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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주주총회와 촛불, 그리고 '정보 독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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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윤지원기자 |  2018.03.06 08:14:43

▲2월 26일 국회에서 '기업지배구조 개선 및 주주총회 활성화를 위한 정책 세미나'가 열렸다. (사진 = 윤지원 기자)

2월 26일, 국회에서 ‘기업지배구조 개선 및 주주총회 활성화를 위한 정책 세미나’가 열렸다. 발제자인 APG 박유경 아태지역 기업지배구조 담당 이사는 과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최근 포스코에 특정 사외이사를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등 이제껏 우리나라 기업의 ‘주주’들이 잘 내지 않던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던 사람이다.

이날 제기된 문제점은,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는 지나치게 지배주주(총수 일가)의 이익에 유리하고, 이사회의 역할은 지배주주의 뜻에 좌우되는 데 비해 주주총회의 역할, 주주의 권한은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미미하다는 것이었다.

박 이사는 외국인 투자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한국 기업 지배구조의 문제점을 외국의 사례와 비교해가며 조목조목 분석하면서, 그런 문제점으로 인해 지배주주 이외의 주주들이 손해를 보는 일이 비일비재한 현실을 지적했다. 소수 주주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주주가 손해를 보는 결정이 이루어지는데도 주주들이 그 과정에 참여할 수 없고, 손 놓고 방관할 수밖에 없는 회사가 한국에는 너무 많다.

주주총회 활성화 요구, 촛불 민심과 다르지 않아

이날 세미나에 토론자로 참석한 민간자산운용사 블랙록의 원신보 상무는 박 이사의 문제의식에 동의하면서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에 있어서 형평성, 준법성, 공평함 등이 중요한 키워드로 자리 잡는 문화가 만들어질 때가 온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현재의 대한민국이 커다란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며 “시민의 힘, 소수자의 힘이 여러 가지 사회적 이슈에 규합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원 상무가 구체적으로 예를 들진 않았지만, 그가 말한 변곡점이나 시민과 소수자의 힘에는 지난 정권의 국정 농단 세력을 조기 퇴출시킨 촛불 혁명, 그리고 그 촛불 혁명의 출발점이 됐던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의 시위,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 사회의 가장 큰 이슈인 ‘미투 운동’ 등이 포함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2016년 여름에 이대 학생들이 분노하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근본적인 이유는 ‘불통’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다가 늦게라도 대학 교육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정부 지원 사업인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 사업, ‘미래라이프 단과대학’ 신설에 이화여자대학교가 선정되었는데, 기존 입학정원을 줄여야 한다는 중요한 단서에 대해 학생들의 의견수렴 없이 대학 측이 이를 일방적으로 추진하려 한 것이 문제였다.

학생들은 학교 측과의 대화를 요구했지만, 학교는 좀처럼 이에 응하지 않다가 시위가 장기화되자 경찰 병력 투입으로 맞섰다. 게다가 “학생은 학교의 주인이 아니다”라는 망언을 하는 교수까지 나오자 이에 분노한 졸업생들까지 참여, 시위대 규모가 2만 명까지 늘어났고, 타 대학들이 지지성명을 잇달아 내는 등 불길이 더욱 거세졌다.

이대 문제는 국정감사에서까지 거론됐고, 그 과정에서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부정입학, 학점 특혜 등의 의혹이 불거졌다. 결국, 이화여대 대학생들의 시위는 광화문 광장의 촛불로 이어졌다. 촛불의 요구는 비선 실세와 국정농단의 실체를 깊이 파헤치는 청문회를 끌어냈고, 끝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관련자들의 구속이라는 결말을 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개회식 공연 중, 강원도민 1천 명이 LED 촛불을 손에 들고 모여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주인의 ‘알 권리’를 보장하라는 요구

이대생들이 총장과 대학 측에 그토록 강하게 요구한 것은 학교 구성원(주인)의 권리를 인정하라는 것이었다. 집단의 중대한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할 권리, 그리고 그 투명한 의사 결정 과정을 알 권리를 보장하라는 것이었다. 촛불 시민들이 요구한 것은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정부가 헌법이 정한 의무와 권리를 존중하고, 부정에 관한 모든 의혹에 솔직하게 설명하고 응분의 책임을 지라는 것이었다.

국회 세미나에서 박유경 APG 이사는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서 필요한 몇 가지 과제를 들며, 특히 이사회가 전문성을 가지고 합리적인 경영 방향을 이끌 것, 주주들이 활발한 의사 표현을 하고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것 등을 제시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바탕에는 기업 구성원들의 성실성(integrity), 책임감, 선의가 필연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정 지배 주주나 소수 주주 집단의 이익이 소액 주주들을 포함한 기업 전체의 이익에 반할 수도 있는데도 그런 결정에 고민 없이 찬성하는 이사가 이사회에 존재한다면, 기업의 주인인 주주들은 해당 이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좀 더 합리적이고 성실하게 기업 전체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다른 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요한 의사결정과정에서 각각의 이사가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 주주들이 판단할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국가 최고 권력자의 비선'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정보를 독점하고 유린함으로써 사익을 추구한 최순실 씨가 지난해 12월 14일 결심공판을 위해 법원에 출두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고급 정보 독점? 다시 생각해 봐야

어떤 집단이건 집단의 크기가 커지면 각각의 다양한 구성원 사이에 수많은 갈등요소가 생기게 마련이고, 결정에 따라 누군가는 다른 사람보다 손해를 보는 상황이 생긴다. 그러나 그러한 결정이 그나마 가장 합리적이고, 손해에 대한 적절한 보상, 혹은 동등한 다음 기회가 마련될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설득할 수 있다면, 집단은 갈등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다음 단계로 건전하게 나아갈 수 있다. 민주적인 집단에서 설득의 과정은 그래서 중요하다.

설득은 화자의 논리와 청자의 신뢰가 일치해야 가능하다. 신뢰는 과거 거듭된 소통 과정에서 축적되어야 만들어지는 것이고, 논리는 꾸밈없는 정보와 근거로 구성되어야 한다. 따라서, 중요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은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주어져야 한다.

그동안 많은 집단에서 권력이 소수에게만 집중됐어도 다수가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정보 접근의 권한이 제한적으로 부여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정보에 접근할 현실적인 수단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활자가 발명되면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의 범위가 대폭 넓어졌고, 인터넷과 개인 통신 기기의 발달로 그 경계는 이제 거의 다 허물어졌다. 의사 결정에 참여할 권한이 있는 사람들에게 정보는 가능한 한 공평하게 제공되어야 한다. 정보 독점으로 소수의 기득권을 아등바등 지키던 시대는 끝났다.

‘너와 나만 아는 고급 정보’는 너와 나 사이에서는 큰 이익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모르나, 집단 전체에게도 동일한 이익을 낼 것이라는 결론으로 반드시 이어지지 않는다. 그 판단은 너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집단 구성원들이 함께 고민한 뒤에 해야 한다. ‘비선’이나 ‘밀실’과 같은 수식어가 붙는 사건이 대부분 부패와 비리로 결론 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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