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텔링] 문재인 정부는 왜 ‘삼성 바라기’가 됐을까

‘재벌개혁’에서 ‘친기업’으로 돌아선 이유

도기천 기자 2020.02.25 10:01:15

2019년 4월 삼성전자 화성캠퍼스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대화하며 크게 웃고 있다. 두 사람의 관계는 한반도 통일경제 프로젝트가 가동되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오른쪽부터 정은승 삼성전자 사장, 이 부회장, 문 대통령,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윤부근 삼성전자 고문.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살리기를 화두로 재벌총수를 비롯한 기업인들과 자주 만나고 있어 주목된다. 특히 삼성에 대한 청와대의 기대치는 어느 때보다 커진 상태다. 코로나19 사태로 경기가 얼어붙고 있어 이런 태도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재벌개혁을 포기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CNB=도기천 기자)

文대통령-李부회장, 두달에 한번꼴 만나
“그래도 삼성” 소주성 슬그머니 사라져
코로나19 사태로 ‘기업친화’ 더 강화될듯
일각에선 “돌고돌아 다시 제자리” 비판도

 


“재판은 재판이고 일은 일이다.”

2018년 9월 평양정상회담 직전 임종석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방북 기업인 명단에 포함된 것을 두고 했던 말이다. 당시 이 부회장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재판이 진행 중인 터라 여론이 곱지 않았다. 평양정상회담에는 이 부회장 외에도 최태원 SK회장, 구광모 LG회장, 김용환 현대자동차 부회장 등 4대그룹 총수를 비롯한 주요 기업인들이 대거 포함됐다.

재계에서는 이때부터 청와대의 경제정책 흐름에 변화가 생긴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전까지만 해도 재벌을 개혁대상으로 두고 심지어 ‘적폐’로까지 몰았던 게 당·정의 기류였다. 실제 재계를 대표했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박근혜 정권의 불법모금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정부 주관 각종 행사에 노골적으로 배제됐었다.

하지만 평양정상회담을 전후해 문재인 정부와 재계의 관계는 급속도로 개선됐다.

재계는 정부의 한반도 통일경제 구상에 부응해 매머드급 투자·고용계획을 앞다퉈 발표했다. 삼성은 AI·5G·바이오·전장부품 등 4대 미래성장사업을 중심으로 향후 3년간 180조원을 투자해 4만명 규모의 신규 고용을 추진한다고 밝혔고, 포스코는 2023년까지 45조원 투자와 2만명 고용 계획을 내놨다. 현대차(23조·4만5000명/5년), SK(80조·2만8000명/3년), LG(19조·1만명/1년), 신세계(9조·3만명/3년), 한화(22조·3만5000명/5년), GS(20조·2만1000명/5년) 등도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다 합치면 정부 한해 예산과 맞먹는 400조원에 육박했다.

정부는 이런 흐름을 한껏 ‘업’시켰다. 2018년 연말에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재벌개혁을 주도했던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퇴진하고, 시장친화적 인물로 알려진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경제사령탑에 오르며 이른바 ‘소주성’(소득주도성장)이 후순위로 밀려났다. 대신 기업투자 활성화를 전제로 하는 ‘혁신성장’이 소주성의 자리를 꿰찼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충남 아산시 삼성디스플레이 아산공장에 도착해 이재용 부회장과 인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최근까지 거의 두달에 한번 꼴로 이 부회장을 만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文대통령 “삼성에 감사”, 李부회장 “큰힘 된다”

작년부터는 이런 분위기가 절정에 달했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기업인은 이재용 부회장이었다. 그는 최근까지 2개월에 한번 꼴로 문 대통령과 마주했다.

이 부회장은 작년 초 신년인사회에서 문 대통령과 만난데 이어, 며칠 뒤에는 삼성전자 수원공장을 방문한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를 만났다. 수일 뒤에는 청와대에서 열린 ‘기업인과의 대화’에서 문 대통령을 또 만났다.

4월에는 문 대통령이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을 방문했다. 문 대통령은 “삼성의 원대한 목표 설정에 박수를 보내며 정부도 적극 돕겠다”고 말했고, 이 부회장은 “메모리에 이어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도 확실한 1등을 하겠다”고 화답했다.

