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수자 소설가, ‘훈민정음 해례본’ 찾아 보존한 국문학자 김태준 장편 발표

손정호 기자 2024.10.31 09:24:55

세종대왕 시기에 발간된 ‘훈민정음 해례본’. 우리나라 국보 제70호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사진=간송미술문화재단)

주수자 소설가가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해례본’을 찾아서 보존한 국문학자 김태준에 대한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31일 문학계에 의하면 희곡과 소설 등을 창작해온 주수자 작가가 국문학자 김태준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다룬 장편 ‘소설 해례본을 찾아서’를 달아실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국문학자 김태준은 대한제국 시절인 1905년에 태어나 해방 이후인 1949년 총살로 생애를 마감한 비운의 인물이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의 원리와 사용 방법 등을 다룬 고서인 ‘훈민정음 해례본’을 찾아서 보존하고, 문화재 수집가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박물관인 보화각을 설립한 간송 전형필 선생이 매입할 수 있도록 도운 사람이다. 보화각은 현재 간송미술관으로 고미술 작품과 중요한 고서 등을 보존 및 전시하고 있다.

‘소설 해례본을 찾아서’는 일본이 대한제국을 불법적으로 병합해 식민 지배를 하던 시기에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 이를 찾아 지키려고 했던 김태준 선생의 인생을 그린 작품이다. 1940년 여름부터 1949년 11월까지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 문화 말살 정책, 한국어 사용 억압, 해방 등이 이뤄진 시기에 ‘훈민정음 해례본’을 위해 공들인 노력을 소설로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조선 시대 세종대왕 재위 시절인 1446년에 발간된 책이다. 목판본으로, 우리나라 국보 제70호이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1997년 등재되었다. 한글은 창제한 인물과 날짜가 명확한 세계에서 유일한 문자로 알려져 있는데, 현재 한글의 국제적 위상에는 김태준 선생의 노력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소설 해례본을 찾아서’는 ‘모래내 군 처형장’이라는 챕터로 시작한다. 실제로 김태준 선생은 일제 시대에 훈민정음 보호와 조선 소설 발굴 및 체계화 작업에 큰 역할을 했지만, 사회주의적 민족운동 활동으로 1949년 서울 수색 근처에서 총살당해 생애를 마감했다. 이후 6개월 뒤에 6·25전쟁이 발발했다.

출판사 측에 의하면 1940년 명륜학원 강사였던 김태준 선생은 자신의 수업을 듣던 경북 안동 출신 제자 이용준으로부터 ‘훈민정음 해례본’으로 보이는 고서를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직접 안동으로 내려가 그 고서가 기록으로만 남아있던 ‘훈민정음 해례본’인 것을 확인한다. 김태준은 그해 한글학자들에게 ‘훈민정음 해례본’ 번역을 의뢰했고, 그 내용이 조선일보와 잡지 등에 공개되도록 했다.

김태준 선생은 조선 시대 문학사를 체계화한 작업으로도 평가를 받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주로 활동한 김태준 선생은 조선어문학회를 결성해 활동했으며, ‘김태준의 조선소설사’ 등을 현재도 서점에서 찾을 수 있다. 조선 시대에 매우 천대받던 소설을 문서 속에서 발굴하고 체계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필맥에서 나온 ‘김태준의 조선소설사’에는 ‘금호신화’ ‘홍길동전’ ‘장화홍련전’ ‘춘향전’ 등을 시기별로 문학비평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 국어국문학자인 김태준의 역할이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해례본’ 보존과 체계화 작업에만 머물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주수자 소설가의 장편 ‘소설 해례본을 찾아서’ (사진=달아실)

김태준 선생은 교육자로도 활동했다. 영변농학교, 이리농림학교, 경성제국대 예과와 법문학부 중국어문학과에서 공부했다. 이후 명륜전문학교 조교수, 경성제국대학 강사 등으로 활동하고, 해방 이후에 경성대학 총장에 선출됐지만 미군정청의 인정을 받지 못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일제 시대 좌파 계열의 독립운동 활동을 했는데, 1940년부터 경성콤그룹(조선공산당 재건 경성준비그룹)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1941~1943년 옥고를 치렀다. 중국으로 망명하기도 했지만, 조국으로 돌아와 1946년 남조선노동당 문화부장으로 활동했다. 남조선노동당 간부로 문화 공작과 특수정보 지하활동을 하다가 1949년 7월 체포되어 이적간첩죄로 재판을 받고, 그해 11월 총살로 생을 마감했다.

국어국문학자 김태준을 다룬 평전도 있다. 김용직 서울대 명예교수가 집필한 ‘김태준 평전 – 지성과 역사적 상황’은 그의 우리나라 문자와 문학에 대한 기여, 논쟁적인 정치 활동 등 인생을 다루고 있다. 평전을 쓴 김용직 명예교수는 한국문학번역원 이사장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장편 ‘소설 해례본을 찾아서’를 집필한 주수자 소설가는 서울대 미대에서 조각을 전공했다. 프랑스와 스위스, 미국 등에서 살다가 국내로 돌아와 소설 집필 활동을 해왔다. 2001년 ‘한국소설’에 작품을 발표하며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소설집 ‘빗소리 몽환도’ ‘버펄로 폭설’, 희곡집 ‘공공공공’, 시집 ‘나비의 등에 업혀’ 등을 발표했다.

‘빗소리 몽환도’가 영국과 몽골에서 번역 출간되고, 연극으로도 만들어졌다. 미국 뉴욕주 10학년 교과서에 단편 ‘사과’가 실리기도 했다. 해외 유명 작가들의 짧은 소설을 번역한 ‘시대를 앞서간 명작 스마트 소설’, 남편인 권희민 삼성전자 디지털솔루션센터장 부사장과 ‘아! 와 어? 인문과 과학이 손을 잡다’ 등을 발표하기도 했다. 2013년 제1회 스마트소설박인성문학상 등을 받았다.

주수자 소설가는 CNB뉴스에 “국문학자인 김태준 선생은 ‘훈민정음 해례본’ 보존, 조선 시대 소설사 체계화 등 많은 기여를 했지만 일제 시대에 사회주의 운동 등으로 노무현 대통령 정부에 들어서야 금기가 풀린 인물”이라며 “그 공적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CNB뉴스=손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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