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뉴스=도기천 편집국장)
“국민들은 달을 가리키는데 국회는 손가락만 봤다”(한 초선의원)
21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4일 막을 내렸다. 이번 국감은 ‘라임·옵티머스 국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여야가 이 사안에 사활을 걸고 부딪쳤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라임자산운용의 핵심 인물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증언을 근거로 사실상 윤석열 검찰총장이 개입된 검찰 게이트로 규정해 야권을 압박했다. 반대로 야당인 국민의힘은 청와대·여권의 권력형 게이트로 간주, 특검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여권의 총대는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멨다. 추 장관은 “라임 수사가 부실했던 원인이 윤 총장에게 있다”며 의혹의 불씨를 당겼다. 윤 총장이 국감에서 “중상모략은 내가 쓸 수 있는 가장 점잖은 단어”라며 이를 강하게 부인하자, 며칠 뒤 추 장관은 ‘직접감찰’ ‘해임건의’를 언급하며 다시 윤 총장을 압박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 수백명이 이른바 ‘댓글 항명’에 나섰고, 윤 총장은 “살아있는 권력 수사가 검찰개혁”이라며 이들을 두둔했다. 반면 항명 검사들의 사표를 받으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4일 기준 40만명을 넘었다.
영화 속에나 있을 법한 장관과 총장 간의 격돌로 두 사람은 국감 기간 내내 실검 1~2위를 오르내렸다.
웃지 못할 헛발질도 이어졌다. 국민의힘은 김 전 회장이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5천만원을 전달했다는 취지의 법적증언을 근거로 국감 공세수위를 높였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이 “검찰이 형량 감량을 미끼로 허위 진술을 시켰다”고 말을 바꾸는 바람에 ‘양치기 소년’꼴이 돼 버렸다.
‘70년생 김진표’가 등장한 것도 대표적인 해프닝이다.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은 국회 법사위의 서울고검 등 국감에서 ‘정부·여당 인사가 포함된 옵티머스 펀드 투자자’라는 명단을 공개했다. 유 의원은 “명단에 김영호 김경협 김진표 김수현 박수현 이호철 진영 등 민주당·청와대 관계자의 이름이 여럿 나온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명단 속 김진표는 70년생 동명이인이고, 박수현은 여성, 김영호는 70대 노인이었다. 부총리와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김진표는 47년생이다.
3천개의 질의, 라임·옵티 블랙홀로 사라져
이처럼 여야가 중앙정치에만 몰두하면서 정책국감은 실종됐다.
이번이 첫 국감인 초선들은 ‘민생 최우선’을 국감 목표로 내세웠지만 성적표는 초라했다. 정쟁에 휘말려 애써 준비한 질문자료들이 빛을 보지 못한 것.
실제로 CNB가 국감 기간 동안 여야 의원실로부터 이메일로 받은 보도자료는 3500여건에 달한다. 이중 일부 중복전송을 제하더라도 3000건이 넘는다.
이중에는 공공기관 장애인 의무고용 실상을 파악한 양정숙 의원, 포털사이트의 특정언론사 독과점 문제를 지적한 최형두 의원, 공익법인이 총수일가의 지배력 강화에 악용되고 있는 점을 따진 박용진 의원, 경기도 남부·북부 간의 차별 문제와 균형 발전을 제시한 심상정 의원, ‘10년 공공임대 분양전환 아파트’로 서민 고혈을 짜내고 있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를 질타한 김은혜 의원 등 눈에 띄는 정책질의와 자료들이 꽤 있었다. 이 모든 게 라임·옵티 ‘블랙홀’에 빨려 사라진 것이다.
그렇다고 라임·옵티 사태를 소홀히 다루자는 얘기가 아니다. 이 또한 민생과 직결된 중한 사안이다. NH투자증권, 하이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KB증권, 대신증권, 우리은행, 신한은행 등 내로라하는 금융사들이 공공기관 채권 등 안전자산에 투자한다며 서민들을 현혹했고, 수만명이 이에 속아 쌈짓돈을 맡겼다는 점에서다. 이를 감시해야할 금융당국의 책임 또한 가볍지 않다.
이런 점들을 따져 피감기관이 피해자 구제에 나서도록 만드는 게 이번 국감 때 국회가 할 일이었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절규는 검찰·정치권 로비 의혹, 사법부 내부 갈등 이슈 등에 묻혀 버렸다.
여야가 각각 ‘검찰개혁’과 ‘검찰방어’에 매진하는 사이, 서민들은 치솟는 전셋값에, 고용불안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43%가 코로나19 여파로 일자리를 잃을까 불안해하고 있다.
여야는 이제라도 정쟁을 멈추고 민생을 돌아보길 바란다. 라임·옵티 사태 또한 ‘서로 네탓’ 공방만 벌일게 아니라 피해자 구제책부터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국민을 위한 법안을 만들고 통과에 힘쓰는 입법부 본연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바람이 이 시대에는 과한 욕심이 됐지만, 그래도 눈앞의 불은 꺼야 하지 않겠나.
(CNB뉴스=도기천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