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1일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의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을 2년 유예하자고 국민의힘이 제시한 절충안을 두고 막판까지 협상을 이어갔으나 이날 오후에 국회 본회의에 앞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격론 끝에 수용하지 않기로 결정함으로써 결국 최종 합의가 불발됐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은 산업현장에서 노동자 생명·안전이 더 우선한다는 기본 가치에 충실하기로 했다”며 “정부·여당의 제안을 거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앞서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지난달 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비대위원장, 이관섭 대통령비서실장 등과 오찬 회동을 한 날, 중처법 유예 법안 협상과 관련해 장시간 논의를 하고 협상 관련 권한을 사실상 위임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김진표 국회의장이 지난달 28일 “1월 임시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열리는 이날까지 중처법 확대 적용 유예 법안의 여야 합의 처리를 위한 ‘조정안’을 만들겠다”며 중재에 나설 뜻을 밝힌 지 이틀 뒤인 30일 여야 원내대표가 오찬 회동에서 윤 원내대표가 홍 원내대표에게 “산업안전보건청(산안청) 설치를 수용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혀 꽉 막혔던 협상에 물꼬가 트이는 듯 했으나, 양측은 각론에서 이견만 확인하고 합의를 보지 못했다.
그러자 국민의힘 윤 원내대표는 ‘산안청’ 명칭을 ‘산업안전보건지원청’(지원청)으로 변경하고 단속·조사 업무를 줄이는 대신 예방·지원 업무를 강화하는 쪽으로 기관의 역할을 조정하는 협상안을 만들어 대통령실과 정부를 설득한 끝에 민주당과 물밑 재협상에 나선 것이었다.
이같은 국민의힘의 최종 협상안을 들은 홍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요구한 산안청 설치를 국민의힘이 받아들인 만큼 중처법 확대 적용 2년 유예안을 전향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당 내부 설득에 들어가 법안이 오후 본회의에서 합의 처리될 가능성이 제기됐으나, 민주당 의총에서 의원들의 반발로 순식간에 분위기가 급변하며 급제동이 걸린 것이다.
당초에 중처법 개정안에 반대했던 윤석열 대통령은 민주당의 거부 소식을 듣고 대통령실 김수경 대변인의 서면 브리핑을 통해 “(민주당이) 끝내 민생을 외면했다”며 “여당 원내대표가 민주당이 그동안 요구해온 산업안전보건청을 수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거부한 것은 결국 민생보다 정략적으로 지지층 표심을 선택한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윤 원내대표도 민주당 거부 소식을 들은 직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우리 당이 제시한 협상안을 끝내 걷어찼다”며 “민생 현장의 절절한 목소리를 외면하고 800만 근로자와 83만 중소기업 또 영세자영업자의 눈물을 외면한 민주당의 비정함과 몰인정에 대해 국민이 반드시 심판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중소기업중앙회와 대한전문건설협회, 소상공인연합회 등 17개 중소기업 단체도 논평을 내고 “매우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이라며 “남은 2월 임시국회에서 이 법안이 다시 논의돼 처리되기를 간곡히 호소한다”고 밝혔으며, 한국경영자총협회도 “경제계가 법 적용을 유예해 줄 것을 국회에 수차례 촉구했지만 결국 83만개가 넘는 중소·영세기업들이 제대로 된 준비 없이 법 적용을 받게 됐다”고 유감을 표했다.
그러나 민주당 안팎에서는 총선이 목전인 가운데 원내 우군 세력인 녹색정의당과 주요 지지 기반인 노동계가 중처법 확대 시행 유예에 강하게 반대하는 점이 민주당 의원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녹색정의당은 이날 민주당 의총장 입구에서 중처법 유예 반대 피켓 시위를 하며 민주당을 압박했으며 특히 지난 2018년 12월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고(故)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생명안전행동 공동대표 등 산재 피해 유가족들도 자리해 의총장에 입장하는 민주당 의원들을 붙잡고 “유예는 안된다” “유예를 꼭 막아달라”며 눈물로 호소했으며, 한국노총과 민주노총도 이날 국회 본청 앞에서 중처법 유예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민주당을 압박했다.
(CNB뉴스=심원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