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차 연구 노하우로 훈련장비·기법 개발
연습 파트너 ‘슈팅로봇’으로 경기 감각 향상 도와
코오롱FNC는 국내 최초 양궁 전용화 만들어 지원
양사 공통적으로 선수들의 의견을 최우선으로 반영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눈부십니다. 하루만 놓쳐도 따라잡기 빠듯할 만큼 빠릅니다. 어렵다는 편견마저 있어 거리감이 느껴집니다. [테크크]는 편한 뉴스를 지향합니다. IT, 전자, 게임 등의 소식을 보다 접하기 쉽게 다듬고 정돈해 전합니다. 웃으며 가볍게 보셔도 좋습니다. <편집자주>
금빛 환향.
2024 파리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양궁 국가대표 선수단의 귀국길이 금(金)길이 됐다. 4일 모든 일정을 마친 양궁 대표팀의 최종 성적은 금메달 5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 시종일관 당당한 위세를 떨친 태극 궁사들은 마침내 전종목 석권이란 대기록을 달성했다.
결국 이뤄낸 이러한 휘황한 메달 잔치는, 선수들의 노력은 물론 숨은 조력자들이 합심해 일군 성과다. 특히 ‘한국형 기술력’이 뒤를 굳건히 받치면서 값진 결실을 거뒀다.
비인간적인 연습 상대의 등장
결과는 과정의 산물. 대한양궁협회장을 맡은 정의선 회장이 이끄는 현대자동차그룹은 메달 수확으로 이어지는 길을 닦았다. 훈련의 길이다. 이미 세계 최강자인 한국 선수들의 기량을 기어코 더 끌어올리고자 연구개발(R&D) 노하우를 활용했다. 그렇게 나온 대표적인 게 ‘슈팅로봇’이다. 상대 선수가 없어도 언제든 1대1 연습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 게다가 이 파트너는 능력이 비인간적이란 특징도 있다. 평균 9.65점 이상의 명중률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엑스텐(최종 동점 시 가점을 주는 정중앙 10점)을 줄기차게 쏴야 이길 수 있는 상대다.
현대차그룹 측은 “실시간 제어 소프트웨어와 풍향 및 온·습도 센서를 이용해 바람 등 외부 환경 변수를 측정한 후 조준점을 정밀하게 보정해 높은 명중률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선수들이 직접 체감 가능한 기술 지원도 많았다. 몸에 착 감기는 요소들이다. 현대차그룹과 양궁협회는 이번에 3D 스캐너·3D 프린팅 기술을 활용, 선수의 손에 맞춤한 ‘그립’을 제작해 제공했다. 그립은 활의 가운데에 위치하며 쥐는 부분에 해당한다. 위치로 보나 중요도로 보나 그리하여 중심이라 부를만하다.
선수들은 이 중요한 그립을 자신의 손에 꼭 맞게 직접 손질한다. 작은 손맛 차이로도 점수가 크게 좌지우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민감히 여기는 것을 고려해, 현대차그룹은 지난 2020 도쿄 올림픽부터 알루마이드, PA12 등 신소재를 활용해 그립 재질을 향상시켰다. 특히 알루미늄과 폴리아미드를 혼합한 알루마이드는 가벼운 데다, 미끄러짐이 거의 없어 선수들이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피지기에 초점 맞춰 개발한 것도 있다. 슈팅 자세를 정밀 분석하는 ‘야외 훈련용 다중카메라’다. 머리 위와 정면, 두 개 각도에서 선수를 촬영한 피드백 영상을 모니터에 분할 출력하는 것으로 나를 똑바로 응시하게 한다. 이를 통해 선수는 자신의 슈팅 자세를 다각도에서 관찰하며 완벽한 자세를 잡아나갈 수 있다.
이밖에도 많은 기술 동반자들이 있었다. 30m 거리에서 화살을 쏘아 불량품은 거르고 최상 품질의 화살을 선별하는 기기인 ‘고정밀 슈팅머신’, 비접촉 방식으로 선수들의 생체정보를 측정해 선수들의 긴장도를 파악하는 ‘비전 기반 심박수 측정 장치’ 등이 훈련 과정에서 지원군 역할을 했다.
일방적 개발이 아니었다. 귀를 기울여서 나온 결과물이다.
현대차그룹 측은 “도쿄대회 직후부터 프로젝트에 착수해 양궁 선수들과 코치진을 심층 인터뷰하고, 훈련과정에서 필요한 것들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청취했다”며 “그중 선수들이 가장 필요로 하고, 자사 기술력으로 지원해 줄 수 있는 기술 개발에 매진했다”고 밝혔다.
양궁 전용화를 아시나요?
시위를 당기는 손, 과녁을 응시하는 눈. 중계 화면에 주로 잡힌 이 모습 말고 태극 궁사의 발아래에도 기술력은 살아있었다. 그 몸체는 신발이다.
코오롱인더스트리FnC부문(이하 코오롱FnC)이 전개하는 아웃도어 브랜드 ‘코오롱스포츠’는 이번 대표팀에 국내 최초로 양궁 전용화를 만들어 지원했다. 다른 장비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는 신발에 처음으로 시선을 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귀를 기울였다. 코오롱 양궁팀인 ‘코오롱 엑스텐보이즈’의 필드테스트를 기반으로 양궁화를 제작했다. 고려 요소가 많았는데 가장 신경 쓴 것은 밑창이다. 정확한 조준을 위해선 한 치의 흔들림도 없어야 하며, 따라서 조금이라도 미끄럽지 않아야 한다. 지면을 딛고 섰을 때 안정감 있게 붙어야 한다는 얘기. 접지력이 뛰어나 산악 지형에서 각광받는 비브람사(社)의 메가그립을 밑창에 적용한 것도 이 때문이다.
딱딱하면 부러진다. 활동성에도 공들인 이유다. 발등 부분은 가볍고 유연한 폴리우레탄 코팅 소재를 적용했고, 운동화 앞코는 낮게 설계해서 안정감을 더했다. 선수마다 다를 착용감을 위해 다이얼로 세심하게 끈을 조이고 푸는 보아(BOA) 시스템도 넣었다.
전용화를 포함해 이번 양궁 대표팀의 모든 의류를 지원한 코오롱스포츠는 유니폼에도 기술을 담았다. 우선 예전 유니폼 대비 약 10% 이상 가볍게 만들었다. 상의 안쪽에는 흡수성 소재를 적용해 땀이 빠르게 마르도록 했다. 겉쪽은 땀을 빨리 기화시키는 소재를 사용해 땀자국이 남지 않도록 했다. 3D 패턴 기술로 시위를 당기고 쏘는 동작에서 어깨의 움직임이 용이하게 만든 점도 눈에 띈다.
코오롱FnC 관계자는 “양궁 국가대표 선수들이 최상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최적화된 의류와 용품, 그리고 양궁화를 개발해 후원했다”며 “국가대표 선수들의 좋은 성적에 조금이나마 기여를 해서 기쁘다”고 말했다.
(CNB뉴스=선명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