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코인러 표심 노린 가상자산 공약, 또 ‘공염불’일까

김수찬 기자 2024.03.26 09:37:35

사진=연합뉴스

4.10 총선이 다가옴에 따라 익숙한 풍경이 또 펼쳐지고 있다. 여야 모두가 가상자산 산업 활성화 관련 공약을 내걸고, 코인러(가상자산 투자자)들의 표심을 사기 위해 여념이 없다.

최근 비트코인 1억원 시대를 열면서 활황기에 진입하기도 했고, 총선 열흘 뒤 네 번째 비트코인 반감기가 도래한다는 점이 주목받아 가상자산 공약에 더욱 집중하는 모양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에서 내건 가상자산 정책의 핵심은 ▲과세 유예 ▲과세 공제 범위 확대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허용 ▲토큰증권(STO) 기반 마련 등이다. 여야가 내건 공약은 세부적인 차이만 있을 뿐, 핵심 내용은 거의 같다. 정책 이견으로 정쟁을 일삼던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일 정도로 짝짜꿍이 맞는다.

코인러들이 가장 반기는 정책은 역시 과세 유예다. 내년 1월 1일부터 가상자산을 양도·대여할 때 발생하는 소득 중 250만원을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 20%의 세금을 내야 하는데, 여당은 이 시기를 2년 더 유예하는 공약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2023년 1월에 과세를 도입할 예정이었으나 2년 미뤄 2025년 1월로 연기된 바 있었는데, 이를 한 번 더 미루겠다는 것이다. 원천징수 인프라를 보완하고, 과세를 위한 시스템을 마련한 뒤에 차기 국회에서 제도 정비에 나서겠다는 취지다.

민주당 측에서는 과세 시기는 내년으로 하되, 공제 한도를 주식과 동일하게 5000만원으로 상향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당시 내걸었던 과세 기준 상향 공약과 동일하다. 코인 앞에서 하나 되는 모습이 어색하기만 하다.

또한, 민주당은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의 발행과 상장, 거래 등을 허용하며 제도권 편입에 힘쓰겠다고 했다. 이를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에 편입시켜 비과세 혜택을 확대하겠다는 공약과 함께 ETF의 매매수익은 금융투자소득으로 분류 과세해 5년간 손익통산 및 손실이월 공제를 적용하겠다고 덧붙였다. 금융위원회가 ‘현물 ETF 투자는 자본시장법 위반’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놨지만, 법 저촉 문제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의지를 표명한 셈이다.

 

더불어민주당 이개호 정책위의장이 지난 2월 8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홍익표 원내대표.(사진=연합뉴스)

문제는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것이다. 공약만 보면 가상자산 시장의 기반을 다져놓고 제도권에 편입시키겠다는 의지가 강력해 보이지만, 코인러들의 표심을 의식한 ‘공수표’ 수준 아니냐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미 여야는 과거에 비슷한 정책을 발표한 적이 있다. ICO 허용, STO 편입 등을 지난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으나 별다른 진척이 없었고, 기타 관련 법안은 여전히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 투자자보호 관련 제도인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을 제정한 것이 유일한 수준이다.

2017년 이후부터 투자자와 관계자들의 꾸준한 요구가 있었음에도 가상자산의 제도권 편입은 이뤄지지 않았다. 약 7년이라는 시간 동안 변화는 너무나도 더뎠다. 회계처리 지침을 확정하고, 법 시행을 목전에 뒀는데도 또 ‘도로아미타불’이 될 위기에 처했다.

‘투자자 보호’와 ‘제도 정비’, ‘인프라 보완’이라는 핑계 때문에 변화와 혁신은 늦어지고 있다. 투자자를 솔깃하게 만드는 공약과 정책만으로는 시장 활성화와 제도권 편입을 기대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여야의 공약에 또 속아본다. 아니, 속을 수밖에 없다. 그저 의미 없는 공수표와 공염불이 아니기만을 빈다.

(CNB뉴스=김수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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