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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사사(社史)⑦] 한국의 매운맛 외교관…농심의 ‘라면 이야기’(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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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이성호기자 |  2024.05.29 09:46:53

그 시절 배고픔 달래주던 ‘농심 라면’
지금은 ‘K푸드’ 핵심으로 놀라운 발전
독보적 1위 신라면…전세계 곳곳 누벼

 

1965년 출시된 ‘롯데라면’. (사진=농심)

급변하는 경제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한길을 걸어온 기업들이 있다. 이에 CNB뉴스가 국내 대표적 장수(長壽) 기업들의 태동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과정을 짚어보고 미래 비전을 소개하는 <미니사사(社史)> 시리즈를 연재 중이다. 이번 편은 ‘한국의 맛’을 알리며 식품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농심의 ‘라면’ 이야기다. <편집자주>


 


농심의 전신인 롯데공업주식회사는 1965년 ‘롯데라면’을 출시하며 라면시장에 진출했다. 당시 ‘풍년라면’(풍년식품), ‘닭표라면’(신한제분), ‘해표라면’(동방유량), ‘아리랑라면’(풍국제면), ‘해피라면’, ‘스타라면’ 등 8개 제품이 시장에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실상은 삼양식품이 80%가 넘는 시장점유율을 기록하며 부동의 1위를 기록하고 있었고, 나머지 업체들은 고만고만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후 1969년, 삼양식품과 농심만이 살아남아 경쟁을 벌이는 구도로 정착됐다.

롯데공업주식회사는 라면시장에 뛰어든 지 10년째 되는 해인 1975년 ‘농심라면’을 선보였다. 농심은 농부의 마음이라는 뜻이다.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를 만들기 위해 땀 흘려 일하는 농부의 마음을 받들어 더욱 품질 좋은 식품을 생산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서민적 생활 정서를 담기 위해 농심라면은 당대 최고의 코미디언 구봉서와 곽규석을 모델로 선정하고,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는 한국 전래동화의 내용을 담아 친근하면서도 코믹한 내용의 광고를 제작했다. 친근한 이름, 재미있는 광고와 함께 농심라면은 일약 히트 제품으로 등극했다. 판매 1년 만에 라면 생산 실적을 두 배로 끌어 올릴 만큼 높은 인기를 얻었다.

‘농심’이라는 단어에 소비자 호감도가 높아짐에 따라 롯데공업주식회사는 1978년 회사 사명을 농심으로 변경했다. ‘롯데’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꾸려온 지 13년 만의 일이다.

1980년대는 라면시장의 황금기라 불린다. 지금까지 시장 매출액 순위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히트 제품 대부분이 이 시기에 탄생됐기 때문.

 

농심은 1982년 사발 모양으로 만든 ‘육개장사발면’을 등판시키며 용기면 시장을 열었다. 당시 광고 포스터. (사진=농심)

 


라면史 새로 쓴 대사건…‘너구리’의 탄생



신호탄을 쏜 것은 1982년 첫선을 보인 ‘너구리’였다. 오동통하고 쫄깃한 면발에 해물우동 맛을 담은 너구리는 출시와 동시에 소비자들 사이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또한, 같은 해 농심은 한국인의 식문화를 고려해 사발 모양으로 만든 ‘육개장사발면’을 등판시키며 용기면 시장을 본격적으로 열었다. 출시 이후 꾸준히 인기를 이어온 육개장사발면은 현재도 용기면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더불어 농심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구수한 된장을 베이스로 개발한 ‘안성탕면’을 이듬해 출시했으며, 1984년에는 짜장라면의 절대강자 ‘짜파게티’를 선보이는 등 다수의 히트 상품을 내놓으며 라면시장의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이처럼 1980년대 초중반 다수의 히트 제품을 통해 라면시장의 지각을 뒤흔든 농심은 결국 1985년 창사 20년 만에 삼양식품을 꺾고 라면시장 1위를 거머쥐었다. 당시 시장조사기관 자료에 따르면 1985년 라면시장 점유율은 농심 40.4%, 삼양식품 39.6%, 한국야쿠르트 12.8%, 청보 7.2%를 기록했다.

