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투자’ 바라 본 개미들
조국 학연 구실로 테마주 형성
조국 일가와 무관한 일이지만…
‘너도 다를 것 없다’는 상실감이
‘조국 테마주’ 배경 된건 아닌지
(CNB=도기천 편집국장) 조국 법무부장관을 둘러싼 이슈가 두 달 가까이 온 나라를 달구고 있는 가운데, 일명 ‘조국 테마주’까지 등장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조 장관이 차기 대권주자 3위에 오르면서 주식시장에서 연관 종목이 출렁이고 있는 것.
‘조국 테마주’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화천기계는 이달 초 열린 조 장관의 국회 인사청문회를 전후해 수면 위로 부상했다. 청문회가 열리면 여러 의혹이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청문회 직전인 지난달 29일부터 치솟기 시작, 6거래일 연속 상승해 70% 넘게 올랐다. 하지만 장관 임명(9일) 이후에도 논란이 가라앉지 않자 내리막길을 걷다가 자택 압수수색(23일) 이후 다시 출렁이고 있다.
화천기계는 공작기계를 생산하는 임직원 300여명 수준의 중견기업이다. 조 장관이 이 회사의 감사를 맡고 있는 남광 씨와 미국 버클리 법대 동문이라는 사실 하나에 대선 테마주로 부상했다.
삼보산업은 이태용 대표이사와 조 장관이 혜광고등학교 동문이라는 점에서 테마주로 엮였다. 현대차와 기아차 등에 자동차 부품을 납품하는 기업인데, 이달 들어 거래량이 폭증하며 관심 받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종목들은 조 장관과 아무 연관이 없다. 단순히 회사의 주요인물들이 조 장관과 같은 학교를 나왔을 뿐이다.
이런 류의 ‘가짜’ 테마주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문재인·박근혜·안철수 등 대권 후보의 이름을 갖다 붙인 ‘000 테마주’가 수도 없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최근에는 홍정욱 전 의원의 정계 복귀설이 나오면서 홍정욱 테마주가 등장했고, 삭발까지 하며 ‘조국 반대’를 외치고 있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연관된 종목이 등장했으며, 심지어 조 장관 일가를 수사하고 있는 윤석렬 검찰총장을 엮은 테마주까지 나왔다.
정책과 공약에 의해 해당 업종 주가가 출렁이는 건 자연스런 일이다. 가령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조 장관 딸의 입시 논란이 일자 교육제도를 손보겠다 했는데, 그 직후 메가스터디, 디지털대성 등 입시 관련주들이 출렁인 것은 이상할 게 없다.
이는 외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은행주들이 규제완화 기대감에 일제히 상승했다. 당시 트럼프는 글로벌 금융위기 재발 방지를 위해 제정된 강력한 금융규제법인 도드-프랭크법을 폐기하겠다고 공약했었다.
하지만 소위 대선 테마주는 후보자의 ‘정책’이 아닌 ‘인맥’에 의해 만들어진다. ‘인맥이 능사’라는 후진적 사고에서 비롯된 부끄러운 모습이다.
조국 앞에 당당하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조국 테마주’를 놓고 투자자들만을 탓하기에는 찜찜한 구석도 있다. 여기에는 조 장관 가족이 살아온 삶이 묘하게 오버랩 된다.
사모펀드와 연관된 조 장관 일가의 행위가 위법인지 아닌지는 검찰이 판단할 문제지만, 어쨌든 이들이 자본시장 투자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시장친화적인 인물들임은 분명해 보인다.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로 볼 때, 조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는 사모펀드 투자회사 코링크프라이빗에쿼티(PE)의 투자사인 더블유에프엠(WFM)에서 고문으로 활동할 정도로 금융투자에 밝으며, 조 장관의 오촌조카는 기업공개(IP), 투자처 발굴, 자금 조달 등 사모펀드를 실질적으로 운용한 금융전문가였다.
조 장관은 사모펀드와는 무관하다고 주장(아내에게 일임)하고 있지만 주식투자에는 일가견이 있는 듯하다. 스스로 청문회에서 “(직접투자를 금지한 공직자윤리법 때문에) 주식을 처분해 펀드에 간접투자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이 일반의 투자 심리를 자극한 건 아닐까. 조 장관 가족이 은행 정기예금에만 재산을 맡겼다면 이처럼 테마주가 창궐할 수 있었을까. 공평과 정의를 외쳤던 그의 삶이 알고 보니 다른 ‘강남 상류층’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서민들의 상실감이 테마주 탄생의 뿌리가 된 것은 아닐까.
어찌보면 억지스러울 수도 있는 이 추론이 가능했던 것은 역사 속에 나타난 여러 대선 주자 중 유독 친기업, 시장친화적인 후보가 등장했을 때 다수의 종목이 테마주로 엮였기 때문이다.
현대건설 사장 출신인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 건설관련 종목을 비롯해 무려 30여개 넘는 회사가 테마주로 등장했다. 하지만 돈벌이와는 거리가 먼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어온 노무현 전 대통령의 테마주는 거의 찾기가 힘들다. 노 전 대통령 주치의 부인과 관련된 의료기구업체가 당시 테마주로 인식되는 정도였다.
그렇다고 조 장관 일가의 삶이 잘못됐다고 단정하는 건 아니다. 조 장관 말대로 펀드 투자가 위법은 아니다. 검찰 수사 결과가 나와야 알겠지만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신용카드 실적혜택 월 몇천원을 받기 위해 아파트관리비, 핸드폰요금을 자동이체하고, 예금이자 0.1% 더 받으려고 발품을 파는 서민들이 수천만명이다. 이들의 재테크와 조국의 재테크는 너무 간극이 크다.
이는 비단 조 장관만의 문제가 아니다. 조 장관을 비난하고 있는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138명 의원 중에 과연 몇이나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다만 장관 자리가 도덕군자를 뽑는 건 아니지만 국민에게 상실감을 안길 정도는 아니였으면 싶다. 그게 선거철 마다 고개 드는 테마주를 잠재우는 근본적인 방법이기도 할 것 같다.
(CNB=도기천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