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대통령 거부권’ 결국 국무회의 상정
대규모 규탄집회 예고…정국 소용돌이
22대 국회 첫번째 뜨거운 감자로 부상
야당표 결집, 재발의 시 尹 내상 불가피
야권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21일 국무회의를 열어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재의요구안(거부권)을 결국 상정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 수순에 돌입한 가운데 여야 대치 정국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野) 5당은 물론 보수성향의 개혁신당까지 거부권 행사에 반발하고 있어 이번 사태는 곧 개원할 22대 국회의 첫 번째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CNB뉴스=도기천 기자)
‘채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7월 경북 예천의 수해 현장에서 실종자 수색을 하던 중 급류에 휩쓸리며 실종됐다가 14시간 만에 숨진 채 발견된 해병대 고(故) 채수근 상병의 죽음을 둘러싼 각종 의혹을 규명하자는 법안이다. 작년 10월 국회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돼 지난달 본회의에 부의, 지난 2일 국회를 통과했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수사과정에서 윗선으로부터 받은 외압 의혹, 진상 축소 및 은폐 정황, 애초 무리한 실종자 수색이 이뤄진 배경 등을 낱낱이 밝혀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자는 게 법안의 취지다.
윤 대통령은 지난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채상병 사건과 관련, 진행 중인 수사와 사법 절차를 지켜보겠다고 밝혀 사실상 특검을 거부했다. 현재 진행 중인 공수처 수사면 충분하다는 것. 여당인 국민의힘도 20일 재차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혔다.
국무회의에 재의요구안이 상정된 만큼, 윤 대통령은 권리 행사 시한인 22일 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 확실시된다. 앞서 윤 대통령은 취임 후 지난 2년간 9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
전과 달라진 22대 국회, 초유의 치킨게임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재의요구권을 행사하면 오는 28일 본회의에서 재의결하고, 부결돼 21대 국회에서 폐기되더라도 22대 국회 개원 즉시 1호 법안으로 재추진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정의당·새로운미래·기본소득당·조국혁신당·진보당 등 군소 야당들도 20일 대통령실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입대했던 한 해병대원을 누가 죽음으로 내몰았는지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며 대통령을 압박했다. 범(凡)보수로 분류되는 개혁신당도 야당들과 함께 목소리를 높였다. 야당들과 시민단체는 오는 25일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장외집회를 열 계획이다.
특히 민주당은 채상병 특검법 뿐 아니라 윤 대통령이 그간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 모두를 재추진하겠다고 선포한 상태다.
22대 국회에서 171석의 거대 야당 민주당을 이끌 첫번째 원내사령탑으로 선출된 박찬대 원내대표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김건희 특검법’을 비롯, 방송 3법,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 양곡관리법, 간호법 등 그동안 윤 대통령이 거부한 모든 법안에 대해 재발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22대 국회는 이전보다 더 큰 충돌이 예상된다.
현재의 21대 국회에서는 야권 표가 부족해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막을 수 없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이 국회에서 재의결 되려면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의 찬성이 필요하다. 21대 국회 재적의원 296명 전원이 출석할 경우 198명이 찬성해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범여권 115석(국민의힘 113석, 자유통일당 1석, 무소속 1석) 가운데 17표 이상 이탈표가 나와야 재의결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달 말 개원할 22대 국회는 상황이 다르다. 민주당 171석을 포함해 조국혁신당 12석, 진보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등 범야권의 의석수가 190석에 이른다. 여기에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개혁신당(3석) 또한 윤 대통령의 잦은 거부권 행사에 강한 반감을 갖고 있다. 따라서 여당인 국민의힘에서 6~7석의 이탈표만 나와도 거부권 행사 법안에 대한 재의결이 가능한 상황이다.
따라서 야당들이 힘을 합쳐 법안 처리에 나설 경우, 여당으로서는 결사적으로 방어할 수밖에 없어 국회가 최악의 대치 국면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尹대통령 외압 여부 최대 쟁점
이번 채상병 특검법의 경우, 대통령실의 외압 여부가 최대 쟁점이 될 전망이다. 윤 대통령이 국방부 수사 결과에 대해 격노했다는 주장이 이미 여러 곳에서 나온 상태다. 윤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이시원 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과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채상병 사건과 관련해 수차례 통화한 사실까지 드러나 대통령실 관여 의혹이 짙어진 상황이다.
여론은 이미 야당 쪽으로 기운 상태다. 윤 대통령이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호주대사로 임명한 것이 지난달 총선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했다. 민심이 급격히 이반 했고 여당의 총선 참패를 불러왔다.
이대로라면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뭉친 민주당, 개혁의 쇄빙선이 되겠다고 나선 조국혁신당 등 더 강력해진 야당들이 의석을 점유한 22대 국회에서 윤 대통령이 국정동력을 확보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국민의힘 한 초선의원은 CNB뉴스에 “채상병 특검법으로 여권 전체가 외통수에 걸린 형국”이라며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국민의 따가운 여론에 직면하게 됐고, 22대 국회에서 야당에게 주도권을 뺏길 수밖에 없게 됐다.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조에 큰 변화가 없는 것 같아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CNB뉴스=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