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뉴스=도기천 편집국장)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로 온 나라, 전 세계가 비상상황이지만 무풍지대가 있다. 한국의 부동산 시장이다.
정부가 두어달 전 야심차게 내놓은 12.16대책은 이미 약발이 다했다. 강남과 마용성(마포·용산·성동)을 누르자 비웃듯 안시성(안산·시흥·화성), 김부검(김포·부천·검단), 수비대(수도권·비규제지역·대단지) 등 전국 곳곳이 요동치고 있다.
급기야 지난 20일 최근 집값이 급등한 수도권 5곳을 조정대상지역으로 추가 지정했다. 하지만 시장은 ‘소 닭 보듯’ 하는 분위기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부동산 대책은 무려 19번이나 나왔다. 혹자들은 이를 ‘두더지 게임’에 비유한다. 올라올 때마다 때리지만 매번 한 박자 늦거나, 제대로 맞춰도 이내 옆에서 또 튀어 오른다.
“오른 집값을 원래대로 돌려놓겠다”(대통령), “안 떨어지면 더 강력한 대책 시행”(국토부장관), “부동산 문제로 금리인하 어렵다”(한국은행총재)
대통령, 국토부장관, 심지어 한국은행 총재까지 부동산 걱정이다. 그런데 이들이 말하는 대책은 세제, 금융(대출규제), 거래, 공급에 국한된 것들이다. 필자가 보기엔 전부 접근법이 틀렸다.
가령, 정부가 비장의 카드로 꺼낸 분양가상한제(건설사 분양가격의 상한선을 정한 제도)를 보자. 이 제도의 문제점은 상한제가 적용된 곳을 피하기만 하면 된다는 데 있다.
예를들어 서울 마포구에서 분양가 제약을 받게 돼 인근의 은평구에 아파트를 지을 경우 마포구보다 더 높은 가격에 분양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은평구 집값은 마포구만큼 오르게 된다. 작년 여름 김현미 국토부장관이 강남3구에 대해 상한제를 예고하자 서울 대부분 지역의 집값이 ‘썸머랠리’를 탄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동산투기 꽃길 깔아주고 전쟁 벌인다고?
따라서 지금의 규제일변 정책에서 벗어나 어디서 첫단추가 잘못 끼워졌는지를 찬찬히 들여다봐야한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최근 서울 아파트 매매시장에서 젊은층이 거래 주역으로 떠올랐다는 점이다. 한국감정원의 연령대별 매매거래량에 따르면 지난해 11월까지 서울 아파트 매매거래는 중 30~40대가 차지한 비중이 무려 56%에 달했다.
통상 투기수요는 경제력을 갖춘 노·장년층을 이르는데 젊은 직장인들이 대거 주택을 사들인 것.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겠다”던 대통령의 말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왜 부동산시장에 뛰어든 걸까. 이는 치솟는 전세비용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세 살면 평생 난민신세 못면한다’는 말처럼 서민들은 서울중심에서 서울외곽으로, 서울외곽에서 다시 경기도로 밀려나가고 있다. 그래서 ‘차라리 집을 사는 게 답’이라며 매수세에 동참한 것. 견본주택 앞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은 대부분 신혼부부, 직장인들이다.
미래에 빈집 될 신도시 왜 짓나
따라서 부동산대책은 서민의 전세걱정을 덜어주는 데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가장 획기적인 방안은 전세자금 대출 금리를 ‘제로’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대학생들 학자금 대출금리 같은 취지다. 그리되면 대부분이 빚내서 집 사는 쪽보다 ‘제로금리’를 택할 것이다.
지금은 정부가 전세금리는 건드리지 않고, 공급을 늘리는 데만 치중하고 있다. 이미 주택보급률이 100% 넘는 상태에서 우후죽순 난개발을 진행하고 있는데, 주택수와 인구감소율을 감안하면 위험천만하다. 텅빈 유령도시가 탄생할 수도 있고, 환경파괴, 천문학적인 개발비용 등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택지개발지구에서 토지 보상받은 원주민들은 그 돈으로 부동산 투자에 나서고 있다.
전세자금 금리 부담을 덜어주고 의무전세기간을 늘려주는 식으로 서민들이 기존주택에 안정적으로 살게 해준다면 이런 우려는 일거에 해소될 수 있다.
‘전쟁’ 말고 ‘혜택’ 주라
물론 이 정책에도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제로금리에 따른 은행의 손실비용, 전세자금 유용 가능성, 심지어 전세값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충 계산기를 두드려 봐도 신도시 개발비용보다 대출금리 제로에 따른 은행손실 비용이 훨씬 더 작다.
나머지 예상되는 문제들도 머리를 맞대면 해결책이 나온다. 은행에서 공짜로 빌린 전세자금을 다른 곳에 유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금융감시제도(집주인-계약자간 공증제도, 계좌추적 동의서 등)를 도입하고, 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해 집주인이 물가상승률 이상으로 전세가격을 못 올리도록 규제하면 된다.
전세 문제가 해결된다면 부동산 시장의 가수요가 사라지게 돼 거품이 꺼질 수 있다. 난개발을 막을 수 있고 거기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도 절감된다. 세금정책과는 결이 다르니 유주택자들이 조세저항할 일도 없다. 암튼 근본적인 방향만 전환된다면 세부적인 사안들은 논의하면 될 일이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더 이상 오르는 집값에 서민들이 좌절하지 않도록 해주기 바란다. 그러라고 국회가 있고 정부가 있는 것 아닌가.
(CNB뉴스=도기천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