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도서관의 통로를 우거진 밀림으로 바꾸고, 바닥엔 이끼를 채운 뒤, 작은 연못에서 물을 마시는 재규어를 배치해보라.”
과거엔 이같은 사진 편집 작업을 하려면 전문적인 이미지 프로세싱 교육을 받은 그래픽 디자이너가 필요했다. 디자이너가 필요한 이미지를 찾거나 만들어 클라이언트의 요구대로 배치하고 어색한 느낌이 나지않도록 깔끔하게 마무리하려면 최소 1시간 이상의 작업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 기술의 발달로 인해 이같은 작업을 비전문가도 짧은 시간내에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최근 출시된 어도비(Adobe) 사의 ‘생성형 AI(Generative AI)’ 기술인 ‘파이어플라이(Firefly)’가 적용된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사의 디자이너(Designer) 같은 프로그램들이 그 해답이다.
이 중 파이어플라이 기술이 적용된 포토샵은 ‘생성형 채우기(Generative Fill)’와 ‘생성형 확장(Generative Expand)’, ‘생성형 다시 칠하기(Generative Recolor)’, ‘텍스트를 이미지로 변환(Text to Image)’ 등의 작업을 지원한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대충 찍은 바다 사진에 등대를 추가하거나, 불필요한 등장인물 및 사물을 삭제할 수 있고, 배경을 보다 늘려 찍히지 않은 영역의 경치를 만들 수도 있다. 평범한 사진을 판타지나 SF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몽환적인 사진으로 바꿀 수 있다.
물론, 이런 기능들은 이전의 포토샵에서도 지원됐다. 과거와 달라진 것은 이런 복잡한 작업이 어려운 도구와 복잡한 단계를 거치지 않고 간단한 텍스트 입력만으로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그래픽 전문가가 아닌 쌩초보자도 전문가 수준의 이미지 프로세싱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실제 업무에 적용 가능…직업 안정성 흔들 수도
이런 ‘혁명’은 생성형 AI의 빠른 발전이 가져온 변화다. 생성형 AI가 과연 무엇이길래 이런 변화를 순식간에 일으키고 있을까?
생성형 AI는 이용자의 특정 요구에 따라 결과를 능동적으로 생성하는 일련의 인공지능 기술을 지칭한다. 기존의 딥러닝 기반 AI 기술이 존재하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예측과 분류에 그치는 반면, 생성형 AI는 이용자가 요구한 질문이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데이터를 찾아서 학습하고 이를 토대로 능동적으로 데이터나 콘텐츠 등 결과물을 제시한다.
가장 유명한 생성형 AI 서비스는 단연 ‘챗GPT(ChatGPT)’다. 기존의 검색엔진과 달리 마치 사람과 대화하는 것처럼 맥락을 이해하며 답을 제공하는 능력으로 화제를 모은 챗GPT는 ‘LLM, 거대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l)’로 분류되는 생성형 AI 모델이다. 텍스트로 된 답변을 생성해 제공하는 서비스인 셈이다.
그리고, 생성형 AI에는 이미지나 음악, 동영상 등 미디어를 생성하는 모델도 있다.
먼저, 플레이그라운드 AI(Playground AI)’는 하루 최대 1000개의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는 이미지 생성 서비스다. 스테이블 퓨전(Stable Fusion) 등의 이미지 생성 모델을 사용해, 기존 이미지를 리믹스하거나 다양한 프롬프트, 필터를 활용한 새 이미지를 만들 수 있게 돕는다.
음악 생성 서비스로는 사운드로우(Soudraw)가 유명하다. 사용자가 음악의 분위기, 장르 및 길이를 지정해주면 저작권 이슈가 없는 음악을 생성해주므로, 유튜브 크리에이터 같은 사용자층에게 아주 유용하다.
영상 생성 서비스로는 인비디오 AI(InVideo AI)가 있다. 어떤 동영상을 만들지 키워드를 선정하고, 챗GPT를 이용해 스크립트를 만들기만 하면 인비디오 AI는 다양한 애니메이션과 음악을 활용한 비디오를 만들어준다.
이외에도 생성형 AI는 코드 생성, 웹페이지 제작, 3D 모델링, 3D 동영상 제작, 빅데이터 분석, 업무 자동화, 건축 설계, 패션 디자인 등 한층 전문적인 분야에도 활용되고 있다.
각각의 분야에서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구글과 메타, 아마존, 엔비디아, 어도비 등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경쟁에 뛰어들었으며, 국내에서도 네이버, 카카오, LG, KT, 삼성SDS, SK C&C 등 수많은 기업들이 다양한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물론 생성형 AI 기술이 장밋빛 미래만 보장하는 건 아니다. 업계에서는 생성형 AI로 만들어진 컨텐츠의 저작권 존재 유무 및 인정 여부, 워터마크 적용 방안 및 유용성, 딥페이크(Deepfake) 같은 악용 가능성 등 다양한 사안을 두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현업 전문가들이 느끼는 스트레스와 직업 불안정성도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최근에 만난 한 디자이너는 “한번도 디자인을 배우지 않은 사람이 내가 만든 것 이상의 결과물을 순식간에 만들어내는 것을 보고 잠시 공황이 왔다”며 허탈해 했다.
반면, 생성형 AI가 기존 전문가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것으로 예상하는 시각도 많다. AI 역시 하나의 도구일 뿐이고, 잘 활용하려면 AI 서비스의 구조를 이해하고 AI 언어의 프롬프트와 문법을 이해해야 하는데, 디자이너가 이런 능력까지 갖추면 한층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
스위스 제네바대학교 경제학 교수인 리처드 볼드윈은 ‘2023 세계경제포럼(WEF)’에서 “AI는 궁극적인 도구”라면서 “AI 자체가 일자리를 뺏지는 않는다. 다만, AI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고 말했다.
(CNB뉴스=정의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