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부기자 | 2024.09.11 13:13:52
"예술의 자본주의적 식탐과 배설의 한 주를 보낸 피곤함이 나를 대구미술관으로 향하게 했다."
중동지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현대미술 작가, 와엘 샤키(WAEL SHAWKY)의 방대한 통섭적인 전시가 10일 대구미술관에서 오픈했다. 대한민국 미술관 최초 전시다. 필자는 오랜만에 제대로 된 작품을 보겠다는 의지로 9일 대구행 KTX를 탔다.
지난주는 FRIEZE SEOUL & KIAF(프리즈서울과 키아프, 미술 장터)로 대한민국이 시끌벅적했다. 국내나 해외의 누구 작품이 얼마나 비싸게 팔렸는지, 더 높은 가격에 판매된 작가의 작품은 마치 더 훌륭한 작가인 듯, 미술계의 높은 반열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런 예술의 자본주의적 식탐과 배설의 한 주를 보낸 피곤함이 나를 대구미술관으로 향하게 했다.
오랜만에 역사와 시대를 관통하는 시간의 종횡무진(縱橫無盡) 상태를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니 거대한 예술의 원초적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 전 고대에는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가 선지자의 역할을 했다. 미래를 보는 눈이 있다고 믿었고 그래서 그들은 형상을 만들었다. 그것은 신이 되기도 하고 미래가 되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마치 과거의 선지자를 보는 듯 흥미롭게 작품을 감상하는 기회를 선사했다. 내 나름대로 그렇게 생각한 이유 몇가지는 다음과 같다.
방대한 작품...아시아, 중동, 유럽의 "통섭적"
먼저 이번 대구미술관에서 기획한 '와엘 샤키' 전시는 그 스케일과 내용면에서 방대하다. 넓은 전시장에 들어서면 3개의 커다란 방들을 만나게 되는데, 하나는 우리나라인 한국(아시아)의 방이고, 다음은 중동의 중심국가 이집트, 그 다음 방은 유럽의 중심 국가 이탈리아(그리스 로마의 폼페이)다. 이 작품은 이처럼 아시아와 중동과 유럽을 가로지르고 있어서 통섭적이다.
그 중 한 전시장에 들어가 한가운데 서서 눈을 감으면 내가 세계 문명의 중심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관람자들도 한번 그렇게 해보길 권한다. 실내가 어두워서 남의 눈치 안보고 자유롭게 관람하기 편하다.
무엇보다 대구미술관의 큰 공간과 와일 사키의 거대한 작품 스케일이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대구미술관에게 박수를 보낸다. 역사적, 시대적으로 특히 현대에 가치있는 작품을 소개하고 또 적절하게 기획해 전시했으니 말이다.
"예술적, 종교적, 초국가적...그러나 편견은 NO"
와엘 샤키의 이번 전시 작품들의 공통된 주제를 잡는다는 것은 마치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것과 흡사하다. 하지만 눈 감고 다리 한짝이라도 잡아보는 심정으로 정한다면 "예술적, 종교적, 초국가적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3개의 작품을 타고 흐르는 의식의 물줄기는 신화와 전설을 지나 역사를 통해 흐르면서 현대로 들어와 나를, 우리를 만나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의 주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알 아라바 알 마드푸나 1부작(AL ARABA AL MADFUNA 1)'은 총 3부작 중 2012년 제작한 첫번째 작품이다. 이 중 3번째 작품은 2019년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 최초로 전시된 적이 있다. 미술관이 아닌 갤러리가 이런 전시를 했다는 것에 물개박수를 보낸다. 그래서 바라캇 컨템포러리를 앞으로 유심히 지켜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어쨋든 이 영상 작품에서 이집트인들은 주술적인 샤머니즘을 동원해 고대 유물을 찾으려고 땅을 파는 장면이 계속 된다. 여기에서 우리의 삶과 초월적인 세계가 만나는 지점을 볼 수 있다. 영적인 경험을 하지만 결국 인간이 물질을 얻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는 아이러니한 현상은 예술적, 종교적, 초국가적이다.
