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퍼니하니?] 기업명 꼭꼭 숨겨라…‘숨김 마케팅’의 비밀

김수찬 기자 2023.03.11 11:50:41

기업명 숨기고 새로운 브랜드 론칭
캐릭터·굿즈 어디도 회사로고 없어
‘광고’ 이미지 지우고 ‘감성’에 호소

 

지난해 4월 서울 송파구 잠실 석촌호수 근처에 아파트 4층 높이 15m 규모의 '벨리곰'이 전시되어있다. (사진=롯데홈쇼핑 제공)

MZ세대는 아우르는 나이 폭(1980년대~2000년대초 출생) 만큼이나 규정짓는 특성도 다양하다. 강한 소신, 모험 정신, 과단한 실천력 등 이들을 일컬어 꼽는 말들이 많다. 그러나 쉽게 간과하는 것이 있다. 이런 수식어들을 지탱하는 기반은 ‘재미 추구’이다. 신선한 즐거움이 있어야 MZ세대는 반응한다. 요즘 많은 기업들이 이들을 겨냥해 흥미로운 요소를 골몰하고 발굴하는 배경이다.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류에 맞서는 기업들의 공략법은 먹힐 것인가. CNB뉴스 MZ세대 기자들이 그 물음과 응답 사이에 들어가 본다. MZ, 퍼니(funny)하니? <편집자주>




기업명을 가리는 ‘숨김 마케팅’이 유통업계에서 확산되고 있다. 자체 캐릭터와 신상품 등에 기업명이나 기업 로고 등을 찾아볼 수 없다. 기업을 상징하는 색이나 디자인도 들어가 있지 않다.

마케팅의 궁극적인 목적은 기업 제품을 홍보하는 것인데, 왜 굳이 숨길까. 유통업계의 숨김 마케팅은 MZ세대에게 어떤 점을 어필하고 있을까. 정체성을 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 흔적들을 CNB뉴스가 찾아봤다.

 

롯데온의 액티비티 커뮤니티 '디그디그'의 메인 화면. (사진=디그디그 홈페이지 캡쳐)
 

‘롯데’ 타이틀 뗀 ‘디그디그’와 ‘벨리곰’



롯데의 통합 온라인 플랫폼 롯데온은 액티비티 커뮤니티 ‘디그디그 액티비티(디그디그)’를 운영 중이다. 디그디그는 캠핑·등산·자전거·러닝 등의 활동을 함께 할 수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로, 매주 오프라인 아웃도어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3만 4000명에 달할 정도로 MZ세대에게는 나름 핫하다.

액티비티 활동 커뮤니티 역할뿐 아니라 관련 굿즈까지 판매한다. ‘커뮤니티 커머스’를 통해 사업성까지 강화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 디그디그에서는 롯데의 ‘롯’ 자도 찾기 힘들다. 롯데의 로고 등을 굳이 밝히지 않으면서 철저히 정체성을 숨기고 있다. MZ세대에게 트렌디한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거대기업의 색을 지우고,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전략을 택한 것.

숨김 전략과 커뮤니티 활성화가 맞물리면서 디그디그는 순항하고 있다. 오뚜기, 프로스펙스, 데상트, 월드비전 등의 브랜드들과 콜라보레이션 상품을 내고, 상품 판매 채널은 롯데온으로 한정시키면서 MZ세대 고객을 계속 유입하고 있다.

 

롯데홈쇼핑이 지난달 25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에서 진행한 벨리곰 NFT홀더를 위한 벨리 파티(BELLY PARTY)가 5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공적으로 종료됐다. (사진=롯데홈쇼핑 제공)
 

롯데홈쇼핑의 캐릭터 ‘벨리곰’ 역시 롯데라는 타이틀 없이 탄생했다. 벨리곰은 현재 유튜브 구독자 59만 명, 틱톡 팔로워 63만 명 이상을 끌어모으며 거대 채널로 성장한 캐릭터 브랜드다.

지난 2018년부터 유튜브 채널명 ‘벨리곰TV’로 활동하면서, 곰 인형인 것처럼 가만히 서 있다 구경꾼을 놀라게 하는 영상 콘텐츠로 인기를 끌었다.

