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역 깨가는 ‘미투’와 ‘나꼼수 3인방’…법 위의 자들이여, 두려워할지어다

최영태 CNB뉴스 발행인 기자 2018.03.19 17:22:28

▲최영태 CNB뉴스 발행인

한국 사회의 ‘성역’이 하나하나 깨져나가는 모습을 우리는 요즘 보고 있다. ‘박정희 신화’가 딸 때문에 깨지더니, 이어 이명박 신화가 깨져나가고 있다. 

“죄는 많지만 절대로 잡혀가지 않는다. 뽀록도 나지 않는다. 그의 앞에만 가면 검찰도, 법원도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만다”라는 신화로 통했던 것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었다. 

이제 다음에 깨질 한국 사회의 성역은 어디인가? 재벌? 법원? 미국? 

예전에 어느 초선 의원이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초선의원으로 국회에 들어가니 선배들이 충고를 하더라. ‘뭔 발언을 하건, 문제 제기를 하건 다 좋은데, 삼성과 미국 두 가지만은 건드리지 말라. 건드리면 너만 다친다’는 게 선배 의원들의 충고였다”는 전언이었다. 

한국에는 성역도 많지만, 일단 수립된 성역은 잘 깨지지 않는다. 권위에 대한 굴종을 평생 교육받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모나면 정 맞는다” “중뿔나게 나서지 말라”는 등의 속담-교훈이 다 이런 삶의 요령을 주입하기 위해서 만들어지고 또 자주 사용된다. 

▲MBC TV에 정규 편성된 탐사기획 프로그램 '스트레이트'.


굴종만 가르쳐온 한국 부모와, 저항을 가르친 체 게바라의 아버지

한국의 부모들은 예나 지금이나 굴종을 가르치기에 여념이 없다. “남들이 하는 대로만 하면 된다. 절대 중뿔나게 나서지 말아라. 권위-권력과 맞서봐야 너만 다친다. 성공해 가문을 빛내야 한다”고 자녀를 가르치는 게 거의 모든 한국인 부모들이다. 

이런 한국의 현실과 비교해본다면, 체 게바라의 아버지가 갓 철이 든 체 게바라에게 저항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을 주면서 “잘못된 세상에 대항해 싸워야 한다”고 가르쳤다는 일화(박홍규 저 ‘독서독인’ 209쪽에서 인용)는 한국인 부모 입장에서는 살떨리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스스로 민주주의자임을 자임하는 부모라도 자식들에게는 차마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라”는 말을 못한다. 자식들은 그저 평안히, 문제없이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게바라의 아버지에 비교한다면 이 얼마나 비겁한 교육방식인가? 나는 싸워도 자식은 편케, 즉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돈 많이 벌고, 사회와 충돌하지 않고 그저 평안히, 아무 일 없이, 보수적으로 살기를 바랄 뿐이라니…. 

이처럼 가족 문제와 부딪히기만 하면 한없이 나약해지고, 보수적이 되는 한국인이기에, 한국에선 그토록 독직과 뇌물이 판을 치는가 보다. 눈먼 돈이 생길라 치면, 많은 한국 남자들은 “이건 내 자신을 위해 받는 돈이 아니여. 그간 고생해온 내 부모, 마누라, 그리고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받는 돈이여”라고 자기최면을 걸면서 검은돈을 챙기기 십상이다. 부정부패가 싹트기에 너무나도 훌륭한 풍토가 한국에선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는 소리다.

이런 한국 사회인지라, 수많은 성역, 즉 ‘합리적 질문을 받지 않는 영역’이 시퍼렇게 살아 있다. 박근혜 몰락 이전에 한국인은 ‘박정희 신화’에 대한 합리적 질문을 해봤나? 일부 학자들이야 박정희 신화를 부수기 위한 도전을 하고 책들을 내고 했지만, 그 모든 것들은 ‘그들만의 리그’에서의 이야기였고, 박근혜의 국정농단이 발각나기 이전에는 그런 논의들이 TV 전파를 탈 일이 "절대로" 없었다. 

물밑에서만 끓던 고발들이 이제 공중파 TV에서 첨버덩!

이명박 신화도 마찬가지다. 그간 야권에서는 이명박의 축재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그 역시 그들만의 리그 안에서나 회자되는 얘기들이었지, 공중파 방송을 통해 끄집어내진 적은 없었다. 

