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티브 잡스가 5일(미국 시간) 세상을 떠나면서 오뚜기 같은 잡스의 생이 주목을 끌고 있다.
잡스는 지난 1985년 애플 이사회에 쫓겨나는 수모를 겪었으며 이후 창업한 넥스트도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했다. 아이팟과 아이폰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췌장암 판정과 간이식 수술 등 병마마저 그를 괴롭혔지만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성공시키며 오뚜기처럼 일어났다.
잡스의 좌절과 실패는 무엇이고 오뚜기처럼 일어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이사회에서 쫓겨난 잡스
잡스는 지난 1985년 자신이 설립한 애플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는다.
자신이 영입한 스컬리와 이사회가 만들어낸 합작품이었다. 이유는 애플3와 매킨토시의 실패 때문이었다. 지난 1976년 잡스가 선보인 애플2는 개인용PC 시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폭발적인 인기몰이를 했지만 IBM의 개인용PC 시장 진출로 상황이 반전된 것.
IBM이 개인용PC 시장에 진출할 때까지만 해도 잡스는 자신 있었다. 잡스는 미국 일간 신문에 ‘IBM을 환영합니다. 진심으로’라는 광고를 통해 책임있는 경쟁을 하자는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잡스가 야심차게 준비한 매킨토시는 IBM의 개인용PC에 밀려 판매가 부진했다. 매킨토시가 IBM의 PC에 비해 비쌀 뿐더러 사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도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최초 100일 만에 7만대를 판매하겠다는 잡스의 공언도 허황된 꿈에 그쳤다. 재고는 날이 갈수록 쌓여갔다. 결국 애플 이사회는 애플3와 매킨토시 실패의 책임을 물어 창업주 잡스를 쫓아내기에 이르렀다. 잡스는 스탠포드대학 졸업 연설에서 “창업가 정신을 잃어버렸다고 느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넥스트의 실패
이사회에서 쫓겨난 잡스는 자신의 부하 직원 몇 명을 데리고 고성능 컴퓨터 개발회사 넥스트를 창업했다. 넥스트는 ‘컴퓨터 천재’ 부활의 신호탄이었다.
잡스는 자신이 만든 애플2가 개인PC 산업의 활성화를 가져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전문가들을 위한 고성능의 컴퓨터가 필요하다고 설명했고 애플보다 혁신적인 컴퓨터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창업 초기 넥스트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당시 업계는 개인들이 보다 손쉽게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투자를 이끌어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컴퓨터를 사겠다고 달려드는 사람들은 없었다. 가격이 문제였다. 성능은 우수했지만 너무 높은 가격 때문에 구입을 망설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투자는 많이 받았지만 판매처가 없었다.
세 번째 좌절과 찾아온 병마
잡스는 아이팟의 성공으로 한창 바쁘던 지난 2004년 췌장암 판정을 받는다. 그의 세 번째 좌절이다.
췌장암은 수술을 해도 5년 생존율이 10~24%에 불과하며, 전신항암화학요법과 국소방사선요법 등도 효과가 적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2004년 췌장암 판정을 받을 때 그는 의사들로부터 "치료할 수 없는 암의 일종이 거의 확실하다"면서 "3개월 내지 6개월밖에 못산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 치료할 수 있는 종류의 췌장암이라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통해 건재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췌장암 수술 이후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선보이며 성공가도를 달렸으며 지난 2009년에는 간이식 수술을 받았다. 췌장암과 간이식 등 병마에 시달린 잡스는 유달리 사망설이 많은 편에 속했다. 올해 초 무기한 병가를 내면서도 6주 시한부설이 나돌았고 지난 8월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사임한 이후에도 사망설이 떠돌았다.
올해 6월 아이클라우드 발표회에는 병가를 냈던 잡스가 깜짝 등장했지만 병색이 완연한 수척해진 모습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계속 갈망하라. 여전히 우직하게
그가 오뚜기처럼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일에 대한 열정과 자신에 대한 뚜렷한 신념이 있기 때문이었다.
잡스는 지난 2004년 스탠포드 대학에서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했던 연설을 통해 “오늘이 내 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해도 오늘 하려고 했던 일을 할까? 이에 대한 대답이 여러 날 잇따라 ‘노’일 때는 뭔가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야한다”고 역설했다.
잡스는 누구보다도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애플 이사회에서 퇴출된 원인이 된 매킨토시를 만들 때도 ‘해적이 되자’, ‘우주에 영향을 미칠 만큼 중요한 컴퓨터를 만들자’며 팀원들을 독촉하고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실패와 좌절에도 불구하고 당황하거나 실패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을 지니지 않았다. 거듭되는 좌절 속에서도 기술과 삶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않았다. 췌장암 선고를 받은 이후에도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
잡스는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따르는 사람이었다. 그의 직관과 우직함, 다른 사람을 신경쓰지 않는 태도 탓에 젊은 시절 다른 사람과의 충돌도 많았고 그것이 실패의 원인도 됐다. 그러나 그를 IT업계의 신화로 만든 것은 자신의 내부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이다.
잡스는 스탠포드 졸업 연설에서 “다른 사람들의 시끄러운 의견으로 여러분 내부의 소리가 묻히지 않게 하라”며 “계속 갈망하라. 여전히 우직하게(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말로 끝냈다. 그의 삶은 이 말 그대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