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무죄=윤석열 유죄’...채상병 사건 ‘외압’ 가능성 커져
내란 수사 때문에 손 놓고 있는 공수처…“외압 몸통 밝혀야”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한 항명죄로 재판에 넘겨졌던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박정훈의 무죄는 곧 윤석열의 유죄’라는 주장이 나왔으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12·3 불법계엄 수사에 전력을 쏟으면서 채 상병 사건에서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중앙군사법원이 9일 박 대령의 항명 및 상관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면서 언급한 내용 중에는 박 대령이 지난 2023년 8월 초 당시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의 경찰 이첩 중단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혐의와 관련해 “장관 지시는 보고서와 다른 내용으로 기록이 이첩될 수 있도록 수정하려는 목적으로 보인다”면서 “정당한 명령이라는 증거를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박 대령이 ‘이 전 장관에게 사단장이 형사처벌 대상이냐는 질문을 받았다’는 거짓 인터뷰를 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이 전 장관보다 박 대령 주장이 신빙성이 높아 보인다”며 무죄 판결을 했다.
특히 재판부는 ‘윗선에서 경찰 이첩 보고서에 담긴 내용을 축소하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박 대령 주장을 일부 받아들인 만큼, 공수처가 수사를 통해 ‘윗선이 어떤 지시를 왜 했는지’ ‘그 지시가 위법한 것인지’ 등을 가려야 할 필요성도 커졌다.
하지만 채 상병 사건 수사를 책임지고 있는 이대환 수사3부 부장검사와 차정현 수사4부 부장검사를 포함해 공수처 수사 인력 전체가 계엄 수사에 투입돼 있기 때문에 당장 수사 진척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법조계 관계자는 10일 “공수처는 지난 2023년 8월 박 대령으로부터 외압 의혹 고발장을 접수했고, 지난해 초·중순 국방부 등 핵심 관계자들에 대한 강제수사에 돌입하면서 속도를 내는 듯했다”면서 “그러나 이 전 장관 등 윗선으로 가는 길목에서 흐름이 끊긴 모양새를 보이면서 지난해 7월 이후에는 4개월간 소환 조사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계엄 국면에서 채 상병 수사에 집중하는 선택지도 있었는데, ‘주목받는 사건을 수사하려고 박 대령 사건을 제쳐뒀다’는 비판을 자초했다”면서 “특히 공수처가 검·경으로부터 계엄 사건을 이첩받으면서 채 상병 수사는 더욱 뒷전으로 밀리게 됐지만, 박 대령 사건 1심 판결이 나온 마당이라 공수처를 향한 압박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한편 9일 오전 용산구 중앙군사법원에서 열린 박 대령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박 대령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지난 2023년 12월 7일 첫 기일 이래 13개월 넘게 이어진 재판에 마침표를 찍었다.
앞서 군검찰은 박 대령에게 2023년 7월 19일 발생한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 민간 경찰 이첩을 보류하라는 당시 김 사령관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항명했다는 혐의를 적용했으며, 또한 언론 인터뷰 등에서 상관인 당시 이 장관의 발언을 왜곡해 부당한 지시를 한 것처럼 일반인이 느끼게 했다는 상관 명예훼손 혐의도 더해 그해 10월 6일 기소했다.
그러나 박 대령 측은 “불법적 외압이 있었고, 김계환 사령관은 박 대령에게 이첩 보류 명령을 내린 바 없으며, 명령이 있었더라도 이는 외압에 의한 것이어서 정당한 명령이라 볼 수 없다”고 논리로 무죄를 주장했으나 사실관계에 대한 의견부터 일치하지 않은 양측은 재판 과정에서 격렬하게 다퉜다.
지난해 2월 1일 열린 두 번째 공판에는 김 전 사령관이 현직 해병대 사령관으로서는 처음 군사법원 공판에 출석해 진술했으며, 이 전 장관도 9월 3일 재판에 증인으로 직접 나왔으며, 국방부 정책실장·법무관리관·대변인·군사보좌관, 해병대 부사령관·비서실장·공보정훈실장, 해병대 수사단 관계자 등 숱한 군인 및 군 관련 인원이 증인 자격으로 법정을 드나들었다.
뿐만 아니라 재판 과정에서 재판부가 변호인 측 요청을 받아들여 윤석열 대통령 측에 이른바 ‘VIP 격노설’의 사실 여부를 서면으로 질문하는 사실조회 신청을 보냈으나 윤 대통령 측이 ‘국가안보와 관련된 사안’이라는 이유로 답변을 회피하기도 했다.
박 대령 이날 중앙군사법원의 선고공판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지혜롭고 용기 있는 판단을 내려준 군판사들에게 경의를 보낸다”면서 “오늘의 정의로운 재판은 오로지 국민 여러분의 지지와 응원, 성원 있었기에 이런 결과가 있었다”고 감사를 표했다.
(CNB뉴스=심원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