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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왜 개인 사상을 게임에 묻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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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수찬기자 |  2023.12.15 09:29:57

사진=연합뉴스

대한민국 게임업계에 ‘초대형’ 논란이 터졌다.

굳이 ‘초대형’이라는 수식까지 붙여서 호들갑을 떤 이유가 있다. 최근 가장 민감한 사안인 ‘젠더 혐오’ 논란이어서다. 대처하기도 힘들고, 성별 갈등으로 번질 경우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일이 커지는 대형 사안이다.

논란의 시작은 지난달 25일 넥슨 게임 ‘메이플스토리’의 애니메이션 영상과 일러스트 등에서 남성 혐오의 뜻이 담긴 ‘집게손’ 표현들이 발견되면서였다. 집게손 표현은 한국 남성 성기 크기를 희화화하는 일종의 혐오 표현이다. 여초 성향의 한 온라인 커뮤니티의 대표 상징으로도 사용됐다. 현재 해당 커뮤니티는 폐쇄됐지만, 여전히 남성 혐오를 일삼는 일부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들이 쓰곤 한다.

이번 사태는 해당 영상을 만든 넥슨 하청 업체 ‘스튜디오 뿌리’에 속한 애니메이터가 SNS 상에서 한 발언이 네티즌들에게 뒤늦게 발견되면서 알려졌다. 해당 애니메이터는 본인의 SNS에 자신이 페미니스트임을 알리고, ‘은근슬쩍 스리슬쩍 페미 계속해줄게’라는 발언을 하면서 특정 사상 활동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이 애니메이터가 작업에 참여한 영상들 속에는 ‘집게손’ 표현이 여러 번 등장했다.

이후 네티즌들은 스튜디오 뿌리가 참여했던 ‘던전앤파이터’, ‘블루아카이브’, 스마일게이트의 ‘에픽세븐’ 등 여러 게임 내 일러스트 및 영상에서도 집게손 표현이 삽입됐다는 의혹을 내놨다.

여러 게임사는 주말 새벽부터 공지를 올리면서 발 빠르게 진화작업에 나섰다. 스튜디오 뿌리와 관련된 작업물 외에도 외주 작품을 전면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했고, 꼭두새벽부터 직원들이 긴급 소집됐다. 주 고객층이 남성인 만큼, 주 고객을 혐오하는 상징이 있다는 제보가 접수된 순간 빠르게 대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넥슨과 넷마블, 스마일게이트, 네오위즈, 님블뉴런, 스튜디오비사이드 등 다수의 게임사는 일러스트와 영상 수정 작업에 나섰고, 회사 차원에서 강경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넥슨 메이플스토리의 김창섭 디렉터는 “타인에 대한 혐오를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문화와, 그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이 메이플을 유린하도록 절대로 허락하지 않겠다”라며 단호하게 경고했다.

 

넥슨의 메이플스토리 엔젤릭 버스터 리마스터 영상. 캐릭터의 집게손 표현이 논란이 됐다. (사진=유튜브 캡쳐)

반면 일부 여성단체와 노동단체는 ‘억지 논란’일뿐이라며, 게임사와 게이머를 비판했다. 심지어 넥슨이 일부 유저의 집단적 착각에 굴복했다며, 게임문화 속 페미니즘 혐오몰이를 규탄한다는 내용의 집회를 넥슨 사옥 앞에서 열기도 했다.

또한, 논란이 된 애니메이션의 작업자가 누구인지를 두고 외주 진실공방이 이어지는가 하면, ‘사상검증’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면서 젠더 갈등으로 치부했다. 아울러, 민주노총과 넥슨 노조 간 갈등까지 일어나면서 노동계에서는 불협화음을 보이고 있다.

외주 작업자인 스튜디오 뿌리 측은 1차, 2차 사과문을 게시했지만, 며칠 만에 갑자기 태도를 바꾸었다. 해당 의혹에 대해 ‘네티즌들의 음모론’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음모론에 반박할 자료가 차고 넘치는데도 여론과 넥슨의 압박에 입을 열지 못했다”고 했다. 원청사는 해명의 기회를 주지 않았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이미 심판이 끝난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혹자들은 해당 문제를 두고 사상 대립, 이념과 진영 대립이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기업 간 거래에서 발생한 하청업체의 잘못이라고 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하청 측이 고의적으로 물품에 하자를 만들고 그 사실을 숨긴 뒤 납품한 셈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납품하는 상품에 개인 사상을 반영한 것이다.

설령 개인 사상을 반영하지 않은 행위이고, 모든 것이 우연이라 해도 원청의 매출과 이미지에 큰 타격이 간 것은 확실하다. 소비자가 문제를 제기한 이상 상품을 만든 제조사는 소비자들의 요구에 맞게 수정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의 기본자세 아닌가.

(CNB뉴스=김수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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