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예성기자 | 2024.04.08 14:29:17
과거 <미니 데이트>로 인기를 모았던 가수 윤영아의 자전적 모노드라마가 미국 뉴욕과 필라델피아에서 오는 5월 공연될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윤영아는 KBS 청소년 창작 가요제에서 <오선지에 그린 슬픔>을 불러 대상을 수상한 후 90년대 초 <미니 데이트>로 데뷔 초부터 인기를 누리던 가수로, ‘시티팝’의 선구자 또는 한국의 머라이어 케리, 한국의 휘트니 휴스턴으로 불리며 뛰어난 가창력과 춤 실력으로 큰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그의 데뷔곡 <미니 데이트>는 당시로서는 시대를 앞서 간 시티팝의 원조로 평가되면서 각종 가요 프로그램에서 높은 순위에 오르기도 했다. 특히 당시 선풍을 일으키며 가요계를 평정하던 서태지와 아이들과 순위 경쟁을 벌여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불행한 삶과 마주하며 대중에게서 멀어졌던 윤영아는 최근 JTBC의 ‘싱어게인’에 50호 가수로 출연하며 올드 팬들에게는 추억을 소환해주고 젊은 층에는 시대를 앞서간 실력 있는 가수로 다시금 인정 받기 시작했고, 인기 TV 프로그램 ‘복면가왕’과 ‘열린음악회’ 등에 출연하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윤영아의 자전적 뮤지컬 모노드라마 <규금아 나는>은 인기 정상의 가수에서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도 어려운 불행을 겪은 그의 삶을 연극으로 만들어 보고자 한 미국 필라델피아의 공연 기획자 심수목 대표에 의해 시작되었다. 방송 대담 프로그램을 통해 간략하게 세상에 알려진 윤영아의 인생 스토리에 주목한 심수목 대표가 이를 연극으로 만들어보자고 윤영아에게 제안하게 됐다고 한다. 여기에 심수목 대표가 윤영아의 고등학교 선배라는 점도 의기투합에 한몫 한 것으로 전해진다. 심 대표는 무엇보다 윤영아의 인생 스토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극작가와 연출을 선정하고 필라델피아에서의 공연을 기획하게 되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모노드라마라는 연극의 형태는 지금까지 여러 작품이 있어 왔지만 뮤지컬의 형식으로 만들어진 모노드라마는 흔치 않다. 윤영아의 여전히 녹슬지 않은 가창력이 공연에 매우 유용한 레서피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음악과 노래는 윤영아의 삶과 떼어 놓을 수 없는 부분이라는 사실이 <규금아 나는>이라는 모노 드라마가 뮤지컬의 형태로 만들어지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라는 설명이다.
<규금아 나는>에는 윤영아 자신이 윤영아 역을 맡아 연기한다. 제목의 규금은 윤영아가 대학시절부터 가장 친하게 지내 온 오랜 친구이며 뮤지컬 배우이기도 하다. 연극은 윤영아의 초대로 그녀의 작업실에 들른 규금에게 윤영아가 들려주는 이야기로 채워진다. 다만 규금은 가상으로 설정될 뿐 무대에 등장하지 않는다. 객석 앞에 규금이를 위해 놓여지는 빈 의자는 바로 관객들을 위한 자리이며, 관객들은 주인공의 친구인 규금이가 되어 윤영아의 얘기를 듣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의 ‘인생 스토리’라고 하면 흔한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고 홍보에 크게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기획자 심 대표는 ‘윤영아의 자전적 인생 스토리’라는 표현을 쓰는데 주저함이 없다.
우리 각자의 삶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그 고난과 절망의 크기에 차이가 있을지언정 윤영아의 인생 스토리도 우리 각자의 삶과 너무나도 많이 닮아 있다. 다만 윤영아가 삶을 통해 보여준 그 극복의 과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인기 가수에서 평범한 생활인으로 살아가기에도 벅찬 지경까지 추락했던 삶의 여정 속에서 그녀가 경험한 좌절과 절망은 늘 두가지의 다른 길에서 윤영아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쉬운 길’과 어렵지만 부끄럽지 않은 ‘당당한 길’이다.
그렇다고 <규금아 나는>에서 보여지는 윤영아의 삶은 당당한 선택으로만 가득한 ‘위인전’이 아니다. 더군다나 어려움 끝에 큰 뜻을 이룬 ‘입지전’ 또한 아니다. 쉬운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유혹에 그녀도 흔들렸고 당당한 길을 걷기 위해서는 큰 댓가를 치뤄야만 했던, 너무나도 인간적인 윤영아의 진솔한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윤영아의 ‘인생 스토리’가 경건함 마저 느끼게 해주는 이유, 심수목대표가 비록 진부한 느낌을 줄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굳이 그 표현을 피하고 싶어하지 않는 이유다.