벨리곰이 나오는 영상과 캐릭터 굿즈 등에는 롯데홈쇼핑의 기업명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 현재는 롯데 측에서 개발한 캐릭터라는 이미지가 조금은 알려졌지만, 출시 이후 약 3년여 동안은 롯데홈쇼핑의 흔적을 찾기 힘들었다.

오히려 숨김 전략을 통해 시청자와 소비자들에게 거부감 없이 다가갔다. 기업명이 노출되는 콘텐츠의 경우 ‘홍보’와 ‘광고’ 이미지가 강해지기 때문에, 소비자에게 외면받기 일쑤다. 롯데홈쇼핑은 오로지 재미와 흥미, 귀여운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해 정체성을 철저히 숨겼다. 심지어 벨리곰도 절대 말을 하지 않아 신비한 세계관을 고수했다.

정체성을 표현해야 될 필요가 없으니 콘텐츠 주제도 무궁무진했고, 더욱 재밌는 영상을 만드는 것이 가능했다. 기업의 고착화된 이미지가 제약이 될 수도 있는데, 이런 점에서 자유로웠다.

지난해 봄에는 서울 송파구 잠실 석촌호수에 아파트 4층 높이 15m 규모 벨리곰이 자리 잡으며 눈길을 끌었다. 전시 기간 동안 약 325만 명의 방문객이 찾을 정도로 벨리곰에 대한 인지도는 더욱 높아졌다.

 

GS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GS25가 지난해 6월 서울 성수동에 브랜드 팝업스토어 ‘갓생기획실’을 오픈했다. 사진은 갓생기획의 캐릭터 '무무씨'의 모습이 담긴 갓생기획실의 사무공간이다. (사진=선명규 기자)

‘GS’없이 MZ와 소통한 GS리테일



GS리테일의 편의점 GS25도 MZ세대와 소통하기 위해 정체성을 숨겼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갓생기획’. 갓생기획은 MZ직원들이 MZ고객과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기획하는 프로젝트로 출발했다. ‘갓(god)’과 ‘생(生)'이 합쳐진 신조어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MZ세대의 삶을 뜻하는데 MZ직원들이 중심이 되어 MZ고객과 소통하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획을 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지난해 서울 성수동에 선보였던 갓생기획 팝업스토어에는 대기업 GS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갓생기획 팝업스토어의 공간은 가상인물인 ‘Z세대 직장인 김네넵’의 세계관이 반영된 ‘디자이너의 작업실’로 구현됐는데, 이곳에서 GS와 관련된 홍보물이나 이미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홍보를 하더라도 티가 나지 않는 방법을 택했다. 사무실에는 GS리테일 갓생기획팀이 하는 일을 모니터와 아이디어 노트를 통해 흘렸고, 탕비실에는 이 팀이 그간 내놓은 협업 제품을 진열했을 뿐이다. 약 40만 명이 다녀갔는데 GS25의 공간이라는 것을 몇 명이나 알았을까 싶다.

GS25의 팝업스토어 ‘도어투성수’ 역시 본인들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GS25의 고유 색상인 푸른색이 없고, 로고도 작게 박혀있다. 얼핏 보면 일반 카페라고 착각할 정도로 편의점의 느낌이 없다.

GS25 측은 MZ세대에게 공감과 위로, 재미를 주는 브랜드로서 아이덴티티를 상품 디자인에 자연스럽게 녹인 점과 편의점 업계에서 차별화된 시도를 했다는 점을 높게 평가받은 것으로 보고 MZ세대에게 더욱 공감 받는 브랜드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GS25의 팝업스토어 편의점 '도어투성수' 전경. (사진=김수찬 기자) 

브랜드 이미지 재구성, 신비주의로?



유통업계가 숨김 마케팅을 택하는 이유는 뭘까.

신비주의 전략 등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독자적인 브랜드 이미지 구축을 위해서다.

기존에 진행하던 사업과 전혀 다른 사업을 진행하려면 기업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탈피하고, 리브랜딩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를 위해 사명과 로고 등 정체성을 지우는 것이다.

또, 흥미와 호기심을 유발해 젊은 MZ세대에 친근감을 어필할 수도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CNB뉴스에 “제품의 기능과 정보를 직접 전달하기보다는 흥미를 유발해 고객이 직접 알아가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며 “MZ세대는 나만의 개성을 중시하는 주체적인 소비를 하기 때문에 숨김 마케팅의 타깃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CNB뉴스=김수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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