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청과 노점상인들이 포장마차 운영을 놓고 정면충돌했다. 자치구는 철거한 포차 리어카를 1개월 넘게 상인들에게 돌려주지 않고 있다. 생계수단을 잃은 노령의 상인들은 구청 앞에서 농성 중이다. 법과 생존권 사이에서 타협점은 보이지 않는다. CNB가 수일에 걸쳐 내막을 취재했다. (CNB=도기천 기자)
마포구, 방역 강화되자 포차거리 기습철거
상인들, 하루아침에 수십년 생계수단 잃어
진보당 등 대책위 만들어 구청서 항의농성
행정 집행과 생존권 사이에 타협점은 없나
“저녁 6시부터 문 여는데 초등학생 등하교와 무슨 상관이 있나? 학교는 구실일 뿐이야”(포장마차 노점상인)
“초등학교 코앞에서 술을 판다는 게 말이 되나? 주민들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마포구청 건설관리과 관계자)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서울 마포구의 마지막 남은 포장마차 거리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염리초등학교 맞은편에 위치한 한국전력공사 마포용산지사 건물 담벼락에는 지난달 초까지만해도 저녁마다 노란 불빛 행렬이 추억을 저격했다. 여섯 개의 주황색 포장마차에서 새나온 불빛을 접하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듯했다.
이곳은 수십년 세월 동안 ‘한전 포장마차 거리’로 불렸다. 지하철 5호선 마포역과 인접한데다 한전지사를 비롯한 여러 오피스빌딩이 밀집한 곳에 자리잡고 있어 퇴근길 직장인들의 시름을 달래왔다.
해마다 먹거리 축제가 열리는 ‘용강동 음식문화거리’와도 붙어있어 식사 후 2차로 들리는 손님들이 많았다. 한때 포장마차 수가 20여동에 이르러 불야성을 이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최근에는 여섯개 리어카만 밤거리를 밝혀왔다.
하지만 지난달 2일 마포구청은 이 포장마차들을 전부 철거하고, 그 자리에 큰 화분들을 갖다뒀다. 포차를 운영하던 노점상인들은 기자에게 “장사한지 30년 만에 이런 일은 처음이다. 하루벌어 하루먹고 사는 사람들한테 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울분을 토했다.
상인들 “방역수칙 지켰다가 날벼락”
어떻게 된 일일까?
마포구와 노점상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이렇다.
정부는 8.15 광화문 집회로 코로나 감염자가 급속히 늘어나자 8월30일부터 9월6일까지 8일간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2.5단계로 격상한다. 이에 따라 모든 음식점은 저녁 9시 이후 영업이 금지(포장·배달은 예외)됐다. 포장마차·거리가게·푸드트럭도 마찬가지였다.
서울시는 서부지역노점상연합회(서부노련)에 이에 관한 협조공문을 띄웠고 서부노련은 회원 노점상들에게 이를 알렸다. 상인들은 밤9시까지는 영업을 할 수도 있었지만 아예 포장마차를 접어서 보관소에 맡겼다. 방역정책에 적극 협조하자는 취지였다. 구청에는 “9월 6일까지 영업을 하지 않을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알렸다.
하지만 구청은 9월1일 보관소에 있던 포장마차에 철거예정을 알리는 계고장을 붙였다. 그리고 다음날 포장마차들을 전부 수거해갔다.
방역수칙을 지키려고 치워둔 포차를 기습적으로 철거했다는 점에서 구청의 행동은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에 대해 상인들은 “눈엣가시였던 포차들을 이때다 싶어 정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상인 김모씨는 CNB에 “포차가 한꺼번에 보관소에 맡겨진 때가 (기습철거할) 찬스라고 판단한 것이며, 더구나 방역수칙 때문에 우리가 항의집회도 열 수 없다는 걸 계산했다”고 말했다. 당시 서울에서는 10인 이상 집회가 금지 됐었다.
또다른 한 상인은 “내가 장사하던 자리에 큰 화분이 있길래 예감이 이상해서 보관소로 달려가보니 리어카가 사라지고 없었다”고 전했다. 포차가 보관소에 있어 계고장을 볼 수도 없었다는 얘기다.
‘학교앞 술 판매’ 결국 법으로
마포구는 상인들의 행동이 ‘불법’임을 강조하고 있다. 학교 앞에서 술을 파는 행위 자체가 위법이라는 것. 학교보건법에 따르면 유흥주점 등은 학교 출입문으로부터 50미터 이내인 ‘절대정화구역’에 들어설 수 없고, 이 구역을 벗어나도 200미터 이내인 ‘상대정화구역’에는 학교정화위의 심의를 통과해야 입점할 수 있다. 여기에다 포장마차는 보행로를 점유하고 있어 도로법에도 저촉된다.
