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칼 앞에 꽃잎되어 떨어진 순결한 청춘들
총선서 누린 참정권은 64년전 피의 결과물
나눔·공존, 평화의 정신으로 위기 극복해야
(CNB뉴스=도기천 편집국장)
오늘은 22대 총선이 끝난 후 맞는 첫 4.19혁명일이다. 1960년의 4,19가 당시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이번 총선 과정이 64년 전 그날 위에 겹쳐진다.
이번 총선은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치열했다. 여당은 민주당 심판을, 야당은 윤석열 정권 심판을 내세워 정면충돌했다. 여기에 조국혁신당 등 제3세력까지 가세해 선거판이 요동쳤다. 여야 간 민망할 정도의 상호 비난전이 펼쳐져 마치 치킨게임(자동차 두 대가 마주보며 달리는 상황)을 방불케 했다.
하지만 ‘부정선거’라는 단어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 선관위가 “대파를 들고 투표장에 입장할 수 없다”고 하자 일각에서 관권선거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지만, 정치깡패를 동원해 투표함을 탈취했던 자유당 시절에 비하면 ‘애교’ 정도로 여겨진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투표행위에 있어 유권자의 권리는 100% 보장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는 여론의 균형추가 어느 정도 맞춰진 점도 작용했다.
불과 30여년 전까지만 해도 언론검열, 편파방송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왔다. 밤 9시 정각에 시작되는 ‘9시뉴스’의 첫 소식이 ‘대통령’이라 ‘땡 뉴스’로 불렸다.
현재도 언론의 독립성·중립성이 완전히 보장된 건 아니다. 총선을 불과 몇 달 앞두고 자행된 KBS의 기습적인 시사프로 개편은 권력의 ‘언론 길들이기’ 시도가 여전함을 보여준 사례다.
언론노조와 야권의 반발 속에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박민 KBS 사장은 취임과 동시에 주요 정치시사프로 진행자를 교체하고 심지어 일부 프로를 폐지했다. 보도본부장 등 본부·센터장급 간부 9명과 주요 부서 국·부장급 보직자 60명이 하루아침에 교체됐다. 방송 뿐 아니라 네이버 등 포털을 매개(검색제휴)로 뉴스를 공급하는 인터넷 언론들을 정부가 대대적으로 손볼 것이라는 얘기도 돌았다.
하지만 이렇게 한쪽으로 기운 운동장은 ‘제3의 언론’으로 불리는 유튜브·SNS가 일정 부분 바로잡아 줬다. 공중파 뉴스 시청률이 크게 떨어진 반면 정치시사 유튜브 영상의 조회수는 급격히 증가한 것이다.
정부는 방송 등 주요언론을 통해 채 상병 순직 사건, 이태원 참사, 오송 지하차도 참사 등 중대재해 사건들을 축소·왜곡하려 했지만, 유튜브·SNS까지 막을 순 없었다. 결국 여당은 총선에서 혹독한 대가를 치뤘다.
이렇게 국민의 귀가 커져 정부의 여론장악 시도가 잘 먹히지 않고, 관권·금품선거 등 부정선거가 구조적으로 사라진 근원(根源)에는 64년 전 학생들이 흘린 숭고한 피가 있다. 4월 혁명은 5.18 광주와 87년 6월항쟁의 원동력이 되어, 반세기에 걸친 기나긴 민주화 여정 끝에 비로소 국민에게 온전한 참정권을 안겨줬다. 우리가 오늘 4.19를 기리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이번 총선에서 거대정당들이 만든 위성정당제도는 군소정당들의 입지를 좁혀 다당제라는 의회정치의 기본원칙을 가로막은 면이 없지 않다. 득표율과 의석수가 정비례하게 하자는 정치 선진국들의 ‘정당명부비례제’와도 한참 동떨어진 후진적 제도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선거용 정당들이 즉석요리처럼 우후죽순 창당됐고, 화투판에서 광 파는 식의 합종연횡이 이뤄졌다. 이 결과 정당 투표에서 무효표가 ‘역대 최다’인 131만표에 달했다. 사표(死票)를 막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양대 정당의 경선 과정도 매끄럽지 못했다. 비명횡사, 친명횡재, 친윤공천이란 말이 나왔고, 지역사회에서 입지를 넓혀온 명망가들이 영문도 모른 채 하루아침에 ‘컷오프’ 당하기도 했다. 경선 또한 유권자의 중요한 참정행위라는 점에서 참여 폭을 넓히는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
국민 눈높이에 한참 모자라는 후보들을 공천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정당이 보다 꼼꼼한 검증 체계를 마련해야 선거민주주의가 한발 더 발전한다.
특히 시급한 과제는 진보·보수, 호남·영남, 국민의힘·민주당으로 갈라져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상황을 극복하는 일이다.
64년 전 수많은 시민·학생들이 총칼 앞에 맞서며 외쳤던 구호는 ‘평화롭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지, 불의한 자유당 정권에게 복수하겠다는 게 아니었다.
지금은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세력이 석권했지만, 다음 선거는 보수가 압승할 수도 있다. 역사는 늘 그렇게 되풀이되면서 발전해왔다. 그러니 서로를 너무 미워하지 말고, 어떻게하면 더불어 살아갈 공동체를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정치권은 물론 시민사회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나눔과 공존, 평화의 정신으로 위기 극복에 나설 때다.
이것이 그날 아스팔트 위에 뜨거운 피 뿌리며 숨져간 꽃 같은 청춘들에게 오늘의 우리가 응답하는 길이다.
(CNB뉴스=도기천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