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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뀌려다 지린 게 실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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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선명규기자 |  2023.08.17 09:25:29

사진=pixabay

골목길이었다. 스마트폰 화면은 밤 10시를 띄웠다. 달이 구름에 가려져 어두웠다. 비 그친 밤공기는 청량했다. 젖은 흙냄새는 달큰했다. 좁은 길에는 앞서 걷는 한 남자만이 있었다. 열 걸음 정도 떨어져 있었다. 급하지도 않은 오르막을 힘겹게 오르고 있어 괜히 신경 쓰였다. 어기적거리는 남자는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이따금 멈춰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땅을 내려다봤다. 자꾸만 속도를 늦추는 통에 그와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경사진 길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애매하게 가까워지면서 그의 둔부와 나의 눈높이는 일직선을 이뤘다. 나는 경기 내내 2위를 달리던 마라토너처럼 막판 극적인 역전을 노렸다. 속도를 높이려 발을 힘차게 굴렀다.

그 순간 우레가 울듯 한 소리가 났다. ‘빡!’ 남자의 괄약근이 볼륨 조절에 실패했다. 3정도에 맞추고 싶었던 듯한데 18정도에서 터진 모양이었다. 그는 제자리에서 머뭇거렸고 나는 멈춰 섰다. 골목길에서 때 아닌 대치 상태가 벌어졌다. 서로 앞만 보고 있었다. 마침 산풍이 불어왔다. 괄약근발 냄새가 거리에 흩뿌려졌다. 가죽피리가 폭발적 공연을 마친 자리엔 고약한 냄새만 남았다. 남자는 발을 동동 구르며 욕지기를 했다. 그의 행동과 냄새로 미루어보아 깊게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을 깨달았다. ‘지린 거다.’ 그는 뒤를 흘끗거리다 말했다. “미안하게 됐습니다.” 이 말이 공중에 흩어지기도 전에 남자는 다리를 벌린 채 재빠르게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가 이해됐다. 싼 게 아니라 지린 거니까. 일부러 한 게 아니니까.

이보다 깔끔한 사후대처가 있을까. 재빠르게 인정하고 사과까지 했으니 말이다. 이 남자 같은 기개를 보고 싶으나 찾을 수 없는 곳이 있다. 뉴스 사회면이다. 술 마시고 실수로 운전대를 잡았다는 주장을 보면 의문이 든다. 음주운전까지 얼마나 많은 우연을 거쳐야 실수가 될까. 어쩌다 술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고, 어쩌다 앉았는데 그게 운전석이고, 어쩌다 밟았는데 그게 액셀이었다. 이 짧은 문장 사이사이에 얼마나 많은 의도가 붙어있는지는 불문가지다. 누구는 회식자리에서 여성들에게 줄기차게 치근덕거려놓고 나중에 술 때문이었다고 한다. 기억도 안 나니 실수라고. 술 마시고 실수로 한대 치고 싶게 만드는 유형이다.

여기, 방귀남 못지않은 쾌남이 있다. 자신의 잘못을 끝끝내 샅샅이 밝혀내고야 마는 이 사람의 이름은, 제이슨 본이다.

영화 ‘본’ 시리즈는 기억을 잃은 제이슨 본이 정체성을 찾아 헤매는 여정을 보여준다. 본은 거대한 세력에 몸담은 유능한 암살자였으나 원하는 길은 아니었다. 모략에 빠졌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본은 끈임없이 묻는다. 난 누군가? 그러다 알게 된다. 과거에 저지른 살인 행각이다. 본은 자신을 수사한다. 파헤치다 알아낸 피해자 가족을 찾아간다. 자신으로 인해 부모를 잃은 딸을 만나 고백한다. 내가 그랬다고. 중언부언하지 않고 그저 인정한다. 내가 그런 게 맞다고. 어떠한 상황에 처해서건, 어떠한 음모에 빠져서건, 자신이 했던 행위를 변명하지 않는다. 심신미약 상태서 그랬으니 실수로 봐달라고 하지 않는다.

본이 발뺌했다면 우리가 아는 본이 아니었을 거다. 과거에 내가 그랬는지 몰라도, 지금은 기억도 안 난다고 했다면 말이다. 사람을 죽였으나 살인은 아니라고 했다면 되게 없어 보였을 거다. 본은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를 하나도 대지 않는다.

실수는 누구나 한다. 문제는 적용 범위다. 저마다 해석이 다르다. 보통 자신한테 관대하다. 나한테만 인심이 후하다. 기준이 애매할 순 있다. 그러나 기준점이 아예 없진 않으니 이것만 기억하면 된다. 방귀 뀌려다 지린 게 실수다. 예외는 없다.

(CNB뉴스=선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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