하지만 작가는 3개의 작품에서 편견을 배제했다. 그 방식은 독특한데, 와엘 샤키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식은 '네커티브' 일명 '반전의 필름 색조'다. 마치 과거 사진 필름에서 볼 수 있는 반전된 모습을 통해 작품에 나오는 사람들이나 사물의 형태를 왜곡한다. 그러한 왜곡은 표정을 흐리게 하는 효과가 있어서 감상자의 시각적 편견을 배제시킨다.
이번 '알 아라바 알 마드푸나'에서는 어린 아이들이 어른의 역할을 하게 하고 목소리는 어른의 것을 더빙했다. 이것도 작가가 편견을 배제하기 위한 장치다. 감상자는 이러한 장치를 통해 서구화된 역사적 편견을 갖지 않고 현상 그대로를 볼 수 있게 된다. 한국관에서는 '반전의 필름 색조' 방식을, 이집트관에서는 '어린 연기자 선택'을, 이탈리아관에서는 '가면'을 각각 동일한 목적, 시각적 역사적 편견을 배제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역사는 믿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연동된다.
한국의 전래동화를 판소리로 재해석한 '러스 스토리'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네거티브' 세상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러브 스토리 Love Story'는 우리나라의 구전설화와 전래동화를 판소리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누에 공주’, ‘금도끼, 은도끼’, ‘토끼의 재판’이라는 세 가지 이야기를 통해, 와엘 샤키는 물질적 세계와 비물질적 세계라는 상반된 두 세계가 하나의 이야기 속에서 공존하는 내용을 보여주며, 추상적 사랑이 어떻게 물질적으로 구현되는지 고찰한다.
이 작품의 독특한 점은 이야기가 다른 세계와 중접돼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유럽과 연결된 '금도끼 은도끼' 이야기와 인도에도 나오는 토끼의 꾀 등은 전래동화들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공통된 본질과 맞닿아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그 본질을 작가는 '러브 스토리'라는 제목으로 암시한다. 모든 이야기 속에 러브 스토리가 있지 않아도 그것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본질로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점은 전통 사자 탈춤이 에어콘 기기 위에서 퍼포먼스가 진행돼 현대와 연결되는 유일한 장면이라는 점이다.
폼페이를 배경으로 만든 작품에서도 이집트의 신과 그리스 로마의 신이 공통된 배경이 있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다. 기존 역사적 서사를 재해석하는 작가는 연사와 신화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와 조사를 토대로 작품을 기획하고 있어서 예술적, 종교적, 초국가적 정체성이라는 본질을 건드린다.
결론, "통섭적 사유의 경험"
인터내셔널한 미술품 장터인 '2024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가 끝난 후에도 잘 기획된 볼 만한 전시가 여러 곳에서 열리고 있다는 사실은 미술 애호가로서 감사한 일이다. 이번 대구미술관 전시를 통해 우리가 예술을 소비하는 진정한 이유가 자본주의적인 탐욕에 있지 않음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고대에 선지자가 형상을 통해 신을 바라보고 미래를 바라보았듯, 우리는 어쩌면 예술을 통해 깊숙한 절대 본질을 보거나 미래를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이 주술적인 것이 아닌 예술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너무나도 세밀하게 분화된 어지러운 세상에서 세계 전체를 직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는 예술만이 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번 대구미술관의 전시, 이집트의 작가 와엘 샤키의 '러브 스토리', '알 아라바 알 마드푸나 1', 나는 새로은 신전의 찬가', 등 3개의 영상 설치 작품을 통해 감상자 모두가 고대에서 동시대로, 아시아에서 중동과 유럽에 이르는 통섭(統攝, CONCILIENCE)적 사유를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CNB뉴스= 김진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