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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텔링] ‘CJ 고난사’에서 ‘봉준호 기생충’까지…이재현 회장의 역전드라마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수난’에서 ‘영광’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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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9.05.30 12:14:57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면서 지난 25년간 해외에서 영화사업을 펼쳐온 CJ그룹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CJ는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의 눈에 거슬리는 영화·드라마를 제작·공급했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라 혹독한 고초를 겪기도 했지만, 꿋꿋이 한길을 걸은 결과 ‘기생충’ 탄생에 큰 역할을 한 기업이 됐다. 일찍이 ‘문화 CJ’를 선포하고 한류를 주도해온 이재현 CJ 회장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를 들여다봤다. (CNB=도기천 기자)

 

이재현 CJ그룹 회장. (사진=CJ제공)

 

‘박정희 콤플렉스’ 최대피해자
4년 걸친 집요하고 질긴 압박
굴하지 않고 ‘문화 한길’ 뚝심
25년만에 ‘황금종려상’ 결실로

 

영화 ‘기생충’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은 한두 사람의 힘으로 성사된 게 아니다. 축구경기처럼 여러 선수들이 각자의 포지션에서 최선을 다했기에 영예를 안을 수 있었다. 최상의 시나리오와 최고의 감독, 열연한 배우들, 그리고 여기에 베팅한 기업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봉 감독 또한 수상소감에서 “어느날 갑자기 한국에서 혼자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 수많은 위대한 한국 감독들이 존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CJ ENM은 기생충의 투자·배급사로 지난해 제작사인 바른손이앤에이와 125억원의 투자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바른손 한해 매출액의 30%에 이르는 규모다.

CJ가 이 작품에 투자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CJ는 1995년부터 320편이 넘는 한국영화를 꾸준히 투자·배급하며 한국영화를 세계시장에 알리는데 상당한 역할을 해오고 있다. ‘기생충’을 포함해 그동안 총 10편의 영화를 칸 국제영화제에 진출시켰으며, 지난해에만 국내에 15편의 영화를 공급했다. 최근 1천만 관객을 돌파한 ‘극한직업’도 CJ가 투자한 작품이다. 그간 문화산업에 투자한 누적 금액만 따져도 7조 5천억이 넘는다.

특히 이미경 CJ 부회장(이재현 회장의 누나)은 그룹의 영화사업을 선두에서 지휘해왔다.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원으로 활동하는 등 해외인맥을 넓히며 영화판을 키워왔다. 이번 ‘기생충’ 제작 때는 책임프로듀서(Executive Producer)로 참여해 수상에 한 몫 했다. ‘괴물’, ‘마더’ 작업과정에도 참여하는 등 봉 감독과의 개인적 인연도 깊다.

 

영화 ‘기생충’의 투자·배급사인 CJ ENM의 상암동 사옥. (사진=도기천 기자)
 

IMF에서 ‘한국영화 르네상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CJ가 한국영화와 동거동락 해 온 역사는 드라마틱하다. 정권의 탄압과 이재현 회장의 개인적 시련 등 여러 고비가 있었다.

CJ는 1993년 삼성그룹에서 계열 분리해 독립하면서 기존 사업과 전혀 접점이 없던 엔터테인먼트·미디어 분야를 주력 사업으로 설정했다.

당시 이 회장은 주변 반대에도 불구하고 ‘문화가 미래 먹거리’라는 확고한 신념으로 투자를 강행했다. 1995년 스티븐스필버그 감독 등이 설립한 미국의 영화제작·배급사 드림웍스에 3500억원을 투자해 아시아 배급권(일본 제외)을 따내며 ‘문화 CJ’를 세계에 선포했다.

이후 중국 등 해외에서 한류 열풍을 주도하고 후발 기업들의 길을 터주면서 명실공히 문화 1위 기업으로 성장해 왔다.

영화 ‘기생충’ 포스터.

