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IT)야기] 삼성·LG전자가 세탁기에 넣은 ‘이 기능’

선명규 기자 2023.03.25 11:00:03

‘작지만 강한’ 미세플라스틱
인체에 치명적…숨은 살인자
세탁할 때 발생량 크게 늘어
양사 세탁기에 저감기능 도입

 

LG전자는 UP가전 세탁기에 미세플라스틱 배출을 확 줄여주는 신기능을 추가한다. (사진=LG전자)

“대한민국은 IT강국”이란 말은 이제 잘 쓰지 않습니다. 당연하게 여기는 이유가 가장 클 텐데요. 그만큼 국내 정보통신산업은 급속도로 성장하며 세계에 이름을 날려 왔습니다. 날로 고도화되는 기술, 이를 바탕으로 탄생한 혁신적인 제품들이 증거입니다. 그리고 그 수많은 결과물에는 반드시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IT 이야기’, 줄여서 [잇(IT)야기]에서 그 설을 풀어봅니다. <편집자주>


 


‘작지만 강하다.’ 영화 <앤트맨>을 소개할 때 종종 쓰이는 문구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것처럼 들립니다. 작은데 어째서 강하다는 걸까요. 우람한 근육을 자랑하는 헐크라면 이해가 쉬이 가겠지만요.

‘개미만한 히어로’ 앤트맨이 강한 이유는 역설적으로 작아서입니다. 진가는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드러났습니다. 첨단 과학이 집약된 아이언맨의 슈트 속에 침투해 마구 헤집다가 결국 고장을 일으키죠. 개미가 강철인간에게 한방 먹인 무기는 작은 몸집이었습니다. 아이언맨에게 앤트맨은 어떤 빌런보다 상대하기에 까다로운 존재였는지도 모릅니다.

앤트맨의 예처럼 상대가 작으면 작은 대로 싸우기 힘듭니다. 크면 눈에라도 잘 띌 텐데, 여간 답답한 일이 아니겠죠.

요즘 인간이 만든 인간의 적도 작아서 문제입니다. 바로 미세플라스틱입니다. 사전은 크기 5mm 미만의 작은 플라스틱 조각을 미세플라스틱으로 규정합니다. 플라스틱이 부서지면서 발생하죠.

이 조그마한 녀석이 참 골칫덩이입니다. 하도 작으니 하수처리시설에서 걸러지지 않고 바다나 강으로 흘러가버립니다. 그걸 물고기가 먹고, 그 물고기를 훗날 사람이 먹어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거죠. 그전에 해양오염은 말할 것도 없고요. 크기라도 하면 수거할 여지라도 있는데, 얘는 답도 없습니다. 발생을 줄이는 게 최선이라 할 수 있겠네요.

 

앤트맨은 작은 몸이 무기다. 어디든 침투해 적을 무력화할 힘을 지녔다. 작은 크기로 환경과 인간을 위협하는 미세플라스틱도 이와 비슷하다. (영화 앤트맨 스틸컷)

 


미세플라스틱 잡는 전략…삼성은 더 작게, LG는 섬세하게



최근 이 미세플라스틱과 전쟁을 선포한 업계가 있습니다. 가전회사들이 주도적으로 나섰습니다. 왜일까요? 미세플라스틱은 일상에서 흔히 쓰는 물건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심지어 옷에서도 발생합니다. 흔히 쓰이는 합성섬유에 플라스틱 성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주목한 포인트가 바로 여기입니다. 두 회사는 최근 세탁기에 미세플라스틱을 저감하는 기능을 넣고 있습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International Union for Conservation of Nature)은 전 세계 해양 미세플라스틱의 35%가 세탁할 때 손상되는 합성섬유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합니다. 비비고 주무르는 과정에서 생긴 강한 마찰이 빨랫감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나오게 만듭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세탁기가 열심히 빨래를 할수록 미세플라스틱은 잘 나오게 되겠죠.