 

(사진=농심)

 


‘신라면’ 33년째 왕좌 자리 지켜



농심은 1985년 시장 1위에 등극한 이후 톱 자리를 더욱 공고히 다질 수 있는 제품 개발을 모색했다. 그 가운데 얼큰한 국물을 즐겨 찾는 한국인의 식습관에 착안, 한국인이 좋아하는 매운맛을 담은 라면 개발에 나섰다.

전국에서 판매되는 모든 품종의 고추를 사들여 매운맛 실험을 했고, 붉은 고추와 소고기가 잘 조화돼 매콤하고 개운한 소고기 국물 맛의 라면을 개발했다. 이렇게 세상에 나온 ‘신라면’(1986년)은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며 대부분 순한 맛 위주였던 당시 시장에서 매운맛 라면의 시대를 열었다.

한국의 매운맛을 대표하는 신라면을 통해 2위와 간격을 더욱 넓히며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우뚝 서게 된 것. 1988년 농심의 시장점유율은 절반을 넘어서 50.6%에 달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매운맛으로 시장에서 뜨거운 사랑을 받은 신라면은 1991년 라면시장 매출액 순위 1위에 오르며 시장을 재패하게 된다. 대한민국 라면 역사상 시장 1위를 차지한 제품은 삼양라면(1963~1986), 안성탕면(1987~1990), 신라면(1991~현재) 3개뿐이다.

신라면은 1991년 이후 현재까지 33년째 시장에서 왕좌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명실상부 대한민국 대표 라면으로 자리매김했다.

 

네덜란드 버스정류장 신라면 광고 모습. (사진=농심)

 


세계 곳곳 전초기지 설립…글로벌화 ‘속도’



2010년대에 접어들며 국민 소득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라면시장도 프리미엄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신호탄을 쏜 것은 2011년 농심이 내놓은 ‘신라면블랙’이었다.

당시 시중 라면보다 비싼 가격에 출시됐던 신라면블랙은 편법 가격 인상 논란을 겪고, 표시광고 위반으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을 부과받으며 판매가 중단되는 등 고초를 겪었다. 하지만 신라면블랙의 맛을 기억하고 찾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재출시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커지며 판매 중단 1년 2개월 만에 시장에 다시 등장하게 된다.

신라면블랙이 다시 판매되며 라면시장에는 본격적으로 프리미엄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또 한 번 불을 지핀 것은 2015년 농심이 선보인 ‘짜왕’이었다. 출시 1년간 1000억원 이상 판매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린 짜왕은 ‘프리미엄 중화풍 라면’ 열풍을 일으켰다.

이후 소비자들 사이에서 ‘가격이 다소 높더라도 맛과 품질이 좋으면 사서 먹는다’는 인식이 번지기 시작하며 다양한 맛과 콘셉트의 제품이 시장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현재 라면시장에는 다양한 콘셉트의 프리미엄 제품이 판매되며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한편, 농심은 국내 시장에 안주하지 않고 해외로도 눈을 돌렸다.

1981년 동경사무소 설치하고, 1984년 미국 사무소를 개설하며 해외 시장 개척에 본격 나선 것. 또한, 농심은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에서 면류 공식 공급 지정업체로 선정되며 세계인에게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88올림픽 당시 미국의 대표적 방송 NBC는 ‘농심의 육개장사발면은 미국의 햄버거와도 같은 식품’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렇게 세계인에게 이름을 알려 오던 농심은 1996년 중국 상하이, 1998년 중국 칭다오 그리고 2000년 중국 선양에 각각 식품제조시설을 완성하고 중국과 인근 국가에 대한 시장공략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농심은 아시아권에 이어 2005년엔 미국 LA에 공장을 설립하며 글로벌 시장 공략의 초석을 단단하게 다졌다.

<하(下)편에서는 ‘국민 소울푸드’에서 ‘K푸드’ 열풍의 주인공으로 도약한 농심의 라면사(史)가 펼쳐집니다>

(CNB뉴스=이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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