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노벨문학상 함께한 기업①] 교보생명, 번역 지원부터 작품 유통까지

손정호 기자 2024.11.07 09:32:47

번역 지원→수상 전시→작품 유통 등 ‘전폭 지원’
한강 작가, 교보 글판 위원 등 교보와 오랜 인연
창립자 신용호의 민족문학정신 이어 문학계 지원

 

교보생명이 서울 광화문 빌딩에 있는 교보문고에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는 전시 공간을 마련했다. (사진=손정호 기자)

한강 작가가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이른바 ‘한강 신드롬’이 일고 있다. 서점에서 그녀의 책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으며, 문학계는 물론 전국민적 문학 붐이 일고 있다. 이런 가운데 CNB뉴스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음으로양으로 기여한 기업들을 연재한다. 첫편은 작품 번역에서부터 수상 전시, 도서 유통까지 진행하고 있는 교보생명그룹이다. <편집자주>




교보생명은 한강 소설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가장 크게 기여한 기업으로 꼽힌다. 교보생명은 대산문화재단을 통해 33년째 우리나라 문학을 육성하고 세계에 알리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기자는 지난달 31일 오후에 교보생명 광화문 빌딩을 방문했다. 서울 지하철 광화문역에 내려서 교보생명빌딩으로 다가서니, 교보문고로 들어가는 입구에 한강 소설가의 사진과 함께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하얀색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교보문고 안에는 노벨문학상 수상 축하 전시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지하1층 계산대 옆의 황금색 현수막에 스웨덴 한림원에서 공개한 한강 작가의 얼굴 그림, 노벨상을 만든 알프레드 노벨의 얼굴이 새겨진 메달 모습이 프린트되어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있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는 전시 공간, 한강 작가가 추천한 책들, 출입구의 축하 포스터, 아버지인 한승원 작가의 소설책 추천 코너. (사진=손정호 기자)

작가의 수상 이력도 적혀 있다. 대산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이상문학상, 동리문학상, 만해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말라파르테 문학상, 김유정문학상, 산클레멘테 문학상 등을 수상하고, 한국 작가 최초로 2016년에 ‘채식주의자’로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지난해 ‘작별하지 않는다’로 메디치상 외국문학상을 수상했다고 적혀 있었다.

현수막 밑에는 그의 소설책과 시집을 커다란 전시물로 만들어 세워 놓았다.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디 에센셜’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흰’ ‘희랍어 시간’ 등이다. 그의 시적인 산문, 인생에 대한 시 문장이 다시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축하 메시지도 보낼 수 있다. 그녀의 책 표지 디자인을 담은 엽서에 사인펜으로 편지를 써서 투명한 플라스틱 함에 넣을 수 있었다. ‘한강 작가님께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남겨주세요’라고 적혀 있는 투명한 통에 시민들이 글을 쓴 엽서들이 쌓이고 있었다.

 

교보문고 광화문점 입구에 걸린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축하 현수막(왼쪽), 출입구에 있는 노벨상 수상자 전시 공간 중 한강 작가를 위해 마련된 자리. (사진=손정호 기자)

한강 작가가 읽은 책들은 추천 도서로 모아놓았다. 추천 목록표에는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어느 시인의 죽음’, 김애란의 ‘이중 하나는 거짓말’, 조해진의 ‘빛과 멜로디’ 등이 눈에 띄었다. 이외에도 장 자크 루소의 ‘루소의 식물학 강의’, 카테리네 크라머의 ‘케테 콜비츠 : 슬픔을 구출하는 예술’, 유디트 샬란스키의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 등이 적혀 있다.

아버지인 한승원 소설가의 책들도 나무 진열장 위에 올려뒀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다산’ ‘추사’ ‘사람의 길’ ‘도깨비와 춤을’ 등이다. 한승원 작가는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김동리문학상 등을 두루 받은 중견 소설가이다. 진열대에는 ‘소설가 한강 그의 아버지, 세대를 이어가는 감성의 힘’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신창재 회장, ‘한국문학 세계화’ 숨은 조력자



교보생명 대산문화재단은 한강 작가와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대산문화재단은 2014년 데버라 스미스가 번역한 ‘채식주의자’가 영국에 소개될 수 있도록 출판을 지원했다. 이뿐만 아니라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희랍어 시간’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등 대표 저서 9권의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번역과 해외 출판을 후원했다.

대산문학상도 수여했다. 대산문화재단은 2022년 제주 4·3 사건의 비극을 표현한 한강 작가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 제30회 대산문학상을 수여했다. 당시 한강 작가는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무고한 죽음에 대한 이야기라 생각했고 결국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을 붙잡고 소설을 썼다”고 말했다.

한강 작가는 교보생명빌딩 광화문글판 문안선정위원으로도 활동했다. 2013년부터 4년 동안 광화문 빌딩 외벽에 그림과 함께 걸리는 광화문글판의 문안을 선정하는 역할이었다.

2015년 가을편 글판에 실린 메리 올리버의 ‘휘파람 부는 사람’, 2016년 봄편에 실린 최하림의 ‘봄’을 한강 작가가 직접 추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22년 교보생명 대산문화재단에서 주최하는 제30회 대산문학상 소설 부문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운데)가 서울 종로구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대산문화재단)

이처럼 교보생명이 한강 작가를 비롯한 문학인들을 꾸준히 지원하는 이유는 창립자의 뜻에 따른 것이다.

대산문화재단은 교보생명의 창립자인 대산(大山) 신용호 명예회장의 뜻에 따라 1992년 설립됐다. 신 명예회장은 일제 강점기 시절에 민족 시인 이육사를 직접 만나 ‘동포를 구제하는 큰 사업가가 되라’는 말을 듣고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는 등 오래전부터 문학과 인연을 맺어왔다.

이를 이어받아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은 대산문화재단 이사장을 맡아 국내 문학 작품을 외국어로 번역하는 사업을 꾸준히 후원해왔다. 그동안 재단의 번역 지원을 받은 작품은 550편, 해외에 출판된 작품은 400편에 이른다.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돕는 숨은 조력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밖에도 대산문화재단은 대산문학상, 대산대학문학상, 대산청소년문학상, 외국문학 번역 지원, 국제문학포럼, 대산창작기금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CNB뉴스에 “대산문화재단은 한강 작가가 2016년 세계 3대 문학상인 부커상을 수상하는데 기여한 바 있다”며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후에는 교보문고 곳곳에 이를 축하하는 현수막과 포스터, 전시물을 설치하고 독자들의 늘어난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고 말했다.

(CNB뉴스=손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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