구청은 강경한 원칙론을 고수하고 있다. 서부노련과 진보당·정의당 등이 결성한 ‘마포 한전 포장마차거리 지키기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상생협의회를 열어 이 문제를 해결하자고 마포구청에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지만 구청은 묵묵부답이다. 상생협의회는 작년에 구청과 노점상연합회가 함께 결성한 협의기구다.
심지어 구청은 프랭카드 한 장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진보당과 정의당의 마포구위원회는 “기습단속 중단하고 상생협의회 개최하라”는 내용의 프랭카드를 내걸겠다고 구청에 신고했는데, 구청은 ‘불법노점상’이라는 단어를 추가해야 게시를 허락할 수 있다고 통보했다. 통상 정당이 내거는 프랭카드는 공공현수막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지자체가 내용을 문제삼는 경우는 드물다.
이번 사안을 전담하고 있는 마포구청 건설관리과 관계자는 CNB에 “상생협의회는 적법한 사안을 논의하는 기구다. 위법(학교앞 주류 판매) 행위를 안건으로 올릴 수는 없다”며 “술을 팔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다면 상생협의회를 열고, 영업도 재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구청 측은 영업행위 자체를 금지하려 했던 당초 방침에서 한발 물러나 상인들이 주류를 팔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면 영업을 허락하겠다는 입장이다.
하필 사회적거리두기 강화로 상인들이 자진철수한 시점에 철거를 강행한 이유에 대해서는 “지난 30여년간 (주류 판매 등의) 불법행위가 계속되어왔고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언젠가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일을 지금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럴 필요까지?” vs “위생문제 심각”
이처럼 구청이 강경론을 고수하면서 이번 사태는 정면충돌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대책위는 지난달 17일에 이어 이달 7일에도 마포구청 앞에서 항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7일에는 유동균 마포구청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구청장실 진입을 시도했지만, 구청측은 엘리베이터 가동을 중단하고 계단실 문을 잠가 출입을 막았다. 이 과정에서 대책위 관계자들은 고성을 지르며 장시간 구청 직원들과 대치했다. 대책위와 별도로 60~70대 고령인 노점상인들은 상복 차림에 빈 관을 들고 구청 로비 앞에서 항의했다.
대책위는 대화부터 하자며 구청을 압박하고 있다. 대책위 관계자는 CNB에 “먼저 각서부터 쓰라는건 대화를 안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상생협의회부터 여는 것이 순서”라고 강조했다.
한 노점상인은 “가뜩이나 코로나로 매출이 반토막난 상태다. 퇴근길 직장인을 상대로 장사하는데 술을 못팔게 하면 죽으라는 소리 아니냐”고 토로했다.
이를 바라보는 주민들의 심정은 착잡하다. 구청이 너무했다고 말하면서도, 포차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들이 많았다.
포차에 종종 들린다는 인근 주민 정상수씨(49)는 CNB에 “그냥 나둬도 비대면 문화와 재개발 등으로 저절로 사라진텐데 굳이 고령의 이모님들(단골들은 포차 주인을 이모라고 지칭)에게 (구청이) 저럴 필요까지 있나”며 “구청이 철저한 위생관리와 행정지도로 민원을 최소화해 포차를 유지시켜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반면 또다른 주민은 “취객들의 담벼락 노상 방뇨 등 위생문제가 상당히 심각했다”며 “일단 철거를 전제로 하되, 그분들이 다른 일거리를 찾을 때까지 유예기간을 주는 쪽으로 타협점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포장마차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노상점포에 대한 정책이 자치구마다 ‘이현령비현령’이기 때문이다.
아예 번호표를 붙여 엄격하게 관리하는 구도 많지만, 일부는 여전히 통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자칫 서민의 생존권을 짓밟았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게 단체장들의 심정이다. 정치인들도 ‘노점상 정리’를 공약으로 내걸면 냉혹하게 보일까봐 주저하는 분위기다. 그렇다고 노점상인과 친근하게 지낼 수도 없다. 자칫 표가 떨어질 수 있어 포차 근처에는 사진도 찍으러 가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포장마차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1997년 외환 위기를 겪으며 한동안 포장마차 수가 증가한 적도 있지만 그때 뿐이었다. 인근 업주들의 반발과 단속 강화, 위생 문제, 도시개발 등으로 갈수록 줄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 마포구 포장마차 사태는 다른 구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결론 나느냐에 따라 노점상 정책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다.
‘법’과 ‘낭만’ 사이에 해결책은 없는걸까?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