이 연극을 보는 관객들은 녹슬지 않은 윤영아의 가창력과 여전히 매력적이고 섹시하기까지 한 그녀의 모습에 매료되다가, 그런 그녀여서, 그런 그녀의 상품 가치 탓에 그녀가 겪어야 했던 유혹과 좌절을 곧 발견하게 된다.
관객들은 ‘겉보기에’ 화려했던 윤영아의 삶이 오히려 엄청난 무게로 그녀를 짓누르는 현실을 목격하며, ‘자신들의 삶’을 ‘윤영아의 삶’에 비추어 보게 된다. 굳이 ‘겉보기에’라는 표현을 강조한 이유는, 기실 인기 정상의 가수일 때도 전혀 연예인 같은 모습으로 거리를 다닌 적이 없는, 무대 밖에서 연예인 티가 나는 걸 본능적으로 싫어했던, 당시로서는 아니 오늘의 시선으로 봐도 극단적으로 겸손, 검소한 사고의 소유자가 윤영아이기 때문이다.
다만 일반의 선입견이나 시선이 이런 윤영아를 곡해하고 섣불리 재단함으로써 삶의 굴곡 속에 윤영아가 겪어야 했던 고충이 더 커졌을 뿐이다. 인기인이 아닌 생활인으로 살아가는 일에 조금도 불만이 없었던 윤영아를 정작 힘들게 했던 건 바로 이 세상의 편견이었기에 덧붙이는 말이다. 윤영아의 미모와 섹시함과 매력은 마치 그녀에게 양날의 칼 같았고, 당당하기를 갈망했던 그녀의 올곧은 성품은 마치 그리스 비극 주인공의 비극적 결함처럼 그녀를 끊임 없이 괴롭혔다.
<규금아 나는>은 평범하기 조차 어려웠던 윤영아의 삶에 대한 회고록이며 우리 삶과 너무나 닮아 있는 그녀의 삶을 통해 관객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한 인물의 굴곡진 삶이 조명 되고는 있지만 적극적이면서 엉뚱한 면을 가진 윤영아의 성격이 때로는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며 극적 재미를 더한다. 현실에 맞서 저항해 나가는 과정이 격렬하게 묘사될 때는 압도적인 에너지가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윤영아에게 가장 큰 고통을 가져다 준 연예기획사의 횡포가 드러나는 부분에서는 당시 부조리했던 사회상과 연예계에 만연했던 병폐가 여과 없이 폭로되어 관객들에게 공분을 자아내기도 한다. 눈물과 웃음으로 감동과 재미를 동시에 선사하는 이 뮤지컬 모노드라마에서는 윤영아의 히트곡들과 당시 인기 있던 노래들이 윤영아에 의해 불려지며 풍성한 볼거리도 제공한다. 웃음과 눈물, 감동과 격정이 윤영아의 뛰어난 연기와 매력적인 노래에 담겨 관객들에게 전해진다. 지루할 틈 없이 관객들은 한시간 반의 공연 시간 동안 규금이와 함께 윤영아의 이야기에 몰두하게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을 위해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남우 주연상을 수상한 바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연기파 배우 손현주가 윤영아의 연기를 지도한 것으로 알려져 또한 화제가 되고 있다. 작가 겸 연출가의 절친한 대학 선배인 손현주는 후배의 간곡한 부탁으로 이번 작품에서 윤영아의 연기 지도를 맡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에서 활동 중인 윤영아와의 작업을 미국에서 원격으로 진행해야 하는 연출가가 배우 손현주에게 어려움을 토로했고 이에 손현주가 바쁜 촬영스케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도움을 주기로 결심했던 것.
<규금아 나는>은 가수 윤영아의 연극보다 더 극적인 삶을 완성도 높은 작품에 담아 풍성한 볼거리와 함께 수준 높은 감동과 재미를 관객들에게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여기에 중년의 나이에도 믿기 어려울 정도의 매력적인 외모와 뛰어난 가창력을 유지하고 있는 윤영아의 연기가 대배우 손현주에 의해 더욱 다듬어져 연극적 완성도를 높일 것으로 평가 된다.
여러모로 화제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작품이 윤영아의 자전적 뮤지컬 모노드라마 <규금아 나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