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윤기자 | 2023.09.18 11:01:03
부산대학교와 경희대학교 공동연구진이 벼 중복수정의 핵심 과정인 '꽃가루관 생장'에 관여하는 펩타이드를 발굴하고 그 신호전달 메커니즘을 밝혀, 세계적인 식물과학 학술지 'Journal of Integrative Plant Biology(저널 오브 인터그레이티브 플랜트 바이올로지)' 9월호에 게재했다.
부산대 생명환경화학과 김유진 교수팀은 경희대 유전공학과 정기홍 교수팀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단자엽 식량작물 최초로 식물의 성장과 발달에 관여하는 RALF 펩타이드를 발굴하고, 꽃가루에서 특이적으로 작용하는 두 개의 RALF 펩타이드가 꽃가루관 형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함을 밝혔다.
식물의 수정을 위해서는 수술에서 생성된 꽃가루가 암술머리에서 발아해 꽃가루관을 생성하고, 꽃가루관이 신장하며 암술대를 통과해 두 개의 정핵 세포를 밑씨에 전달해야 한다. 이 중 한 과정이라도 정교하게 조절되지 못하면 수정에 실패하게 되고, 작물의 생산성이 감소한다.
최근 모델 식물 애기장대에서 중복수정에 관여하는 유전자와 그 메커니즘이 밝혀지고 있으나, 작물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미비한 실정이다.
이에, 연구팀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식량작물인 '벼'에 존재하는 41개의 RALF 펩타이드를 어노테이션하고, 이들 중 꽃가루에서 특이적으로 발현하는 RALF17과 RALF19를 집중적으로 연구해 그 역할과 기작을 규명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크리스퍼/카스9(CRISPR/Cas9)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RALF17과 RALF19 두 유전자를 모두 제거한 벼는 웅성불임을 보였다. 세포학적 실험을 통해 이들 유전자가 제거된 꽃가루는 세포벽 펙틴의 분포가 비정상화 돼 꽃가루관을 형성하지 못한다는 것이 확인됐다. 웅성불임 벼는 육종을 위한 교배에 필수적인 과정인 제웅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에서 육종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전망이다.
RALF17과 RALF19는 인산화효소군에 속하는 수용체에 결합해 수용체 하위 활성산소 신호전달에 관여한다. 꽃가루관에 외인성 RALF 펩타이드를 처리한 결과, 활성산소의 발생량이 증가했으며 처리 농도에 따라 꽃가루관의 길이가 달라졌다. 고농도에서는 꽃가루관 발아 및 신장을 억제했지만, 낮은 농도에서는 신장을 향상시켰다.
활성산소는 꽃가루관 생리의 중요한 신호전달 인자로, RALF 펩타이드는 활성산소와 관련된 여러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데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앞서, 쌍자엽 모델 식물인 애기장대에서 이뤄진 연구는 RALF 펩타이드가 뿌리털, 어린 식물, 꽃가루관 등의 생장을 억제한다고 보고했으나, 김유진 교수팀은 저농도의 외인성 RALF 펩타이드가 오히려 꽃가루관의 신장을 향상시킬 수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이는 RALF 펩타이드가 단순히 조직의 생장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생장을 위한 메커니즘을 섬세하게 조절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연구를 주도한 부산대 김유진 교수는 식량작물로는 처음으로 벼에서 RALF의 기능을 밝힌 것을 이번 연구의 핵심 의의로 들며, "특히 실험실 학생들이 지금도 다른 RALF들에 대한 분석과 규명을 이어가고 있어, 벼의 발달 및 생리에 이들 인자의 중요한 역할을 이해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부산대 김유진 교수와 경희대 정기홍 교수가 공동 교신저자, 부산대 김지현 석사과정생과 김의정 박사과정생이 공동 제1저자로 수행했으며, 부산대 김선태 교수팀과 경북대 박순기 교수팀이 공동으로 참여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국내 최초로 국립대 인증을 받은 부산대 LMO 격리 포장시설에서 진행됐으며, 한국연구재단의 우수신진연구과제 및 기초연구실과제 지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