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전성천 박사 ‘낙동강 소금배’, 기억과 역사 그리고 우리의 미래

손정호 기자 2024.08.29 09:22:18

이승만 대통령 정부 대변인 겸 공보실장을 지냈던 전성천 박사의 수필집 ‘낙동강 소금배’. 표지에 동양화와 한시가 있다. (사진=손정호 기자)

최근에 서울 강남에 있는 포스코 사옥에 갤러리와 스퀘어가든을 취재하러 갔다. 우연히 포스코 창업자인 박태준 회장의 부조 옆에 있는 어록을 봤다. 선조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우향우 정신과 후대를 위한 희생, 화합을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그 어록이 계속 생각이 났고, 올해 8·15 광복절 논쟁, 통일 독트린을 바라보며 한 권의 책이 떠올랐다.

대한민국 이승만 대통령 정부 대변인 겸 공보실장을 역임한 전성천 박사의 수필집 ‘낙동강 소금배’이다. 전성천 박사는 일본 아오야마가쿠인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미국 예일대학교와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은 목회자이다. 목사로 남대문·공덕동·가리봉·지평·성남교회 등을 이끌고, 건설사인 전일기업 사장, 언론사인 서울신문 회장, 기독교방송(CBS) 사장, 한국방송협회 회장 등을 지낸 분이다. 나는 어렸을 때 성남교회에서 전성천 목사에게 유아세례를 받고, 왕남초등학교에 다닐 때 자택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사과를 같이 먹다가 친필 싸인 책을 선물로 받은 기억이 남아있다.

전성천 박사는 일제 시대인 1913년 경상북도 예천에서 태어나, 낙동강에서 어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소금배를 타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고 한다. 내 방 책꽂이에서 다시 꺼내든 낡은 ‘낙동강 소금배’ 책을 다시 읽어봤다. 가로쓰기로 되어 있어서 읽기가 편하지는 않았지만, 일본 유학 시절 착한 일본인이 장학금을 주었고 성적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는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조선의 독립에 대한 생각도 적혀 있다.

 

전성천 박사의 아내인 김옥 동양화가가 그린 ‘낙동강 소금배’ 초상화(왼쪽), 친필 싸인 책과 함께 선물로 받은 민화. (사진=손정호 기자)

미국 유학 시절에 상대성 이론을 만든 알버트 아인슈타인 박사를 만난 부분도 있다. “얼마 전에 우연히 거리에서 아인슈타인 박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박사는 신학교 바로 옆집에 살고 있는데 얼른 보기에 원자탄 제조의 가능성을 보증한 학자라기보다 전쟁터에서 갓 피난해 온 노인 같아 보였습니다. 학자로 보이지 않고 노동자로 보입니다. 이렇게 순수한 영감이 우주의 상대성 원리와 원자탄의 출현을 생각해냈다는 것은 놀랄 일이었습니다.” 당시 아인슈타인 박사는 프린스턴대 교수였는데, 전성천 박사는 프린스턴대 대학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며 논문을 작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전성천 박사는 일본 유학 후에 일본 경찰에 의해 한 번, 이승만 대통령 정부 대변인 겸 공보실장을 역임한 후 4·19 혁명으로 한 번 옥고를 치른 것으로 알고 있다. ‘낙동강 소금배’에는 정치범으로 감옥에서 밑바닥 경험을 한 내용도 자세히 적혀 있다. 당시 사형에 처해진 최인규 내무부 장관에 대한 개인적인 연민, 빈민이 많던 광주대단지에서 교회를 일구며 시위대에 의해 망가진 과일값을 대신 변상한 일 등도 적혀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한 후에 하와이에서 망명 생활을 할 때, 봉직하던 사람들이 모여서 90회 생신을 축하했던 내용에도 눈길이 간다. 유엔(UN)의 오늘과 내일, 시간, 골프를 즐기며 흘리는 땀과 노동을 하며 흘리는 땀에 대한 생각, 임마누엘 칸트 등 철학자에 대한 내용도 들어있다.

이 책에는 전성천 박사의 아내였던 동양화가 김옥 할머니가 그린 초상화도 실려 있다. 어렸을 때부터 대학에 다니던 이십대 초반까지 몇 번 만났기 때문에 아련한 마음이 들었다. 가족만큼 자주 만난 것은 아니지만, 독특한 주장을 하기도 했다. 초등학생일 때 전성천 박사가 전두환 대통령 부부와 만나 함께 저녁 식사를 했는데, 이번에는 자신이 들어갈 것 같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이후 텔레비전을 보다 보니 정말 그런 일이 있어서 놀랐던 기억도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서울공항을 이용할 때 도로를 전면 봉쇄해 그 옆에 있던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큰집에서 기다렸다가 돌아갔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낙동강 소금배’ 서문 부분(왼쪽), 전성천 박사의 친필 글 부분. (사진=손정호 기자)

이후 시간이 흘러서 나는 성남에서 수원, 남양주로 세 번 이사를 하게 되었다. ‘낙동강 소금배’ 책에는 손준호, 임정복 집사에게 준다는 전성천 박사의 글이 적혀 있다. 내 부모님으로 아버지의 성함은 손준오인데, 나에게 준다는 의미에서 손준호로 적는다고 했던 기억, 나와 여동생에게 프린스턴대와 예일대 석·박사학위증을 보여주며 이렇게 대단한 걸 수수하게 만든다며 너희는 백인보다 키는 작아도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당시에 김옥 할머니가 민화 한 점과 소년, 소녀 유화 두 점을 선물로 주셨는데, 두 번 이사하는 과정에 유화는 소실되고 민화만 남아있다. 힘이 들면 이 그림을 보면서 쉬라고 했던 기억도 난다.

기억이 역사가 되고, 역사가 현재에 대화를 거는 과정에 나도 하나의 보탬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전성천 박사의 막내딸인 전영백 홍익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가 보내준 김병종 서울대학교 미대 명예교수의 책 ‘내 영혼을 만지고 간 책들’에도 ‘낙동강 소금배’에 대한 글이 있다. 김병종 화백은 전성천 박사를 민족의 여명기에 건국의 한 초석을 세운 인물로, 광주대단지 사건에 뛰어들어 사태를 수습하며 증오와 갈등의 터 위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운 인물로 기록하고 있다. 지성의 빛을 찾아 천신만고 끝에 이룬 프린스턴과 예일의 학문적 성취를 뒷전으로 한 채 일제로부터 겨우 다시 찾은 이 나라의 고통과 아픔을 응시했으며, 그곳으로 직접 발 벗고 뛰어들었던 인물이라고 적고 있다. 나도 일제 시대에 태어나 30대 후반까지 나와 함께 했던 우리 할머니처럼 전성천 박사님도 시대의 한계 속에서 양심적으로 살려고 했던 지식인, 지인으로 기억하고 싶다. 그리고 기자로 하나의 기록을 남기고 싶다.

(CNB뉴스=손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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