여기에서 딜레마가 나올 수 있습니다. 살살 빨아서 어떻게 깨끗하게 만드느냐. 옛날 아낙들의 다듬이질처럼 맹렬하게 빨아야 속도 개운한 빨래가 완성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합니다. 두 회사는 이 딜레마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극복했습니다.

삼성전자는 더 작아지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친환경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Patagonia)와 협업해 개발한 '미세플라스틱저감 코스'를 신제품 비스포크 그랑데 AI 세탁기에 도입했는데요. 세제를 녹여 만든 풍성한 거품이 섬유 사이사이로 스며들어 오염을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원리입니다. 앤트맨이 작은 몸을 이끌고 아이언맨의 슈트에 침투한 것처럼 말이죠.

관건은 효과겠죠? 이 코스 도입을 통해 10㎛(마이크로미터) 이상의 미세플라스틱 배출량을 최대 60%까지 저감해준다고 합니다.

LG전자의 방식은 꼼꼼한 ‘손놀림’으로 축약할 수 있습니다. 이 회사는 최근 트롬 세탁기에 ‘미세플라스틱 케어 코스’를 추가하는 업그레이드를 진행한다고 밝혔는데요.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비비기’ 모션으로 세제를 잘 풀어주고, ‘흔들기’와 ‘주무르기’ 모션으로 섬세한 세탁을 구현한다.” 역시나 옷감의 마찰의 줄이는 것이 핵심입니다.

LG전자 측은 이 코스의 단점을 미리 밝혔습니다. “세탁 시간은 늘어나지만 세탁 효과는 유지한다.” 섬세하게 빨다보니 오래 걸린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런데 결과만 좋다면 감수할 만한 기다림 아닐까요?

그래서 LG전자는 설득력을 높이는 실험을 하고, 그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국제 공인시험인증기관 인터텍과 대표적인 합성섬유인 폴리에스테르 100% 소재의 트레이닝재킷 3kg을 세탁하는 조건으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결과지는 만족스러웠습니다. 이 코스는 세탁 시 발생하는 20㎛(마이크로미터) 이상의 미세플라스틱 배출량을 표준코스 대비 70% 줄여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기다림 대비 효과가 큰 셈입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미세플라스틱 배출량을 최대 60%까지 저감해주는 비스포크 그랑데 AI 세탁기를 출시했다. (사진=삼성전자)

 


‘보이지 않는 공포’ 이미 시작



미세플라스틱은 이미 일상생활에 깊이 들어와 인간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입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무슨 얘기냐고요?

얼마 전 한국소비자원이 실시한 조사를 보면 일회용기의 미세플라스틱 검출량이 다회용기보다 최대 4.5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구체적으로 일회용기에서는 개당 적게는 1.0개, 많게는 29.7개의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됐습니다. 다회용기는 개당 0.7∼2.3개 수준이었습니다. 코로나 이후에 일회용기 많이 쓰시죠?

많이 검출된 대상을 보겠습니다. 플라스틱 컵과 포장 용기의 주된 원재료인 PET(47.5%)와 PP(27.9%), 종이컵에 코팅되는 PE(10.2%) 순으로 많았습니다. 주로 입에 직접 닿는 것들입니다.

자, 이를 토대로 커피를 모두 일회용 컵으로 마신다고 가정하면 끔찍합니다. 성인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이 377잔인데, 이렇게 되면 연간 미세플라스틱 2639개에 직접 노출되게 됩니다.

소비자원은 미세플라스틱의 위해성은 아직 과학적으로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선제적인 안전관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자연에서도 수백 년 간 썩지 않고 버티는 플라스틱이 몸에 쌓인다고 생각하면 오싹합니다. 과학적 근거가 아직은 없다고 해도 말이죠.

미세플라스틱의 공포는 이미 시작됐습니다. 빨래하는 과정에서 줄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전자업계발(發) 저감기술을 신호탄으로, 감축해나갈 전방위적 방안 모색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CNB뉴스=선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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