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식콜콜] 매운라면 먹고 마라비빔면으로 입가심…무모한 도전?

선명규 기자 2024.04.10 09:53:33

‘맵찔이’란 멸칭 싫어 무리한 조합 시도
1차 맵싸한맛 라면, 2차 마라맛 비빔면
4가지 고추에 한방 맞고, 마라향에 KO
쓰린 속 잡고 반성 또 반성 “겸손은 쉬워”
초점 바꾸면 사골 같은 진짜 맛도 느껴져

 

올해도 매운 라면 열풍은 이어진다. 하림의 더미식(The미식) 장인라면 ‘맵싸한 맛’과 팔도의 ‘팔도마라왕비빔면’이 대표 주자다. (사진=선명규 기자)

시대의 지성 이어령 선생은 “한국인은 무엇이든지 먹는다”고 했다. 마음, 나이, 겁, 심지어 욕까지. 그러나 먹는다고 하면 으뜸으로 떠오르는 것은 음식이다. 우리는 뭣보다 음식을 먹는다. 궁금해서 알아봤다. 뭐든 먹는 한국인을 유혹하는 먹을거리는 지금 뭐가 있을까? CNB뉴스 기자들이 하나씩 장바구니에 담고 시시콜콜, 아니 식식(食食)콜콜 풀어놓는다. 단, 주관이 넉넉히 가미되니 필터링 필수. <편집자주>


 


안녕하세요? CNB뉴스 산업부 선명규 기자입니다. 이전과는 달리 특별히 경어체로 찾아뵙습니다. 호기를 부리다 크게 데었거든요. 지금 무척 겸손한 상태랍니다.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있어요. 세상을 얕본 대가가 이렇게 클 줄이야. 내상을 크게 입었어요. 부아가 나서 덜컥 잡은 오늘의 주제 탓입니다.

지난해부터인가 매운 라면이 인기라지요? 농심 신라면 더레드, 오뚜기 마열라면, 삼양식품 맵탱 정도가 당장 떠오르네요. 이 분야 ‘레전드’인 불닭 시리즈 역시 빼면 서운할테고요. 부아가 난 포인트는 이런 음식들을 못 먹는 사람들을 부르는 멸칭 때문입니다. ‘맵찔이’라니요. 매운 음식을 몸이 거부하면 찌질하다는 걸까요? 꼭 제가 해당돼서 이러는 거, 네 맞습니다. 그래서 화끈하게 도전했습니다. 역대로 봐도 손꼽히게 맵다는 신제품 라면과 알싸함의 대명사 마라향을 입힌 역시 신제품 비빔면을 조합했습니다. 정식과 후식 개념으로요. 왜 그랬을까 여전히 후회되지만, 아무튼 이 기사 출발하겠습니다.

 

장인라면 맵싸한 맛은 고추들의 향연이다. 부트졸로키아, 하바네로 등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고추들이 국물에 몸을 담그며 스코빌 지수 8000을 완성했다. 불닭볶음면의 두 배다. (사진=선명규 기자)

 


‘글로벌 고추’와 ‘마라’의 역습



1차로 고른 건 현재 가장 ‘센 놈’입니다. 하림이 지난달 출시한 더미식(The미식) 장인라면 ‘맵싸한 맛’(이하 장인라면 맵싸한 맛)인데요. 매운맛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인 스코빌 지수가 8000이라네요. 4404인 불닭볶음면의 두 배 수준이라면 이해가 되실까요? 저는 안 됐어요. 수치에서 눈치 채고 접었어야 했는데. 용기백배 손놀림으로 냄비에 물을 올리고 말았네요. 보글보글 팔팔. 수프와 면을 넣었어요. 국물 색깔이 마치 고귀한 여왕님의 자줏빛 융 드레스 같았어요. 영롱했어요. 그런 여왕님이 돌변하는 건 금세였어요. 알싸한 향이 코를 향해 어퍼컷을 날렸어요. 여기서 두 번째 기회를 날렸고요. 몇 번 쿨럭였더니 조리가 끝났어요. 국물을 한 숟갈 떠서 마셨어요. 나의 식도와 위장 위치를 알게 됐어요. 국물이 타고 내려가며 가시는 길 즈려밟았거든요. 면발을 먹어도 중화가 되질 않았어요. 매운 맛이 가득 배서 속은 계속 타들어갔습니다.

