 두고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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