칵테일·위스키 등에 활용되는 ‘원형 얼음’
천천히 녹고 심미성 좋은데 만들긴 어려워
LG전자, ‘고드름’에 착안…냉장고에 적용
“대한민국은 IT강국”이란 말은 이제 잘 쓰지 않습니다. 당연하게 여기는 이유가 가장 클 텐데요. 그만큼 국내 정보통신산업은 급속도로 성장하며 세계에 이름을 날려 왔습니다. 날로 고도화되는 기술, 이를 바탕으로 탄생한 혁신적인 제품들이 증거입니다. 그리고 그 수많은 결과물에는 반드시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IT 이야기’, 줄여서 [잇(IT)야기]에서 그 설을 풀어봅니다. <편집자주>
봄이 왔나 싶더니 어느새 달아나는 듯합니다. 4월초에 서울 낮 기온이 30도까지 오른 날도 있었죠? 이제 거리에서 반소매 차림의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계절의 여왕 5월이 오지도 않았는데 벌써 걱정이 됩니다. 다가오는 ‘진짜 여름’에는 얼마나 더울까요? 어떻게 피서(避暑)할지 지금부터 궁리해야겠습니다.
머리를 쥐어짤수록 부딪히는 것은 현실의 벽입니다. 시원한 곳을 찾아가자니 주어진 시간이 가로막습니다. 주말이 짧은 이유는 정말 5대2로 열세이기 때문이고 1년으로 따졌을 때도 휴일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생각만 해도 목이 턱턱 막히는 기분. 차가운 음료를 들이켜면 달래질까요? 마침 오늘의 주제가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아무리 햇볕이 뜨거워도 손과 이가 시리도록 만들어주는 서늘한 너, 얼음입니다.
이번에 다루려는 얼음은 조금 특별합니다. ‘홈술’로 위스키를 즐기는 내공있는 분이나 칵테일바를 즐겨찾는 분이라면 익숙하실, 크고 둥근 얼음입니다. 보통은 작고 각진 형태가 먼저 떠오를 텐데요. 칵테일용 얼음은 어린아이 주먹 만 하고 동글동글한 것이 특징입니다.
크기와 모양 뿐 아니라 두드러지는 차이가 또 있습니다. 바로 속이 훤히 비치도록 투명하다는 점입니다. 흔히 보는 서리 내린 듯한 뿌연 얼음과는 다르죠. 어쩜 이렇게도 깨끗한지. 그 비결을 60초 후에, 아니 다음 단락에서 공개하겠습니다.
집에서는 만들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시중에서 파는 동그란 틀에 물만 채워 얼리면 그 느낌이 안 살죠? 보통 가정용 냉장고의 냉동실 온도는 –18도~20도에 맞춰져 있습니다. 물이 빠르게 얼 수밖에 없죠. 그 과정에서 기포가 발생해 마치 성에가 낀 것처럼 얼음이 뿌옇게 됩니다. 틈이 마구 생겨서요. 위스키를 전문적으로 파는 곳에서는 물이 어는점인 0도 수준에서 장시간 얼립니다. 적어도 하루 이상을 기다려야 기포가 천천히 빠져나가면서 빈틈없이 투명하게 얼게 됩니다. 이제 아시겠죠? 속살까지 비치는 얼음의 비결은 바로 온도입니다.
이제 모양으로 가볼게요. 둥근 형태가 보기에만 좋은 것은 아닙니다. 각이 지면 음료에 닿는 얼음의 표면적이 넓어져 더욱 빨리 녹습니다. 둥글면 반대가 되고요. 면 대 면으로 붙다가 화끈하게 산화하는 게 아니라 천천히 원만하게 살을 부비다 녹아내리는 모양새랄까요.
정리해볼게요. 크고 둥근 얼음은 음료가 오랜 시간 시원하도록 해주고요, 빨리 녹아서 맛이 밍밍해지는 걸 어느 정도 해소해줍니다. 흔들면 달그락 거리는 보통 얼음과의 가장 큰 차이가 더디게 녹는 데에 있습니다.
기본 생성 원리를 냉장고에 적용
쓰면서도 걸리는 게 참 많습니다. 동그란 얼음 틀을 구입해서 냉동실의 온도를 0도에 맞추고 24시간 이상 얼린다? 그동안 다른 음식들은 어떻게 보관하고? 의문투성인데요. 가정용 냉장고로도 투명하고 둥근 얼음을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귀 밝은 분들은 아시겠지만 출시된 지는 몇 년 됐고요. 단지 그런 제품이 있다니, 이제 와서 새삼 신기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이렇게 까다로운데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지가 궁금했습니다.
많은 제조사들이 원형 얼음이 나오는 냉장고를 선보였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두 마리 토끼를 잡은 LG전자의 개발 비화가 흥미로워서 자세히 들어봤습니다. 꽹하면서 둥근, 지름 50mm 얼음을 어떻게 구현했나요?
LG전자에 따르면 2012년부터 원형(圓形) 얼음 제작을 시도, 이듬해에 성공했는데 지금처럼 투명하게 만들지는 못했답니다. 둥글게 모양 잡기보다 어쩌면 더 어려운 미션이 투명도 잡기였다는 걸로 들리는데요.
그때 착안한 게 물이 위에서 아래로 서서히 내려가며 어는 고드름이었다고 합니다. 아시겠지만 고드름은 한입 베어 물고 싶을 만큼 맑게 생겼죠? 고드름이 어는 원리를 제빙 시스템에 적용한 이유입니다. 물을 위에서 아래로 공급하며 천천히 얼도록 제빙 시스템을 만들었고, 제빙기에 히터를 설치했습니다. 물 안의 기포가 천천히 이동할 수 있도록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맑은 얼음은 적정 온도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원형 얼음이 나오는 냉장고의 키를 ‘히터’가 쥐고 있는지도 모르고요. 아무튼 일등공신이 누군지 따져서 뭐하겠습니까. 결과적으로 투명한 얼음의 기본 생성 원리를 기술로 구현했기에 냉장고란 장치에 적용될 수 있던 겁니다. 물론 고드름의 재발견도 한몫 했고요.
자, 여기까지입니다. 숨 가쁘게 키보드를 두들겼더니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힙니다. 이 기사의 제목인 “냉장고에서 ‘투명한’ 둥근 얼음이 나오는 원리”가 조금이나마 와 닿으면 좋겠는데 아니면 어쩌나 걱정이 됩니다. 괜한 근심에 짓눌리니 목도 타고요. 오늘 가장 많이 쓴 단어인 ‘얼음’이 가득 담긴 아메리카노가 아른거립니다. 카페로 달려가기 전에 살포시 희망사항을 적어봅니다. 나른한 오후, 여러분도 시원한 음료 한잔으로 이겨내시기를.
(CNB뉴스=선명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