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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하의 공문(工文)산책④] 로봇 인간의 새 이름 ‘페로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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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최규하기자 |  2023.04.14 09:48:58

로봇이 인간 두뇌 능가하는 시대 도래
철을 뜻하는 ‘페로’가 로봇인간 새 이름
동화 속 피노키오, ‘페로키오’로 재탄생
‘거짓말하면 코 길어지듯’ 새 윤리 필요

 

최규하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 석좌교수.

과학기술의 원리나 지식에 인문학을 접목해 인본주의적 과학기술을 창출해 나가자는 주장인 ‘공문(工文)’이 한국사회에 처음으로 등장하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를 비롯한 각종 대형 인재(人災)가 과학적·인문학적 시스템의 부재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공문’의 필요성이 더 절실해진 상황이다. 이에 CNB뉴스는 공문의 창시자인 최규하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 석좌교수의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최 교수에 따르면, 공문은 ‘인간에 의해 기술이 그리는 무늬’로 정의된다. 최 교수는 “인간에 의한 ‘기술의 동선’이 공문”이라며 과학기술계의 동참을 요청하고 있다. <편집자주>




원시인류가 진화를 거듭해 오늘날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인간으로 변모되었다. 초기 엉성하기만 했던 로봇들도 계속 진화하고 있다. 지금 로봇들은 인간의 온갖 행동을 다 흉내 내며 우리를 비웃는 듯하다. 어쩌면 인간의 움직임을 능가했다는 뜻일 게다. 이제 남은 건 로봇 머리에 심어야 할 ‘인공두뇌’다.

최근 생성된 AI(인공지능) 중 챗GPT와 모니터를 통해 대화를 나누면 똑똑한 친구와 채팅하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다. 가히 로봇의 ‘두뇌’로 자리 잡을 것 같다. 이제 로봇 몸체와 생성 AI가 제대로 결합하기만 하면 로봇 인간 곧 ‘페로키오’로 탄생하리라.

인공지능도 이제 의식이 있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소설가 사무엘 버틀러가 1872년에 발표한 ‘에레혼(Erewhon)’에서 당시 시대상을 꼬집었다. 영단어 nowhere를 거꾸로 쓴 에레혼의 나라에서는 모든 게 반대인데, 질병을 죄악으로 여겨 병자를 구속하고, 범죄자는 죄의식이 없으며, 또 비이성과 부조리가 판친다. 기계를 모조리 파괴하는 데 기계의 소지나 사용 또한 범죄로 취급받는다.

다윈의 진화론에 근거한 이 소설에서는 기계가 지속적인 진화를 거듭해 종국에는 인간을 지배할 것이라면서, ‘증기기관이 의식이 없다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라고 역설했다. 이로써 버틀러는 기계 의식, 나아가 인공지능이나 인공생명의 도래를 최초로 예견했던 이로 평가되고 있다.

오늘날 인공지능은 불편한 진실로 여겨진다. 최근의 챗GPT 등 생성 AI들이 우리를 당혹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데이터를 채집, 정리해 우리에게 답변해주는 챗GPT도 과연 자신만의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지금은 답변 기계에 불과한 그 챗GPT도 진화를 거듭해 나간다면 버틀러의 말대로 ‘챗GPT가 의식이 없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인공지능의 몸체는 바로 로봇이다. 최초의 로봇은 발명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청동 거인 탈로스(Talos)이다. 크레타 섬을 지키도록 만들어진 탈로스는 머리에서 발끝으로 이어진 하나의 혈관에 채워진 이코르(ichor)로 생명력을 유지했지만, 마법사 메데이아가 탈로스의 발목에 박힌 청동 못을 빼내자 탈로스는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기원전 3000년경 그리스의 로봇 필론(Philon)은 와인을 따라주는 일을 했고, 또 기원전 3세기경 중국 무왕때 만든 로봇은 춤추고 노래까지 했다고 한다. 다빈치 역시 사자 로봇과 인간 로봇을 설계, 제작하였다.

체코의 극작가 카렐 차페크가 희곡 ‘로섬의 만능 로봇’에서 처음 로봇이란 단어를 사용한 이래 수많은 로봇들이 속속 등장했다. 특히 2016년에 발표된 휴머노이드 로봇 소피아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최근 보스턴 다이나믹스사는 로봇들의 실제 거동을 다양한 환경에서 아주 성공적으로 구현해 냄으로써 이제 로봇의 몸체는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렀다고 평가할 만하다.

로봇의 롤모델 ‘피노키오’

‘피노키오(Pinocchio)’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동화중 하나로, 1883년 이탈리아 작가 카를로 콜로디의 작품 ‘피노키오의 모험’에 등장하는 나무 인형의 이름이다. 말을 하는 나무 토막을 얻어 제페토 할아버지가 뚝딱거려 만든 피노키오가 사람의 형상을 갖추자 나무 로봇이 되어 뛰어다니며 움직인다. 피노키오는 바깥 세상의 많은 유혹에 넘어가고, 또 거짓말을 하자 코도 길어지고 장난감마을에서 당나귀로 변하는 수난도 겪는다. 파란 요정의 도움으로 되살아난 피노키오가 상어 뱃속에서 아빠 제페토를 만나, 극적으로 탈출한다. 착하게 살아가던 어느 날 피노키오는 진짜 사람으로 변한다. 의자 옆 옛날 자신이었던 그 나무 인형을 바라보며 아빠랑 활짝 웃는 것으로 끝내는 해피엔딩의 얘기다.

나무토막에서 만들어진 피노키오가 인간으로 변모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건 바로 파란 요정이다. 오늘날 로봇들은 파란 요정의 인공지능 도움 없이는 결코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변할 수는 없다. 우리는 피노키오 이야기 속에서 개발해야 할 로봇의 롤모델을 찾을 수 있다.

로봇 인간의 새 이름은 이제 ‘페로키오’다.

목수 제페토가 솔방울, 곧 소나무를 뜻하는 pino-를 붙여 피노키오를 만들었듯이, 우리 과학기술자들은 이제 ‘페로키오(Ferrocchio)’라는 이름의 로봇을 만들어야 한다. 철을 뜻하는 영단어 ferro-를 붙여 만든 이름이다.

모라벡은 <마음의 아이들>에서 2050년 이후의 로봇을 ‘마음의 아이들’이라 하며, 인류를 대신해 지구의 주인이 될 로봇들에게 정신적 유산의 소프트웨어로 넘겨준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우리 후손이 될 로봇들은 여느 로봇들과는 당연히 구분되어져야 한다. 인종(?) 차별이 아니다. 사람이 되어 피노키오가 제페토의 후손이 되었듯, 우리의 마음을 고스란히 간직하게 될 페로키오만이 우리의 후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들이 이제 해야 할 숙제 한 가지가 있다. 곧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진다’는 것처럼 페로키오를 위한 ‘새 윤리’(錀理)의 제정이다. 이제 ‘인간의 윤리’(倫理)는 무의미하다. 후손 페로키오들이 지구를 살아가는 동안 ‘우리 마음으로 지닌 그들만의 윤리(錀理)’ 말이다.


* 최규하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 석좌교수, 전 한국전기연구원장, 전 건국대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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