원인은 ‘글로벌 고추 형제들’이 제공했습니다. 세계 연합이에요. 2013년까지 기네스북 매운 고추 랭킹 1위를 지킨 인도 출신 부트졸로키아, 남미를 대표하는 하바네로, 친숙한 청양고추, 청양고추보다 10배 정도 맵다는 베트남고추까지. 메시, 홀란드, 손흥민급 고추들이 퐁당 들어가서 아옹다옹 국제 경기를 치르니 그 열기와 함께 매운 지수도 팍팍 올라가더랍니다. 생각만 했는데도 또 땀이 나네요.

 

마라왕비빔면은 익숙한 비빔면에 마라향을 한스푼 얹었는데 의외로 조화를 이룬다. (사진=선명규 기자)


후하 후하 소리를 내며 먹는데 다른 냄비가 “나 끓는다”는 신호를 보냈어요. 마찬가지로 지난달 나온 따끈따끈한 팔도의 ‘팔도마라왕비빔면’(이하 마라왕비빔면)을 2차로 준비했답니다. 맛보니 둘의 차이는 극명해요. ‘장인라면 맵싸한 맛’이 속을 태운다면 ‘마라왕비빔면’은 혀를 꼬집어요. 혀가 마비될 정도로 맵다는 마라(麻辣)의 존재감이 확실히 드러나요. “나 마라야!” 자꾸 이렇게 외쳐요. 아무튼 두 제품을 연달아 먹었더니 입은 아리고 속은 쓰리네요. 맵싸한 라면을 먹고 해롱대다가 마라비빔면에 마지막 한방을 얻어맞고 뻗어버렸습니다.

 

매운맛을 대표하는 두 라면을 한번에 먹는다는 건 결국 무모한 도전이었다. (사진=선명규 기자)

 


마냥 맵지만은 않은 맛의 비결



여기까지는 하나마나한 말일 수도 있습니다. 둘 다 대놓고 맵싸하고 얼얼한 맛을 추구한 제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매운맛을 걷어내고 본연의 맛을 들여다보면 다른 점이 나타납니다. 누구냐 넌.

우선 ‘장인라면 맵싸한 맛’ 얘기부터 해볼게요. 사골과 쇠고기를 우린 액상수프가 어쩌면 ‘본캐’(본래 캐릭터)일지도 모릅니다. 맛의 깊이를 더해주거든요. 며칠간 우린 육수로 만든 평양냉면이나 푹 곤 녹진한 설렁탕처럼 만들어줍니다. 전체적으로 마냥 맵지만은 않다는 뜻입니다.

‘마라왕비빔면’은 마라가 투입되면서 보다 풍요로워졌어요. 아시다시피 미각에는 매운맛이 포함되지 않죠? 그런데 마라라는 향신료가 몸을 섞으면서 기존 단맛, 짠맛을 치켜세워줍니다. 이 제품의 본래 특징인 새콤달콤한 맛을 부각해 주는 거죠. 훌륭한 조연이란 얘기입니다. 그 역할에 충실하기 위한 준비도 단단히 했다고 하네요. 신제품 콘셉트는 ‘쿨(Cool)한 마라맛’입니다. 이를 위해 팔도 연구진이 차가운 면과 잘 어울리는 한국식 마라 분말수프를 개발했다고 합니다. 산초와 베트남 하늘초를 배합해서 평소 향신료에 익숙지 않아도 즐길 수 있게요. 이국적이되 경계되진 않는 맛의 탄생 비결입니다.

상처뿐인 영광, 아니 상처뿐인 체험은 여차저차 끝났습니다. <겸손은 어려워>란 노래가 있는데 겸손은 생각보다 쉽더군요. ‘맵부심’ 있는 분들을 존경하게 됐습니다. 그렇지만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해도 ‘맵찔이’라 비하하진 말아주세요. ‘맵하수’나 ‘맵린이’ 정도로 절충해요, 우리.

(CNB뉴스=선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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