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한 데 5명은 내가 감당하기가 좀 힘들다. 내년 초에 상황 좀 보자”
지난 18일 받은 친구의 문자다. 보름 전쯤 승진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왔고, 들뜬 친구는 한턱내겠다며 송년회 겸 여럿이서 보자고 제안했지만 인원이 꽤 모이자 부담을 느꼈는지 일정을 미뤘다. 아무래도 최근 오름세의 물가가 부담인 모양이다.
실제 국내 대표적인 외식 품목의 가격이 올 하반기에도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갔다. 수치로도 분명하다.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종합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8개 외식 품목 가격은 최근 1년새 평균 6.4% 상승했다. 김밥의 경우 지난해 11월 대비 6.7% 오른 것으로 집계됐으며 냉면(7.7%), 비빔밥(7.4%), 삼계탕(6.8%), 삼겹살(1.6%) 등 조사 대상 품목 가격이 모두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11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2.74로 전년 동기 대비 3.3% 상승했다. 지난 6~7월 2%대로 떨어졌던 물가 상승률이 8월(3.4%)·9월(3.7%)·10월(3.8%)에 이어 4개월 연속 3%대에 머문 것이다.
11월 농축수산물물가지수도 지난 2022년 11월보다 6.6% 올라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3.3%)의 두 배에 달했다. 원재료 물가가 전방위적으로 상승세를 타면서 외식물가도 덩달아 오른 모양새다.
이러한 물가상승 영향으로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제품 구입을 미루거나 최대한 알뜰하게 구매하려고 하는 불황형(不況型) 소비가 늘고 있다.
불황형 소비의 대표적인 제품이 라면이다. 농심·오뚜기·삼양식품 등 라면업계 ‘빅3’는 올 한 해 해외 시장에서 호실적을 거뒀다. 글로벌 경기침체 속 물가가 오르면서 세계인이 저렴한 라면으로 한 끼를 해결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소비자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모습은 애플리케이션(앱) 사용 내역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NHN데이터가 발표한 ‘2023년 상반기 앱 트렌드 리포트’에 따르면, 고물가를 맞아 저렴한 가격의 도시락을 앞다퉈 출시한 편의점 앱의 설치 수가 지난해 하반기에 비해 약 25% 늘었고 더벤티, 컴포즈, 메머드오더 등 저가 커피 프랜차이즈 앱 설치 수도 같은 기간 대비 30% 이상 증가했다.
이와 함께 공동구매나 중고 구매를 통해 저렴한 가격에 쇼핑할 수 있는 중고나라, 공구마켓, 알리익스프레스 등은 쇼핑 앱 중 유일하게 설치 수가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치솟는 물가에 현 정부도 방안을 고심 중이다. 앞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5월 6개 소비자단체 대표들을 만난 자리에서 “물가안정을 정책 우선순위에 두고 지속해서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소비자단체들은 정부의 물가안정 노력 등 효과로 한국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낮은 물가상승률을 보였지만 누적된 고물가로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물가 부담이 여전히 높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요청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최근 모든 중앙부처 차관을 물가안정책임관으로 지정하는 등 특별물가안정체계를 가동해 빵·과자·우유 등 28개 품목 가격을 매일 점검하고 있고, 식음료 물가안정을 위해 실무 국장들이 주요 식품사 생산시설들을 찾아 가격 안정에 적극 협조해달라는 메시지를 전달 중이다.
이에 식품기업들도 연일 제품 가격 인상 계획을 철회하며 민생 안전에 동참하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대표적으로 오뚜기 ‘케첩’, 롯데웰푸드 ‘빅팜’, 풀무원 ‘초코그래놀라’ 등의 편의점 판매가 인상 계획이 취소됐다.
옆에서 보면 물가안정을 주제로 말들이 많다. 기자도 생각이 많지만 모두 차치하고 지금 이 순간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부디 내년에는 그 친구가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