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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무인으로 유인, 엔데믹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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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선명규기자 |  2023.06.26 09:13:02

서울 시내 한 통신사 무인매장에 이용 안내문이 설치된 모습 (사진=선명규 기자)

사람 안 만나고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코로나가 성행하던 당시 고민은 비인간적이었다. 일상이던 사람 간 교류가 일순 교착 상태에 빠졌다. 해법을 찾아야 했다. 비말 튈 거리를 계산해 이격하는 것이 시작이었다. 2미터. 팔 뻗으면 닿을 듯한, 애태우는 거리였다. 그러나 감염병의 패악질은 갈수록 심해져 심리적 거리감을 더욱 멀어지게 만들었다. 정신이 혼미해진 사람들은 여러 규약을 고안해 대처했다. 서로 약조한 바는 많았지만 일축하는 문장은 결국 하나였다. “우리 얼굴 보지 말고 삽시다.” 지긋한 그 말, ‘비대면’의 등장이다.

비록 대안으로 떠올랐으나 비대면이 낳은 현상들은 면면이 화려했다. 메타버스가 달리고, 승차 구매(드라이브스루)가 흔해졌다. 가상공간에서 대학 입학식이 열리고, 차를 타고 이동하며 관람하는 미술 전시회도 생겼다. 식당에서 사람이 하던 서빙은 로봇으로 대체됐다. 행사도 여가생활도 식사도 비대면으로 하게 된 것이다. 얼굴 안 보고 사는 생활이 가능할까 싶었지만 익숙해지는 시간은 빨랐다. 이게 달가울 일인가 의문이 들면서도 적응은 수월했다. 서로 안전하자는 의식이 앞섰기 때문일 것이다.

비대해진 비대면의 기세는 무인화에 다다랐다. 과자·아이스크림 가게, 편의점, 심지어 은행들도 무인점포를 만들었다. 전자·통신업계도 마찬가지. LG전자는 야간에만 무인매장으로 운영하는 점포를 만들었고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도 무인화 바람에 동참했다. 휴대전화를 셀프 개통하거나 요금제를 알아서 바꾸고, 직원 없는 가운데 가전제품을 살펴보게 했다. 안전하자는 취지였다. 한명이라도 덜 마주치고 볼일 보라는.

감염병 걱정은 덜었으나 부작용이 점차 나타났다. 가장 큰 문제는 절도. 보안업체 에스원의 빅데이터 분석 결과를 보면 2022년 기준 무인매장에서 발생한 절도 범죄는 전년보다 86%가량 증가했다. 접촉 우려를 털려 무인매장을 만들었더니 물건 터는 사람이 늘었다.

감시하는 눈이 없는 곳에 비양심의 싹도 텄다. 흡연은 약과. 어떤 업주는 매장 바닥에 큰일을 보고 유유히 떠나는 한 여성의 CCTV 영상을 공개했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이 정도는 큰 사건에 속하지만, 흐려지는 본래 운영목적에 대해서도 곱씹어봐야 한다. 얼마 전 서울 시내에서 무인으로 운영되는 통신사 매장을 찾았을 때였다. 무료로 제공하는 커피만 뽑아서 나가거나 더위를 피해 쉬었다 가는 모습이 흔했다. 이런 행동이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비양심과도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에 고민해봐야 한다. 애초에 무인매장을 왜 열었는가.

이달 1일부터 엔데믹이 시작됐다. 정부는 이날 0시를 기해 코로나19 위기경보 단계를 ‘심각’에서 ‘경계’로 내렸다. 국내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지난 2020년 1월 20일 이후 1229일 만에 방역 규제가 모두 풀린 것이다. 사람 안 만나고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은 과거로 사라졌다. 무인(無人)으로 유인(誘引)하던 시대 역시 저물고 있다.

(CNB뉴스=선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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