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티머스 투자명단이 무슨 살생부입니까? 돈 잃고도 오해받는 형국이라 두 번 죽는 거죠”(한 대기업 임원)
옵티머스 사태가 통상적인 검찰 수사를 넘어 특검이나 공수처 수사로 전환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재계가 좌불안석이다. 특검 등이 시작되면 펀드에 투자한 재계 인사들과 기업의 실명이 다시 거론되면서 구설수에 오를 수도 있기 때문. 그래서 피해자임에도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CNB=도기천 기자)
‘공기업 채권 투자’에 믿고 돈 맡겨
알고보니 옵티의 잘 짜여진 사기극
투자실패 논란될라 ‘벙어리 냉가슴’
28일 정치권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사기로 드러난 옵티머스자산운용의 사모펀드에 투자한 상장사만 59곳에 달한다.
가장 많이 투자한 한화종합화학(500억원)을 비롯해 오뚜기 150억원, 편의점 CU를 운용하는 BGF리테일 100억원, LS일렉트릭 50억원, 넥센 30억원, 안랩 70억원, JYP엔터테인먼트 50억원, HDC현대산업개발 65억원 등이다.
대기업 오너들의 이름도 눈에 띈다. 강병중 넥센그룹 회장이 110억원, 허승조(전 GS리테일 부회장) 일주학술문화재단 이사장이 66억원, 구본식 LT그룹 회장이 40억원,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20억원을 투자했다.
이외에도 건국대, 성균관대, 한남대, 대구가톨릭대학교, 마사회, 한국도로공사,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등 대학과 공기업들도 수십~수백억원의 자금을 맡겼다.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투자자는 개인과 법인을 포함해 총3359곳(중복 포함)이었고 투자금만 1조5000억원이 넘었다.
투자 기업과 오너들 중 상당수는 환매 중단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에 펀드를 정리했기 때문에 손실을 입지 않았지만 일부는 환매가 중단되면서 자금을 돌려받지 못한 상태다.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이라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지만 검찰은 최소 5000억원 이상의 자금이 증발했다고 보고 있다. 안랩의 경우 70억을 투자했다가 60억원을 환매했지만 아직 10억원을 돌려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익률 낮아 오히려 신뢰”
이처럼 내로라하는 기업과 경영인들이 금융사기에 휘말린 까닭은 뭘까.
일단 상품구조가 매우 안정적이라는 점에 속은 것으로 보인다.
증권업계와 금융전문가들에 따르면, 옵티머스는 2017년 6월부터 NH투자증권, 하이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대형증권사 9곳을 통해 “안전한 공공기관 채권에 투자한다”며 고객을 모집했다.
당시 증권사들은 “한국도로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기업으로부터 받을 공사대금(매출)을 담보로 발행한 채권에 투자하는 상품”이라고 홍보했다. 공공기관은 수주업체에게 일정 기한이 지난 시점에 공사대금을 지급하는데, 수주업체는 이렇게 향후에 들어올 대금을 근거로 채권을 발행해 현금화한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투자자들 사이에는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공기업 공사대금은 차질이 없기에 ‘매우 안정적’이라는 믿음이 형성된 것이다.
증권사들이 연3%의 비교적 낮은 수익을 내건 점도 이 때문이다. 통상 고위험 상품일수록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데, 옵티머스는 가장 안전한 5등급(1등급이 초위험군)으로 분류됐다. 그래서 당시 사모펀드들이 5~6%대의 수익을 내걸었음에도, 이보다 훨씬 낮은 옵티머스에 돈이 몰린 것.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크게 내려간 점도 상대적으로 옵티머스를 돋보이게 만들었다. 2014년까지 2%대를 유지했던 기준금리는 펀드 판매 당시인 2017년에 1.25%까지 내려간 상태였다.
실제로 금융정의연대와 피해자대책위에 접수된 사례를 보면, 대부분 투자자들은 은행 이자보다 수익이 조금 높다는 말에 돈을 맡겼다고 한다.
금융정의연대 김득의 대표는 CNB에 “(옵티머스 펀드의) 상품설명서를 보면 가장 안전한 5등급으로 되어 있으며, 증권사들도 고객 중에서 가장 안전지향적인 고객들을 상대로 펀드를 판매했다”며 “대부분 투자자들은 큰 이익은 없지만 공공기관 투자라서 안전하다는 말에 현혹돼 돈을 맡겼다”고 전했다.
이는 펀드에 회삿돈을 맡긴 기업들의 주장과도 일치한다. CNB가 투자 기업 몇곳을 취재해보니 다들 투자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A기업 관계자는 CNB에 “높은 수익을 올리려면 부동산에 투자하지 왜 채권형 펀드에 맡기겠나”며 “포트폴리오 분산 차원에서 여유 자금 일부를 보수적으로 투자한 것인데, 사고가 날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토로했다.
B기업은 “증권사로부터 온 투자제안서를 검토한 결과 상당히 안정적인 상품구조라 판단해 투자했다”고 밝혔고, C기업은 “공기업 매출채권을 담보로 수익을 내는 구조라서 당연히 원금이 보장되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원금 회수가 안될 경우 판매사(증권사) 등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표 또한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등 재무상태가 부실한 공공기관이 대규모 투자를 강행한 점은 의심이 가지만, 대기업들의 투자는 규모나 절차로 볼 때 정상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재판 벌어지면 일부 과실 드러날 수도
그렇다면 기업들이 투자한 돈은 어디로 증발했을까.
금융권 분석과 검찰 수사 상황을 종합해보면, 옵티머스자산운용은 처음부터 작정하고 금융사기를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공공기관 매출채권’의 실체가 불분명 한데다, 투자금의 대부분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갔다는 점에서다.
옵티머스는 펀드에 모인 자금의 대부분을 성지건설, 씨피엔에스, 대부디케이에이엠씨, 하이컨설팅, 골든코어, 엔비캐피탈대부, 내추럴코어, 티알시티, 내추럴에코그룹 등 부실기업과 대부업체에 송금했다. 이들은 공공기관 발주와 아무 상관이 없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CNB에 “공공기관의 공사대금으로 매출채권을 발행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수주업체 입장에서는 국가계약법에 따라 공정률에 비례해 대금을 지급 받으므로 굳이 채권을 발행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결국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규모 환매요구 사태가 벌어졌고, 증권사들은 지난 6월 환매 중단을 선언했다. 감당 못할 지경에 이르자 손을 든 것이다.
이런 앞뒤 사실로 볼 때, 기업과 오너들에게 ‘단순 투자 실패’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옵티머스가 사실상 부도(환매불가) 상황에 처해 환매자금 돌려막기에 나선 것이 2018년 하반기부터였다는 진술이 나오고 있는 점은 기업들에게 부담이다. 재계 관계자는 “투자 규모가 큰 기업은 주주들로부터 왜 진작에 눈치채지 못했냐는 비난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건국대 등 일부 투자기관의 법위반 사실이 드러난 점도 기업들을 위축시키고 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지난 26일 건국대가 옵티머스 펀드에 120억원을 투자한 것과 관련, 사립학교법 위반 사실을 확인했다고 국감에서 밝혔다. 투자자의 잘못이 최초로 드러났다는 점에서 기업들은 행여나 불똥이 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금융사건에 능통한 한 변호사는 CNB에 “이번 사건의 본질은 자산운용사가 증권사를 기망해 고객에게 불완전판매(허위상품판매)를 한 전형적인 금융사기”라면서도 “금감원 분쟁 조정이 원활하지 못할 경우 투자기업들과 증권사 간에 대규모 소송전이 벌어질 수 있으며, 재판 과정에서 기업의 일부 과실이 드러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