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섭기자 |
2025.12.29 13:48:25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는 29일 임시집무실이 마련된 서울 예금보험공사로 처음 출근하면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 경제, 우리 사회는 엄중한 상황”이라며 “우리 경제가 단기적으론 퍼펙트스톰 상태로서 불필요한 지출을 찾아내 없애고 민생과 성장에는 과감하게 투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이 후보자는 “성장 잠재력이 훼손되는 구조적이고 복합적인 위기에 직면해있다”며 “고물가와 고환율의 이중고가 민생에 많은 부담을 주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우리 경제의 구조적 이슈로 ▲인구위기 ▲기후위기 ▲극심한 양극화 ▲산업과 기술의 대격변 ▲방소멸 등 5가지를 꼽았다.
그러면서 이 후보자는 “갑자기 어느 날 불쑥 튀어나와서 예상치 못한 위기를 만드는 ‘블랙스완’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모두 알고 있고 오랫동안 많은 경보가 있었음에도 무시하고 방관했을 때 치명적 위협에 빠지게 되는 ‘회색 코뿔소’(Gray Rhino)의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회색 코뿔소’ 상황은 미국 경제학자 미셸 워커가 지난 2013년 처음 사용한 용어로서 발생 가능성이 높고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를 간과하거나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아 큰 위기나 손실이 발생하는 사건을 가리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이 후보자는 “단기적 대응을 넘어 더 멀리, 더 길게 보는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기획예산처가 태어난 것”이라며 “기획예산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하는 전략기획 컨트롤타워로서 미래를 향한 걸음을 내딛는 부처”라고 강조하면서 “기획과 예산을 연동시키는 방식이 필요하며 단기적으로 그때그때 예산을 배정하는 게 아니라 미래 안목을 갖고 기획과 예산을 연동하는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이 후보자는 “국민의 세금이 미래를 위한 투자가 되게 하고, 그 투자가 또다시 국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전략적 선순환을 기획처가 만들어내겠다”면서 “더 멀리 길게 보는, 기동력 있고 민첩한 기획처, 권한을 나누고 참여는 늘리는 예산처, 그 운용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예산처로 거듭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후보자는 이재명 정부의 확장재정 기조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그 얘기를 꼭 하고 싶다”면서도 “별도로 자리를 만들겠다”고 말을 아꼈다.
한편 국민의힘은 28일 이재명 대통령이 보수정당에서만 3선을 지낸 이 후보자를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자 충격에 빠져 이날 후보자 지명 소식이 알려진 지 3시간 만에 예정에 없던 최고위원회를 소집해 이 후보자의 서울 중구·성동구을 당원협의회 위원장으로서 했던 당무 행위도 모두 취소한 뒤 전격적으로 제명했다.
국민의힘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이 전 의원은 현 정권에 부역하는 행위를 자처함으로써 내년 지방선거를 불과 6개월 남기고 국민과 당원을 배신하는 사상 최악의 해당행위를 했다”면서 “국무위원 내정 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 선출직 공직자 평가를 하는 등 당무 행위를 지속함으로써 정상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자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행태로 당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당무 운영을 고의적으로 방해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통령과 이 전 의원의 협잡은 정당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태로 결코 묵과할 수 없으며, 반드시 국민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며 “대국민 사과와 함께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국민 앞에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특히 국민의힘 한 서울 지역 의원은 29일 CNB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전혀 낌새가 없었다. 심지어 이 전 의원이 며질 전, 오늘로 예정된 중구‧성동 당원연수회를 위해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축사를 부탁해 3일 전에는 축사 영상까지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장관 인사 검증이 한 달 전부터 시작되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극명한 이중적 행태”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의원은 “이같이 배신감이 큰 만큼 (인사청문회에서) 더욱 철저하게 인사 검증을 할 수밖에 없다”며 “과거 언행부터 불법 의혹까지 모든 걸 파헤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송곳 검증’을 예고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이례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해 조국혁신당 등 범여권에서도 이 전 의원의 장관 지명에 반대하는 기류가 공개적으로 나오는 등 파장이 전방위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이날 자신의 SNS에 이 전 의원이 과거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한 사진이 담긴 기사 4건을 공유했으며, 박병언 대변인도 논평에서 “이 전 의원의 능력이 얼마나 높은지 몰라도, 윤석열 탄핵을 외친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신다면 대통령실은 이 전 의원 발탁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민주당 윤준병 의원도 이날 밤 자신의 SNS에 굵은 글자로 “대통령의 인사는 국민에게 보내는 가장 강력한 상징 언어”라면서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내란 수괴’라고 외치고 윤석열의 내란을 지지했던 국힘의 이혜훈 (전)국회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에 앉히는 인사, 정부 곳간의 열쇠를 맡기는 행위는 ‘포용’이 아니라 국정 원칙의 파기”라고 비판하면서 “동의하기 어렵다 지명을 철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리고 같은 당 이언주 최고위원도 SNS를 통해 “독선적이고 무능한 정치검사 윤석열에게 당시 국민의힘 소속 당원들까지도 일부 우려하고 반대하였던 상황에서, 윤석열 정권 탄생에 큰 기여를 하였거나 ‘윤어게인’을 외쳤던 사람도 통합의 대상이어야 하는가는 솔직히 쉽사리 동의가 안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최고위원은 “내란을 극복하고 대선을 이기기까지 수많은 국민들과 당원들, 인사들이 개인적 불이익을 감내하면서까지 온몸을 던져 함께 하였다”면서 “그들의 마음에 적잖이 상처가 될 것 같아 걱정”이라면서 거센 역풍을 우려했다.
(CNB뉴스=심원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