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크] 마케팅에 서사를? 삼성전자의 신박한 ‘책방’

선명규 기자 2023.11.13 09:28:21

숙성책방’ 만들어 비스포크 신기능 소개
여기서 소설·만화 등 콘텐츠 순차 공개
신사업 시작인줄? 장난감·청첩장도 제작
메시지 감춘 ‘이스터에그’식 마케팅 눈길

 

삼성전자는 삼성코리아 인스타그램에서 비스포크 김치플러스의 숙성 기능을 소개하는 ‘비스포크 숙성책방’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매주 한편씩 새로운 콘텐츠를 공개해 집중도를 높이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눈부십니다. 하루만 놓쳐도 따라잡기 빠듯할 만큼 빠릅니다. 어렵다는 편견마저 있어 거리감이 느껴집니다. [테크크]는 편한 뉴스를 지향합니다. IT, 전자, 게임 등의 소식을 보다 접하기 쉽게 다듬고 정돈해 전합니다. 웃으며 가볍게 보셔도 좋습니다. <편집자주>


 


“여기 세상 가장 맛있는 책방이 있습니다. 숙성에 관한 모든 이야기가 모인 곳이죠. 잘 익은 김치 한 조각, 향긋한 과일, 육즙 가득 고기, 고소한 빵까지. 어떤 이야기부터 맛보고 싶나요? 올 가을 비스포크 숙성책방이 당신을 위해 문을 엽니다.”

가수 양희은 씨가 특유의 카랑한 목소리로 막 개점한 책방을 소개한다. 문이 열리고 책장이 넘어가면 본격적인 미식의 향연이 펼쳐진다. 라면과 흰쌀밥에 맞춤한 새빨간 김치, 불판 위 지글지글 익는 고기 등 군침 괴게 만드는 애니메이션에 양 씨의 내레이션이 맛깔나게 얹힌다. 미감의 극치는 눈과 귀로 모두 맛볼 수 있다.

음식 전문 독립서점 같은 이 공간을 연 쪽은 뜻밖에도 삼성전자다. 이 회사가 난데없이 도서 유통 사업에 뛰어든 것은 아니다. 최근 출시한 김치냉장고 ‘비스포크 김치플러스’의 고유 기능을 알리려 만들었다. 해당 제품에는 ‘맞춤숙성실’이란 숙성 특화 기능이 탑재됐다. 그래서 서점 이름이자 캠페인명이 ‘비스포크 숙성책방’이다. 의외인 점은 오프라인에 있지 않다는 것. 이 책방은 삼성코리아 인스타그램에서 성업하고 있다.

 

비스포크 숙성책방 캠페인은 양희은의 오디오북, 정세랑의 판타지소설, 미깡의 일상만화, 마포농수산쎈타의 라면레시피, 빵지순례 등 총 5편의 콘텐츠로 구성됐다. (사진=삼성전자)

 


재미의 문어발식 확장



삼성전자가 신사업 추진에 견줄만한 과감한 시도를 하고 있다. 알고 보면 오해였다는, 반전의 재미를 담은 홍보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중 가장 두드러지는 ‘비스포크 숙성책방’의 성격은 문어발식이다. 상도(商道)를 넘는 비상식적 사업 확장 이야기가 아니다. 소설, 만화 등 다양한 장르에 손을 뻗었다. 그렇게 융복합 콘텐츠를 만들어 순차 공개하는 방식으로 관심도를 높이고 있다.

시작은 양희은 씨가 김장하는 날의 에피스드 등을 들려주는 ‘오디오북’이다. 지난달 23일 첫 공개됐다. 소설가 정세랑의 과일 숙성 키워드의 ‘판타지 소설’, 만화가 미깡의 저녁 시간에 끼니를 대체할 수 있는 고기 안주 ‘만화’, 인플루언서 마포농수산쎈타의 흔하지 않아 따라하고 싶은 김치 라면 ‘레시피’, 유명 빵집과 협업 레시피를 소개하는 ‘빵지순례’가 매주 한편씩 이어질 예정이다.

삼성전자 한국총괄 김성욱 부사장은 “비스포크 김치플러스 신제품의 강화된 맞춤 숙성 기능을 더 많은 분들과 다채롭고 흥미롭게 나누고자 이번 캠페인을 기획했다”며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밥 한끼와 숙성, 그리고 삶에 대한 이야기를 올 가을 ‘비스포크 숙성책방’에서 함께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무선 스틱청소기 '비스포크 제트 AI'의 축소판인 '제트 청소기 장난감'를 출시하며 온 가족에게 즐거운 청소 문화를 제안하는 취지의 'JET.SET.GO(젯.셋.고) 챌린지'를 진행했다. (사진=삼성전자)

 


완구·웨딩 사업은 진짜?



책방을 열기 이전엔 장난감도 만들었다. 물론 완구 사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발단은 이렇다. 지난달 삼성전자는 무선 스틱청소기 ‘비스포크 제트 AI’와 똑 닮은 ‘제트 청소기 장난감’을 뽀로로 제작사 아이코닉스와 협업해 출시했다. 같은 디자인이기에 어른 청소기의 축소판 버전이나 마찬가지다. 흡입을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투명한 먼지통, 자동으로 먼지를 비워주는 청정스테이션 모양까지 원기기의 외형을 그대로 구현했다.

전원 버튼을 누르면 뽀로로가 노래하는 ‘제트 송’이 흘러나오는 것이 차별점. “아이들에게 올바른 청소 습관을 길러줄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의도처럼 놀이와 청소를 일치시켰다. 부모가 청소기를 돌릴 때 옆에서 아이가 그 행동을 따라할 수 있으니까. 허나 일견 부각된 취지에는 마케팅 전략이 깔려있다. 이 장난감은 별도 판매하는 상품이다.

 

비스포크 웨딩 펀딩 화면 이미지. 예비부부가 등록한 위시리스트 제품을 선택해 원하는 액수만큼 펀딩에 참여하면 신혼가전 마련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사진=삼성전자)


웨딩 사업에도 발을 담그나? 삼성전자가 오는 30일까지 여는 ‘비스포크 웨딩 펀딩(BESPOKE Wedding FUNding)’ 캠페인을 보면 이러한 오해를 부를만하다. 이 기간, 캠페인에 참여한 예비부부에게 모바일 청첩장을 제작해주기 때문이다. 웹툰 작가, 카카오톡 이모티콘 작가 등과 협업해 이색 디자인으로 제작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

캠페인 이름에 ‘펀딩’이 들어간 이유가 있다. 예비부부는 모바일 청첩장에 갖고 싶은 ‘삼성 신혼가전’ 위시리스트를 추가할 수 있다. 이후 청첩장을 받은 이들이 등록된 제품을 선택해 원하는 액수만큼 펀딩에 참여하면 지원금이 쌓이는 식이다. 청첩장 뒷면에 삼성 제품 구매를 돕는 후원창구가 있는 셈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이를 개발자가 게임 속에 재미난 기능을 몰래 넣는 ‘이스터 에그’(Easter Egg)식 마케팅으로 보고 있다. 캠페인 같은 먼저 드러나는 요소에 진짜 의도를 숨겨놓는 점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CNB뉴스에 “마케팅에도 서사 부여가 중요해진 시대”라며 “제품의 장점 등을 직관적으로 늘어놓기 보단 한 콘텐츠에 녹여 드러날듯 말듯 내보이는 편이 소비자에게 오히려 확실하게 각인된다”고 말했다.

(CNB뉴스=선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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