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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시급 7530원과 323만원 사이의 2623만원…허탈한 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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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윤지원기자 |  2017.08.24 17:41:48

▲서울 시내 한 로또복권 판매점의 모습. (사진 = 연합뉴스)


2623

매주 로또를 사면서, 1등에 당첨되면 무엇을 할까 궁리하는 것은 많은 서민의 소박한 즐거움이다. 당첨되면 세계 일주를 한다, 집을 산다, 회사를 때려치운다는 등 다양한 상상의 나래를 편다. 800만분의 1보다도 적다는 1등 당첨 확률을 생각하면서 자포자기하는 사람은 드물다. 로또는 막연하지만 분명 희망이다.

지난 주말(8월 19일) 제768회 나눔로또 1등 당첨자는 모두 13명이며, 이들은 각각 약 13억 6천만 원의 당첨금을 받는다. 33%의 세금을 제하고 나면 실수령액은 9억 원이 조금 넘는다. 로또 한 게임이 1천 원이니, 90만% 이익을 얻게 된다.

지난해 한국 근로자의 평균 연봉은 3387만 원이었다. 지난 16일, 한국경제연구원이 고용노동부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근로자 1544만 명의 지난해 연봉을 분석해 발표한 결과다. 평균이 아닌, 연봉을 순서대로 늘어놓았을 때 정중앙에 해당하는 중위연봉은 2623만 원이었다. 연봉 2623만 원 이상이면 상위 50%에 속한다는 뜻이다.

중위 연봉을 받는 근로자가 지난 회 로또 1등 실수령액 9억 원을 모으려면 한 푼도 쓰지 않고 34년 이상 일을 해야 한다. 연봉이 늘기야 하겠지만 애초에 한 푼도 쓰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그 시간 안에 9억 원을 모을 가능성은 늘어나기 보다는 줄어든다. 게다가 34년이면 자식과 손자를 보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식구가 늘어나면서 지출도 그만큼 늘어나고, 9억 원도 멀어진다.

7530

지난 7월 15일, 최저임금위원회가 확정한 내년도 시간당 최저임금이 7530원이다. 주 40시간, 209시간 기준으로 환산한 월급은 157만 3770원이다. 올해보다 16.4% 인상된 금액이며, 인상률이 두 자릿수를 기록한 것은 2007년 12.3% 이후 11년 만이고, 1988년 최저임금 제도가 도입된 뒤 가장 높은 인상률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19대 대선 당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을 달성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데 대한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일부 언론은 최저임금을 너무 많이 올려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난리를 피웠다. 영세업체와 중소업체, 자영업자들의 인건비 부담이 가중되어 고용이 감소하고 생산성이 떨어지며 그 결과 오히려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세금으로 알바비 준다'는 포퓰리즘 타령도 빠지지 않았다.

알바생의 월급이 9급 공무원 1호봉 월 급여(2017년 기준 기본급 139만 5800원)보다 높은 게 말이 되냐는 문제제기도 나왔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아르바이트까지 하는 청년들이 공무원 시험을 포기하는 현상이 이어질까 걱정하는 것일까?

어쨌든, 이들이 9급 공무원 월급보다 낫다고 하는 최저시급으로 9억 원을 모으려면 11만 9522시간을 일해야 한다. 하루 8시간씩 1만 4940일이다. 1년에 250일을 일한다고 하면 60년 동안 일 해야 한다.

▲최저임금 시간당 1만 원 인상을 촉구하는 집회 현장의 모습. (사진 = 연합뉴스)


323

지난 14일, 다수의 언론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른 2017년 상반기 국내 주요 대기업 오너 및 전문 경영인(CEO)들의 보수를 공개했다. 이중 가장 높은 보수를 받은 한 CEO의 시급을 계산해보니 323만 원이 나왔다. 축구선수 중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다는 레알 마드리드 소속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비슷한 연봉이라고 언급한 매체도 있었다.

시급 323만 원은 내년도 최저시급보다 약 429배, 현행 최저시급보다는 500배 많은 액수다. 지금 최저시급 알바생이나 9급 공무원은 두 달을 꼬박 일해도 이 CEO가 1시간 일하고 받는 만큼의 돈을 벌 수 없으며, 이는 내년에도 마찬가지다.

최저시급 논의에서 자주 비유되는 것이 설렁탕 가격이다. 서울 시내 설렁탕 전문점의 설렁탕 보통 1그릇 가격은 7000원에서 1만 원 정도로 다양하다. 즉, 현행 최저시급으로 사 먹을 수 있는 설렁탕을 파는 집은 아주 드문 형편이다. 반면, 앞서 언급한 CEO는 자신의 시급으로 어지간한 하청업체 전 직원에게 설렁탕을 대접할 수 있다. 

다시 로또와 비교해보았다. 이 CEO가 9억을 모으는 데 드는 시간은 35일이다. 하루 8시간, 주 5일씩 한 달 반 정도만 성실히 근무하면 800만 분의 1의 확률로 당첨된다는 기적 같은 돈 9억 원을 모을 수 있다. 대략 2월 중순에 회사를 관둬도 9억 원 정도는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금감원 공시에 따르면, 실제로 국내 한 대기업 오너가 올해 2월 17일부터 하루도 근무하지 않았음에도 상반기 보수로 8억 4700만 원을 받았다.

▲레알 마드리드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축구선수다. (사진 = 나이키)


로또 당첨 확률 두 배로 높이는 법

지금까지 늘어놓은 얘기는 그저 단순한 숫자놀이에 불과하다. 이런 식으로 최고와 최저를 단순 비교한 것을 근거로 사회의 소득불균형에 관해 얘기하는 것은 무모하고 자극적일 뿐, 현명하고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논의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 많은 책임을 짊어지는 지위에 있으면서, 조직에 더 많은 기여를 하는 사람이 더 많은 보수를 받는 것은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근로 의욕을 높이는 동기 부여라는 측면에서 얘기하는 사람들의 말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호날두는 전 세계 수많은 축구 유망주들이 오늘도 열심히 훈련하는 이유를 실증하는 선수다. 시급 323만 원 CEO도 부를 세습받은 것이 아니라 노력과 실력으로 그 자리까지 올라갔으므로, 샐러리맨의 귀감이라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이런 숫자놀음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봤자 60년 걸릴 일이 59년으로 줄어들지 않는다. 현명한 근로자라면, 차라리 로또를 두 장 사서 당첨 확률을 두 배로 높이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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