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이맘때다. 오후 1시쯤, 자주 가는 카페는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마음 급한 직장인들이 주문대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점심시간은 짧고 남은 근무시간은 기니까. 단순한 이치인데 좀체 수긍되지 않는 이 상대성이론은 빠른 커피 구매만이 타파할 수 있다. 오후를 버티게 할 카페인을 재빨리 수령해야 쉴 시간을 조금이라도 번다. 출근길, 문 닫히는 지하철을 향해 뛸 때만큼이나 조급해지는 순간이다.
그날은 유난히 더뎠다. 주문대 앞에 늘어선 긴 줄이 정체현상을 빚고 있었다. 뒤에서 보아하니 직원이 손님마다 붙잡고 손짓을 섞어가며 무언가 말을 하고 있었다. 내 차례가 되어서야 내막을 알았다. 앞으로 매장 내 일회용 컵 사용이 제한되니 다회용 컵을 써야 한다는 안내였다. 그러면서 오늘부터는 일반 컵과 보증금 1000원이 드는 다회용 컵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한다고. 보증금은 사용한 다회용 컵을 매장 내 반납기에 넣으면 돌려받을 수 있다고 했다. 다음날부터 한동안 지켜봤는데 다회용 컵을 선택하는 이들은 드물었다. 이 과정이 번거롭거니와 1분1초도 아까운 직장인의 점심시간을 미세하게나마 갉아먹기 때문이었다.
고백컨대 나라고 다르지 않았다. 이유는 조금 달랐다. 청결 상태를 의심했다. 불특정다수의 입을 거쳐 돌아온 ‘다회용’ 컵에 입술을 댄다? 마뜩잖았다. 다회용 보단 재사용이란 이미지가 더 크게 다가왔다. 찝찝함이 앞섰다. 친환경이란 거국적 목적은 뒷전으로 밀렸다. 그러나 세계 어디서도 뒤지지 않는 선진 국민들은 달랐다. 지금 그 카페에선 여전히 긴 줄이 매일같이 보인다. 주문대가 아니라 다회용 컵 반납기 앞에서다.
2년 사이에 무슨 심경변화가 있었던 걸까. 그 심리적 변동폭을 측정할 순 없으나 추정할 만한 자료가 있다. 지난 6월 SK텔레콤은 다회용 컵 순환 캠페인 ‘해피해빗’ 시행 2년 만에 일회용 컵 1000만개를 절감했다고 밝혔다. 이는 293톤의 탄소배출을 저감한 효과와 맞먹으며 이렇게 줄인 일회용 컵을 일렬로 쌓으면 1400km에 달한다고 한다.
전국 카페, 관공서 등에 반납기를 설치해 얻은 결과다. 이 캠페인에는 SK텔레콤을 비롯해 스타벅스, 인천시청 등 90개 기관 및 기업이 동참하고 있다. ICT 솔루션을 기반으로 한 다회용 컵 반납기가 캠페인의 핵심 장치다. SK텔레콤이 제공한 비전 AI(Vision AI) 기술이 무인 반납기에서 다회용 컵을 식별하고, SK그룹이 설립한 사회적 기업 행복커넥트가 이를 수거하고 세척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참여기관이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라고 하니, 다회용 컵 사용의 대중화가 목전에 온 것이다.
그런데 웬 걸. 다회용 컵 사용이 정착하고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판이 뒤집히게 됐다. 정부가 돌연 식당에서 일회용 종이컵 사용을 금지하지 않는 한편, 카페에서 플라스틱 빨대, 편의점에서 비닐봉지 사용도 단속하지 않는다고 발표하면서다. 지난해 11월, 앞으로 1년 동안 계도기간을 갖고 일회용품을 규제하기로 했는데 사실상 유야무야 된 것이다. 이로써 ‘일회용품 사용량 감축’이란 세계적 흐름에도 역행하게 됐다.
이유도 석연치 않다. 임상준 환경부 차관은 종이컵 사용 금지와 관련해 “다회용 컵을 씻을 인력을 추가로 고용하거나, 세척기를 설치해야 하는 부담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해피해빗’을 통해 경제적 취약계층 70여명이 일자리를 얻었다고 한다. 누구를 고용할지 따져보면 해결될 문제다.
2018년 기준 일회용 컵 사용량은 294억개. 심각성을 인지하고 범국가적으로 대처한 지는 3년 남짓이다. 그간 유의미한 변화가 있었는데 이렇게 뭉개서야 될까. 높은 시민 의식을 정부가 모른 척해서야 될까. 그간의 노력이 묻히려는 것을 보자니 자꾸만 이런 생각이 든다.
하랄 땐 언제고.
(CNB뉴스=선명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