문 대통령은 10월에 다시 삼성디스플레이 아산공장을 찾아 이 부회장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며 “감사하다”고 했고, 이 부회장은 문 대통령을 향해 “큰 힘이 된다”고 답했다.

올해 들어서도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두 사람은 올초 신년인사회에서 만난데 이어, 지난 13일 청와대가 주재한 ‘코로나19(신종 코로나 감염증) 대응 경제계 간담회’에 다시 마주봤다.

이날 행사에는 이 부회장 외에도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이재현 CJ 회장, 윤여철 현대자동차 부회장,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 등이 참석했는데, 특히 문 대통령과 이 부회장 간의 대화가 눈길을 끌었다.

당시 이 부회장은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내수 진작을 위해 기업 회식의 주 52시간제 저촉 우려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건의했고, 문 대통령은 이를 수긍했다. 며칠 뒤 청와대는 “자율적 회식은 주 52시간제와 무관하다는 것을 적극 홍보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지난 13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코로나19 대응 경제계 간담회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앞줄 가운데)이 문재인 대통령 맞은 편에 앉아 이야기를 듣고 있다. 이 부회장 왼쪽에는 구광모 LG회장, 오른쪽에는 최태원 SK 회장이 앉아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반도 프로젝트’에 재벌개혁 물건너가

이처럼 청와대와 이 부회장 간의 관계가 급속도로 좋아진 데는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우선 평양정상회담 시기를 전후해 정부 태도가 바뀐 것은 당시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기업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018년 4월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북한 내 도로·항만 등 기반시설(SOC) 건설, 개성공단 2단계 개발을 포함한 경제특구 개발, 동해선(강릉·고성·제진·금강산)과 경의선(서울·개성·평양·신의주) 철도 연결, 각종 경제교류의 확대 등에 합의한 바 있다. 여기에는 천문학적인 투자가 요구되는 만큼, 기업의 참여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여기에다 미중(美中) 무역분쟁, 일본의 한국 수출규제 등으로 경제상황이 악화되고 있던 점도 배경으로 작용했다. 정부 입장에서는 언제까지고 재벌개혁을 앞세워 재계와 등을 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특히 이중에서도 유독 삼성을 챙겼던 이유는 그만큼 삼성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코스피200(대표주식 200개 종목으로 산출하는 주가지수) 내 삼성전자 시총 비중은 30%를 웃돌고 있다.

증권가 관계자는 CNB에 “대기업(코스피200)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90%이상인데, 그중의 3분의 1을 삼성이 차지하고 있다”며 “당장 투자와 고용을 이끌어낼 수 있는 곳이 삼성이니까 삼성에게 기대를 거는 건 당연해 보인다”고 말했다.

구병두 건국대 교수는 “삼성은 AI(인공지능), 5G(5세대), 바이오 등 첨단미래산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국자차원의 제도적 지원이 필수적”이라며 “삼성 입장에서는 정부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여파로 평소 붐비던 대구 청과시장이 텅 비어있다. 이번 사태로 정부의 친기업 정책이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사람중심 가치상실 아쉬워”

앞으로도 삼성과 정부 간의 이런 관계는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경제 성장률이 2%에 못 미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잇달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가 해외 경제연구기관·투자은행(IB) 등으로부터 집계한 올해 한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을 보면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1%대 성장에 그칠 것으로 예측된다.

성장률이 2%에도 못 미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0.8%)과 외환위기 국면이었던 1998년(-5.5%), 2차 석유파동이 있었던 1980년(-1.7%)을 제외하고 2%를 밑돌았던 적이 없다.

따라서 정부 입장에서는 삼성을 비롯한 재계가 투자계획을 조금이라도 앞당겨 줄 것을 애타게 바라고 있다.


하지만 노동·시민단체로부터 이에 대한 비판 목소리도 나온다. 돌고돌아 다시 ‘재벌친화’로 돌아갔다는 점에서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CNB에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사람 중심’으로 전환하자는 게 문재인 정부 초기의 경제정책 목표였고, 이를 구체화 한 것이 고용안정에 중심을 둔 소득주도성장이었다”며 “지금은 경제활성화라는 이름에 가려 이런 가치들이 상실된 것 같아 매우 유감”이라고 말했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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