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오한나의 피아노 리사이틀은 홀을 가득 메운 관객들을 과거 '20대 낭만의 시대'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레퍼토리에 기인한다. 쇼팽과 슈만, 그리고 브람스라니.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낭만의 골수를 건드린 작곡가들을, 그것도 그 채도와 강도가 점점 강해지는 쇼팽, 슈만, 브람스의 순서로 진행된 연주는 관객들을 열정의 20대 낭만으로 몰고 갔기 때문이다.
두번째 이유는, 이날 연주된 곡이 모두 '작곡가들이 20대에 만든 곡'이라는 것이다. 피아니스트 오한나가 첫 곡으로 연주한 쇼팽(F. CHOPIN)의 발라드 1번(BALLADE NO 1. OP. 23, G MINOR)은 그가 25살에 완성한 곡이고, 두번째로 슈만(R. SCHUMANN)의 사육제(CARNAVAL OP.9)도 25살에 완성한 곡이다. 마지막에 휘몰아치듯 강렬하게 연주한 브람스의 피아노 소나타 3번(PIANO SONATA NO. 3 IN F NINOR, OP.5) 역시 브람스가 20살 되던 해에 작곡한 5악장의 대곡이다.
쇼팽 발라드의 첫 소절은 감동
피아니스트 오한나가 건반을 응시하다 적막을 가른 쇼팽의 발라드 1번 첫 소절을 잊기는 쉽지 않다. 웅장한 첫 시작 부분 이후에 이어지는 조용한 왈츠풍의 초반부는 난해한 부분으로 알려져 있지만 관객들은 아마도 숨을 멈추고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뭉클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 곡은 폴란드, 조국을 사랑한 쇼팽의 애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 당시 쇼팽이 곡을 쓸 무렵 겨울에 폴란드 혁명이 일어나고, 혁명이 실패로 끝나자 쇼팽은 망명인이 되어 파리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오한나의 연주에서 조국을 잃고 막막했던 쇼팽의 좌절과 비통함이 잘 드러났다.
백미는 슈만의 '사육제' 전곡 연주
"오한나 자신의 내면을 표현한 듯"
이번 리사이틀의 백미는 슈만이었다. 피아니스트 오한나는 관객들이 쉽게 들어보기 어려운 슈만의 사육제(CANAVAL OP.9) 20곡을 완주했기 때문이다. 이 곡은 특히 문학적이고 숨겨진 의미가 다양한 곡이어서 전체적으로 이해하기가 난해한 곡이다. 이성 중심의 고전에 반기를 든 20대 답게 슈만의 사육제는 질풍노도를 연상케 했다. 마치 '카스파 데이비드 프리드리히'의 1818년 작 회화 속,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가 바라보는 안개바다와 같은 곡이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곡의 첫 시작에 A, E-FLAT, D, B-FLAT의 네 음이 나오는데, 이 음들은 작품 전체를 통해 나타나서 반복되는 모티브로 연결돼 있다. 앞의 음을 독일어로 읽으면 '아슈(ASCH)'가 되는데 이는 슈만이 열렬하게 사랑했던 에르네스티네라는 소녀가 살던 곳이다. 사육제는 이처럼 중의적인 의미가 있는데다 대중에게 너무나 어려운 곡이어서 슈만 생전에는 거의 연주되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피아니스트 오한나는 이날 5,6악장인 오이제비우스(EUSEBIUS)와 플로레스탄(FLORESTAN)을 연주할 때는 마치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 듯 내성적이고 열정적인 대조적 격렬함을 잘 살렸다고 평가할 수 있다.
브람스의 피아노 소나타 3번 피날레
이성과 감성의 균형을 잡는 '운명 모티프'
마지막 곡인 브람스의 피아노 소나타 3번은 이번 피아니스트 오한나의 리사이틀을 마무리하는데 손색이 없는 곡이었다. 시작부터 압도되는 웅장함, 피아노의 전 음역을 아우르는 화음의 역동적인 움직임은 마치 큰 파도가 휩쓰는 듯한 울림 속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단단한 소리의 울림과 구조를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베토벤 오마주인 베토벤 교향곡 5번의 '운명 모티프'는 다시 감성과 이성의 균형을 생각하게 만들었고, 마치 20대의 질풍노도가 정신을 차리는 듯 리사이틀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피아니스트 오한나의 리사이틀은 2024년을 접는 12월 말, 관객들에게 다시 '20대의 낭만'을 찾도록 에너지를 주는 연주회였다. 마치 새롭게 밝아 올 2025년은 쇼팽처럼 뜨겁게 조국을 사랑하고, 슈만처럼 강렬하게 연인을 사랑하고, 브람스처럼 대담하지만, 이성과 감성의 균형을 맞추면서 20대의 낭만과 같은 '최고의 한 해'를 보내자는 의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피아니스트 오한나는 누구?
피아니스트 오한나는 2023년 아트코리아 방송 문화예술대상제에서 음악부분 피아니스트 대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세종대학교 융합예술대학원 겸임교수이면서 한국피아노듀오협회 회원 활동을 통해 전문 연주자로서 음악적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ITALY EUTERPE 국제 피아노 콩쿨 1위, ITALY VIETRI SUL MARE 콩쿨 2위를 하기도 했다. 예원학교, 서울예고, 연세대 음대 피아노과 실기 우수 장학생으로 졸업했으며,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립음대 재학 당시 ANNA RUTHS 장학재단 장학생 오디션에 선발돼 석사과정 DIPLOM을 졸업했고, 자브뤼켄 국립음대에서 박사과정을 만장일치 최고 만점으로 졸업했다.
(CNB뉴스= 김진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