업계의 회의적인 시각에도 이 회장의 영화에 대한 사랑은 각별했다. 외환위기(IMF) 시기인 1998년 강변 테크노마트에 국내 첫 멀티플렉스 극장인 ‘CGV강변11’을 선보였는데, 영화관에 ‘복합문화공간’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최초의 시도였다.

2003년에는 ‘세계 최초의 시네마 인 스타디움(Cinema in Stadium)’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서울월드컵경기장 내에 ‘상암CGV’를 설립했다. 당시로서는 생소한 아이맥스·4DX 전용관, 고전명작들을 상영하는 아트하우스, 3-Way 돌비 서라운드 음향, 쾌적한 실내공기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 삼림욕 향공조 시스템, 순번 발권기 등을 갖춰 큰 화제를 모았다.

2000년에는 영화배급투자사인 CJ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해 본격적인 영화 배급 사업을 시작했다. IMF 직후라 기업들이 투자에 몸을 사리던 시기였음에도 새로운 시도에 나선 것.

이같은 CJ의 여러 도전은 국내 영화시장의 성장을 이끈 마중물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CJ를 비롯한 기업들의 투자가 활발해지면서 2000년대 들어 한국영화산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2004년 영화 ‘실미도’로 첫 1000만 고지를 밟은 뒤, ‘태극기 휘날리며’ ‘왕의 남자’ ‘괴물’ ‘해운대’ ‘국제시장’ ‘변호인’ 등이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명량’(2014)은 한국영화사상 최다관객수인 1700만명을 기록했다.

연간 누적 관객은 6년 연속 2억명을 넘겼으며, 할리우드 영화에 밀렸던 한국영화 점유율은 8년 넘게 50%를 웃돌고 있다. 자국영화 점유율이 50%를 넘는 국가는 미국, 일본, 중국, 인도뿐이다. 바야흐로 한국영화의 르네상스 시대가 열린 것이다.

CJ는 영화산업의 외형적 성장뿐 아니라 선순환 생태계 조성에도 노력해 왔다.

스태프 4대보험 가입, 초과 근무수당 지급 등의 내용을 담은 표준근로계약서를 업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 2014년 영화 ‘국제시장’ 이후 모든 영화에 의무화 하고 있다. ‘기생충’의 경우에도 봉 감독이 표준근로계약에 맞춰 작업을 한 것이 수상에 맞물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CJ그룹 손경식 회장이 2018년 1월 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손 회장은 이날 작심한듯 CJ가 박근혜 정권으로부터 핍박받은 사실들을 폭로했다. (사진=연합뉴스)

 

문화·역사 새판 짜려했던 VIP

하지만 CJ가 걸어온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영화사업 초기에는 막대한 적자에 허덕여야 했으며, 박근혜 정권 때는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라 정치적 풍파를 겪었다.

당시 정부의 CJ 탄압은 다방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은 2014년 10월, 자신의 직권을 이용해 공정거래위원회 측에 CJ ENM을 검찰에 고발해 줄 것을 요구했다. CJ가 제작사에 부당한 이자비용을 청구한 사실을 적발한 공정위가 시정명령을 내리는 선에서 끝내자 청와대가 발끈한 것. 우 전 수석은 현재 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또 2013년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은 손경식 CJ그룹 회장(이재현 회장의 외삼촌)에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에서 사퇴할 것을 종용했으며, 이미경 부회장에게는 경영에서 손을 떼라고 압박했다. 이 부회장은 공정위 조사, 국세청 세무조사 등 CJ에 대한 압력이 계속되자 2014년 9월 미국으로 출국했다. 손 회장에 따르면 당시 이 부회장은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보행조차 어려울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다고 한다.