‘미투’도 마찬가지였다. 장자연 사건, 법무부 차관의 섹스 파티 등으로 한국 상류층의 아랫도리 놀음의 일단들이 얼핏얼핏 드러나는 듯도 싶었지만, 이명박 앞에만 가면 사법기관들이 두손 두발 다 들듯, 권력자들의 아랫도리 이야기들은 깊숙이 숨겨지기만 했다. 

이런 얘기들이, ‘촛불 혁명’ 이후에는 불쑥불쑥 공중파 방송에 나온다. 최근 나꼼수 3인방(김어준, 주진우, 김용민)의 공중파 진출은 그만큼 대단한 현상이다. 이들은 타깃(대개 한국의 성역)을 정해놓고 두들겨댄다. 그러면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성역이,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흔들거리기 시작한다.

▲법원 판결에 시민의 잣대를 들이대보겠다는 MBC TV '판결의 온도'.


‘다시 태어난’ MBC는 지난주 법원 판결의 공정성을 까보겠다는 ‘판결의 온도’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그간 아무리 정치권에서 여야가 공중전-육탄전을 벌여도, 그 사안이 법원으로 가기만 하면, 법원의 판결에 전원 복종하면서 “법원의 판결에 승복한다”고 합창을 해왔다. 그런데 이제 그 법원의 판결을 공중파 방송에서 패널들이 찢고빻고 하겠다니, 새로운 시대가 열리긴 열렸나 보다.

공중파를 흔들어대는 나꼼수 3인방은 이제 이명박을 잡았고, 그 다음 타깃으로 삼성을 노리는 듯하다. 한국의 ‘돈 권력’과 정면으로 맞서보겠다는 소리다. 

돈 권력이 무서운 건, 한국 사람들이 돈을 무지 좋아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민주 투사인 척 하는 사람이라도, 자기 자식은 삼성그룹에 들어가길 원한다는 데서 한국인의 물질주의가 잘 드러난다. 그만큼 돈 권력은 한국인의 마음속 속속들이 배겨들어가 있다.

2005년 10월 중앙일보의 조사에 의하면 한국인 중에는 물질주의자(“돈이 최고”라는) 비율은 36.7%로 49.2%인 중국에 이어 세계 2등이었으며, 이는 일본 19%, 미국 10%, 스웨덴의 6.4%보다 월등히 높았다. “돈보다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정신주의자, 즉 탈물질주의 한국인은 겨우 5.8%로, 미국과 유럽의 평균 20%대보다 훨씬 적었다(박홍규 저 ‘대한민국을 눈물로 씁니다’ 24쪽에서 재인용). 

한국인이 온마음과 몸을 다 바쳐 사랑하는 그 돈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재벌 총수들은 예를 들어 2400억 원을 횡령해도 집행유예로 풀려나지만(즉 법의 위에 있지만), 단돈 2400원을 훔친 버스 운전기사는 해고 당한다고(즉 엄한 법치의 대상이라고) 지난주 ‘판결의 온도’는 짚었다. 

남은 성역 부수는 계기 될지 모를 북-미 정상회담

한국 사회의 성역이 하나하나 깨져가는 와중에 벼락같이 들려온 ‘북미 정상회담’ 소식은, 정말로 한국 사회의 남은 성역들을 뿌리채 뒤흔들 대반전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간 한국에는 죄받을 사람과, 받지 않을 사람이 '원천적으로' 나눠져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법은 만인에게 공평하다고 하지만 한국에선 다르다. 한국 법은 힘있는 1만 명에게는 공평하지만 힘없는 그 나머지 전부에게는 불공평하다”고 비꼬는 말에 많은 한국인이 박장대소를 했다. 적확한 진단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 공식이 깨져나가고 있다. 절대로 법치를 안 받을 만 하다고 자신했기에 휘하의 여성들에게 마구 행동했던 게 힘센 한국 남자들의 행태였다. 미투 운동으로 그 성역이 무너져내리고 있다. 다음번 성역은 어딜까? 무서운 세상이 왔다. 권력-금력을 휘둘러왔던 자들이여, 회개하고, 미리미리 사과하고, 몸조심 할지어다.

▲SBS TV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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