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안에 있는 것,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그것을 그려낼 때, 보다 너그럽고 포용적인 그림이 될 것이라고, 아무도 배척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11월 6일부터 삼청동 갤러리현대에서 개인전 'RUCID DREAMS'를 열고 있는 작가 이진한(B. 1982)은 너무도 사적이고 깊숙한 자신의 속 이야기를 풀어내지만, 독특하게도 작가는 보편성을 표방하고 있다. 과연 가장 개인적이고 사적인 깊은 이야기가 보편성을 가질 수 있을까? 이번 전시는 12월 22일까지다.
"깊숙한 사적 주관성의 보편성"은 작가가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큰 방향이다. 작가는 "자신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것을 그려낼 때, 아무도 배척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작가의 그러한 마음과 의도는 작품에 표현돼, 관람객을 설득하고 보편화하고자 한다.
갤러리현대 관계자는 "전시 제목 《Lucid Dreams》는 개인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를 꿈과 현실이 혼합된 듯한 장면들로 선보이며 인간 내면의 보편적 울림을 발현하는 이진한의 작업 세계 전반을 은유한다."라고 언급했다.
이진한 작가는 누구지?
작품에 대해 논하기 전에 먼저 이진한 작가가 누구인지 알 필요가 있다. 작가는 2021년 런던 UCL 슬레이트 미술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마쳤다. 한국에서는 홍익대학교를 졸업하고 이후 런던 세인트 마틴과 골드스미스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따라서 그가 미술사와 미학 등 자신만의 현대미술 개념과 관련된 부면에서, 많은 고민과 시도가 있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새로운 작가를 찾고 있는 한국 미술계의 중요한 시점에, 갤러리현대가 이진한 작가의 개인전을 개최하고 있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해도 좋을 듯 싶다.
2008년부터 2021년 영국서 작업
2021년 귀국 후 서사적 연결과 융합 시도
이진한의 보편적, 포용적 회화관 드러나
이번 전시는 이진한 작가가 영국에서 작업한 시기인 2008년부터 2021년,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작업한 2021년 이후의 작업으로 나눠 볼 수 있다.
그의 작업 세계 전반에 걸쳐 소개되는 발, 해와 달, 사랑, 바이올린, 첼로 등 다양한 모티프도 밀고 당기는 공간감 넘치는 붓질만큼이나 유동적으로 변주하고 확장되어 왔다. 그런데 2021년까지의 작품들에서는 각각 하나의 모티프로 표현돼 있다. 이는 작가와 그를 둘러싼 타국의 언어와 문화가 타자 대 타자의 관계로 드러나며 일상 속 특정한 경험을 하나의 모티프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2021년 귀국 후에는 간 등장했거나 새롭게 모습을 드러내는 다양한 모티프들이 한 화면에 융합되고 그들간에 독특한 리듬과 서사적 연결성을 갖는 화면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개인적 경험, 즉 자신 내면의 가장 사적인 경험을 회화 공간에 담아냄으로써 구조화된 언어 너머에서의 보편적 소통의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이진한의 포용적 회화관을 볼 수 있다.
작가가 샤워하면서 하는 생각은?
2024년 SHOWER THOUGHT는
2014년 SHOWER THOUGHT의 변주
몇가지 작품으로 작가의 포용적 회화관을 들여다 보자. 먼저 이진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작품 2개는 '샤워생각'이다. 2014년 작품과 2024년 작품을 나란히 전시해 그간의 변주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샤워생각'은 무엇일까?
이 작품들은 허호정 평론가가 언급한 “이진한은 다양한 일화와 자기 경험에서 출발하는 주제로 그림을 그리지만 과거를 환기하는 서사성은 소거하고 현재 시제의 이미지를 보여준다”는 이진한 회화의 현재 시제에 관한 지점을 잘 드러낸다.
작가는 영어 사용자들이 레딧(reddit)이라는 웹사이트에서 사용자가 익명으로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는 섹션인 ‘Shower Thought’라는 신조어를 흥미롭게 여기다가, 그것을 직관적으로 풀이하는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말 그대로 샤워 중에 하는 생각을 떠올리며 작가는 특별한 맥락 없이 사고가 이미지적으로 흐르는 과정을 자기 경험에 비추어 보여준다.
그동안의 모든 모티프가 융합된 작품
1층에 전시된 '재판관과 첼리스트'
2008년 이후 작가의 변주를 모두 융합한 작품도 하나 있다. 바로 1층에 전시된 '재판관과 첼리스트'다. 〈재판관과 첼리스트〉(2024)는 이전 작업의 모티브들을 융합하는 한편 화가로서 작가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어두운 무대 위에서 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독백하는 연기자와 같은 작가”가 여러 명의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과거의 작가를 상징하는 것들이 한 곳에서 현재의 작가를 이루고 있는 장면을 표현한다.작품의 모티브가 되는 재판관은 전시 준비하면서 끊임없이 의심하고 평가하며 작업해 온 과정을 나타내고, 이 밖에도 발, 붓, 연필, 책 등의 모티브가 화가이자 작가, 그리고 독서가인 작가를 대변한다.
(CNB뉴스= 김진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