2013년 5월 박 전 대통령의 취임 첫 방미를 앞두고 경제사절단을 구성할 때 대기업 총수들이 여럿 포함됐지만 CJ는 제외됐다. 2014년 대한상의 주최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는 재계 서열 10위권인 CJ그룹의 손경식 회장이 헤드테이블에 앉지도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회장은 2013년 7월 배임·횡령 등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더구나 지병이 악화돼 부인 김희재씨의 신장을 이식받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에도 거부 반응으로 회복이 늦어져 3년 넘게 서울대병원을 오가며 재판을 받았다. 또 손과 발의 근육이 위축되는 삼성가(家)의 희귀유전병 ‘샤르코-마리-투스’(CMT)의 증세가 악화돼 걸을 때 특수신발 등 보조기구를 이용해야 했다. 2016년 8월 광복절 특사로 풀려난 뒤에도 건강문제로 1년 가까이 회사로 돌아오지 못했다.

인고의 세월…기적처럼 기사회생

당시 정부가 CJ를 끝없이 미워했던 이유는 CJ가 제작하거나 투자한 영화·드라마 중 일부가 박 전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2012년 대선 때 CJ E&M의 개그프로 ‘SNL 코리아’는 수차례 박 전 대통령을 희화화했으며, CJ E&M이 제작·보급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생각나게 하는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취임 직후인 2013년 8월 열린 김기춘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에서는 ‘종북세력이 문화계를 15년 간 장악했다. CJ와 현대백화점 등 재벌들이 거기에 줄을 서고 있으니 정권 초기에 사정을 서둘러야 한다’ 등의 얘기가 나왔다.

박 전 대통령이 주재한 2013년 9월 수석비서관 회의 때는 ‘좌편향 문화예술계에 문제가 많다. 특히 CJ가 문제’라는 발언이 나왔다.

이런 사실들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재판에 제출된 당시 청와대 비서관들의 업무수첩을 통해 확인됐다.

 

영화 ‘기생충’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 직후, 봉준호 감독(왼쪽)과 주연배우 송강호씨가 기뻐하고 있다. (사진=CJ ENM 제공)
 

이재현의 나침판은 오직 ‘글로벌’

이런 아픈 과거를 딛고 CJ는 ‘기생충’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여기에는 ‘문화가 없으면 나라가 없다’는 신념으로 한길을 걸어온 이 회장의 뚝심이 큰 역할을 했다는 평이다.

CJ는 이번 기생충의 약진을 계기로 글로벌 영토를 더 빠르게 확장할 계획이다.

기생충의 경우 전 세계 192개국에 선판매되며 이전 박찬욱감독 ‘아가씨’의 176개국을 넘어섰다. 2007년 할리우드 영화 ‘어거스트 러쉬’ 투자를 시작으로 글로벌 진출에 나선 지 12년 만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 셈이다.

미국 메이저 제작사들과 영화 제작 논의도 한창이다. 유니버설 스튜디오(Universal Studios), 엠지엠(MGM)과 함께 ‘써니’, ‘수상한 그녀’의 미국판 ‘Bye Bye Bye’, ‘Ms. Granny’의 연내 제작에 들어갈 예정이다.

극장 사업도 순항 중이다. CGV가 독자 개발한 오감체험영화관 4DX는 60개국 이상에 진출했으며, 삼면스크린을 갖춘 스크린X는 17개국 이상에 수출 중이다.

CJ그룹 관계자는 CNB에 “문화산업이 미래의 한국을 이끌 것으로 예견하며 지난 20년간 문화사업에 투자해온 이 회장의 의지가 한국영화 열풍의 토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며 “K컬처를 전 세계로 확산시키고, 대한민국이 전세계 문화산업을 선도하는 문화강국으로 도약하는데 CJ가 마중물 역할을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오종선 선임이사는 CNB에 “정치가 문화를 장악하려 할 때 어떤 폐해가 발생하는 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점에서, 박근혜 정권 시절 CJ의 수난사는 여러 의미를 담고 있다”며 “그 시절을 반면교사로 삼아 제2, 제3의 봉준호가 나올 수 있도록 기업과 정부가 힘을 합쳐 예술인들을 지원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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