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림 컬렉터-박종용 화백 특별한 ‘예술적 동행’ 전…28일까지

박종용 ‘결의 향연’, 차별화된 주제의식•조형언어로 새 예술세계 열어

심원섭 기자 2021.11.22 15:39:41

‘세종컬렉터 스토리’전, 이달 28일까지…한국 근·현대미술 흐름 한 눈에
박종용 ‘결의 향연’, 차별화된 주제의식과 조형언어로 새 예술세계 열어

 

박종용 화백 전시작인 ‘색채(오방)결’과 ‘운행(공전)결’.

세계적인 팬데믹 현상으로 예술과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크게 줄어들면서 오히려 그에 대한 갈구와 참여 의지는 점차 확산되고 있다.

지구촌 각지에서 눈길을 끄는 예술 공연과 전시가 조심스럽게 기지개를 켜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주목할만한 전시에 관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개개의 전시들이 나름의 의미와 가치를 담고 있지만 지난 9일부터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선보이고 있는 ‘세종 컬렉터 스토리’는 전시 이상의 메시지와 함의가 있다. 전시는 미술계에서 컬렉터의 역할을 재조명하고 작가 후원의 사회적 가치 공감을 확대하기 위한 취지에서 기획됐다.

올해는 그 세 번째 전시로 ‘어느 컬렉터와 화가의 그림 이야기’라는, 이전과는 사뭇 다른 측면이 조명되고 있다. 앞서 두차례 전시가 컬렉터의 소장품을 전시하는데 그쳤다면, 이번 전시는 컬렉터와 그가 후원한 작가의 작품이 함께 관객과 소통한다.

 

‘결의 빛’ 324×260cm, Mixed media(석채 등),2021
 

컬렉터인 고(故) 백공 정상림(1940~2019)은 검사 시절인 1970년대 후반 박종용 화가를 알게 된 후 40년 넘게 예술적 인연을 이어왔다. 정상림은 풍부한 예술 식견과 자신만의 심미안으로 오랫동안 많은 그림을 수집하고 작가를 후원해왔으며, 그 중 박종용은 그가 후원하는 작가이자 평생 예술적 동반자였다.

두 예술인은 2006년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에 미술관 건립을 계획하고, 2011년 8월 백공미술관을 개관했다. 이후 정상림은 꾸준히 우수한 한국 근·현대미술을 수집해왔고, 이들 작품을 바탕으로 수많은 전시회를 열었다. 박종용 화백은 백공미술관 관장으로, 작가로 화업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박 화백의 미술에 전환기적 변화가 일어나며 새로운 예술세계를 열어갔다. 지난한 시간을 예술의 본질에 천착한 끝에 세상 만물이 지닌, 자연의 본질인 ‘결’을 찾아내고 이를 작품화한 것이다.

‘결’은 나무나 돌, 살갗 등에서 조직의 굳고 무른 부분이 모여 일정하게 켜를 지으면서 짜인 바탕의 상태나 무늬를 말한다. 이러한 결은 세상 만물이 태어나 오랜 시간,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며 만들어진 결과로 그 물체의 역사 자체이며, 세상의 모든 존재는 각기 자신만의 고유한 결을 지니고 있다.

박 화백은 ‘결’이라는 조형적 언어로 자연과 우주의 본질(진실)을 표현한다. 그의 ‘결의 예술’은 뚜렷한 주제의식과 함께 차별화된 재료의 조합과 작품 형상화로 현대미술의 많은 작가들과 선명하게 구별된다. 이는 그가 2019년 대한민국창조문화예술대상과 39회 올해의 최고 예술가상, 지난 8월 제40회 대한민국미술대전(국전) 비구상부분 대상을 수상하는 배경으로 작용했다.

박 화백은 흙, 돌, 나무 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연 친화적인 재료를 이용해 변화무쌍한 자연과 인공의 관계를 작품으로 구현한다. 그는 자연의 ‘결’을 형상화하는데 흙을 곱게 걸러내 아교와 섞어 캔버스나 마대 위에 점을 찍어 화면을 채워나간다.

 

그의 추상회화는 ‘점’으로 시작되고 우주의 환원처럼 점으로 마무리된다. 한 점, 한 점 열정을 다해 색 점을 찍어나가며 만들어가는 ‘결’에는 삼라만상의 원리가 숨겨져 있고, 젊은 시절 단청과 불화를 그리며 익힌 경험을 녹여낸 재료의 사용은 그의 역사와 철학 모두를 담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세종 컬렉터 스토리’전에 전시중인 박종용 화백의 작품을 관객들이 감상하고 있다.

이번 ‘세종 컬렉터 스토리’ 전시는 크게 ‘정상림컬렉션’과 박종용 화백 작품전으로 나뉜다. ‘정상림컬렉션’ 전시는 △인물을 그리다 △자연을 담다 △새로움을 시도하다 △다양함을 확장하다란 4개의 섹션으로 구분해 한국 근·현대미술 대표작들을 선보인다.

이들 전시에서는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를 비롯해 한국 모던아트의 정착과 확산에 기여한 권옥연·김흥수·남관·최영림, 1970년대 모노크롬 열풍을 주도한 윤형근, 파격적으로 현대 동양화를 실험한 이응로·하인두, 국제적 조류에 걸맞는 미술을 추구하며 개성 있는 조형 세계를 구축해 나간 이우환·신성희·강익중 등의 작품 외에 각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김두환, 김영덕, 김원, 김훈, 류경채, 문서진, 박상옥, 박영선, 박영하, 변종하, 오지호, 오치균, 윤중식, 이두식, 이득찬, 이림, 이배, 이수억, 이숙자, 임직순, 장이석, 전혁림, 천칠봉, 최병소, 최예태, 표승현 등 근·현대 대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박종용 화백

‘박종용 작품전’은 ‘결’을 주제로 한 다양한 회화와 일부 입체예술을 선보인다. ‘결’ 회화는 한국 특유의 단색화와 불교의 만다라를 연상케 하는 ‘순정(純正)결’, 단청의 미감과 천여년 세월을 머금은 고유색을 담은 ‘색채(오방)결’, 우주의 운행을 함의하는 ‘운행(공전)결’ , ​빛의 굴절과 명암 등을 활용한 ‘결의 빛’ 등 30여 작품으로 꾸며졌다.

이와 함께 ‘결’의 또 다른 표현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해부학을 응용해 입체적으로 형상화시킨 ‘결 조각’ 작품을 만날 수 있는데, 이는 입체예술의 본격적인 창작을 알리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달 28일까지 이어지는 전시는 한국 근·현대미술을 개척하고 확장시킨 작가들의 수작들을 감상함과 동시에 미술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아울러 미술 애호가 정상림 컬렉터와 그의 평생 예술적 동지인 박종용 화백의 예술에 대한 안목과 예술 정신을 느낄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글=전동우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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