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임시국무회의에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양곡법·국회증감법 등 6개 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두고 대응 방안이 종전에 비해 압박 수위를 낮추는 모습을 보이는 등 고심에 빠졌다.
그동안 민주당은 한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곧바로 탄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엄포를 놨지만 한 권한대행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을 담당할 국회몫 3명의 헌법재판관 임명권을 쥐고 있는 것은 물론,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진 상태에서 민주당이 추가 탄핵에 따른 역풍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한 권한대행은 오늘 열린 임시국무회의에서 야당이 단독으로 처리한 △국회 증언감정법 개정안 △국회법 개정안 △양곡관리법 개정안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법 개정안 △농어업 재해보험법 개정안 △농어업 재해대책법 개정안 등 6개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의결했으며, 그리고 지난 1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내란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도 내년 1월 1일까지 거부권 행사 여부를 정해야 한다.
당초 민주당은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탄핵안)이 가결된 직후 한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를 막기 위해 강하게 압박하는 모습을 보였다.
민주당 박성준 원내수석부대표는 지난 16일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한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소추를 검토하다 국정안정을 이유로 철회했으나 (한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탄핵을 다시 추진할 수 있다”고 경고했으며, 같은 날 김민석 수석최고위원도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권한대행에게는 인사권과 법률 거부권을 행사할 능동적 권한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최근 민주당 한 원내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탄핵을 추진할 계획인가’라는 질문에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한 권한대행) 탄핵안을 준비 중이지만 상황을 봐야 한다”고 답해 압박 수위를 낮추는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민주당의 입장이 ‘강경론’에서 ‘신중론’으로 돌변한 이유는 무엇보다 한 권한대행이 국회가 추천한 헌법재판관 3명에 대해 임명권을 행사해 주는 게 중요한 만큼 한 권한대행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을 진행 중인 헌재는 국회 추천 몫인 3명의 헌법재판관 임명이 마무리되지 않아 현재 6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어 6인 체제에서는 헌법재판관 가운데 1명만 반대해도 탄핵 인용 정족수인 6명에 못 미쳐 탄핵이 기각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민주당 관계자는 “당내에서는 거부권 행사보다는 헌법재판소를 9인 체제로 만들어 윤 대통령 탄핵안 인용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확산하고 있다”며 “따라서 의원들 사이에서도 한 권한대행을 거부권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탄핵할 경우, 헌법재판관 임명 시기만 늦출 수 있어 우선 임명 권한을 행사할 때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인 것 같다”고 전했다.
특히 김부겸 전 국무총리도 이날 한 라디오에 출연해 “대통령 탄핵에 집중해야지 총리나 다른 사람들에 화살을 돌리는 것은 전선을 흩트릴 수 있다”면서 “정국 전체를 안정시킬 책임이 원내 1당으로 넘어온 상태서 법안 하나 가지고 ‘뭘 하면 뭘 하겠다. 탄핵하겠다’라고 하는 것은 조금 더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더구나 민주당 내부에서는 헌법상 국무회의는 국무위원 15인 이상일 때 성사되는데, 현재 국방부·행정안전부·여성가족부 장관이 공석으로 국무위원은 16명인 상황에서 한 권한대행이 탄핵되고, 박성재 법무부 장관 탄핵소추안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될 경우, 국무회의 구성 자체가 안돼 주요 현안의 처리가 어려워져 원하는 법안처리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부담감도 커지고 있다.
이에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특별위원회(인청특위) 야당 간사인 민주당 김한규 의원도 이날 기자들을 만나 “국무위원을 더 탄핵하면 국무회의가 진행이 안돼 우리가 국회에서 법안을 통과시키고 공포까지 대신한다 해도 국무회의를 마비시키는 것이라 정무적으로 부담스럽다”면서 “혹시 한 권한대행이 이런 사실을 알고, ‘나를 탄핵하면 이제 국무회의도 못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비슷한 고민을 전했다.
(CNB뉴스=심원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