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교통·주택 두루 거친 전문가
ESG 강화로 공공사업 경쟁력 키워
‘공급·투자·안전’ 내걸고 개혁 속도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가 올해 투자 규모를 역대 최대 수준으로 늘리는 등 서민 주거안정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어 주목된다. 지휘봉을 잡은 이한준 사장은 ‘공급·투자·안전’을 올해 3대 키워드로 정해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CNB뉴스=황수오 기자)
2022년 11월 LH 수장에 오른 이한준 사장은 도시·교통·주택 분야를 두루 거친 전문가로 통한다. 한국교통연구원 부원장, 경기도지사 정책특별보좌관, 경기도시공사(GH) 사장, 아주대 교수 등을 거치며 40여년 간 이론과 실제를 두루 섭렵했다.
특히 2006년 김문수 경기지사 시절, 김 지사의 정책특별보좌관을 지내며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사업을 최초 설계했다. 2008년에는 GH 사장을 맡아 경영난에 봉착한 GH의 신용등급을 AAA로 끌어올리는 놀라운 성과를 냈다. 또 광교·다산신도시 사업, 평택 삼성전자 유치, 판교 테크노밸리 정상화 등을 이끌었다.
이는 숫자로도 증명된다. 이 사장이 GH 사장으로 취임한 지 약 1년 만에 매출이 전년 대비 67%(1조3537억원) 늘었고, 순수익은 4배 넘게 커졌다. 당시 GH의 매출 1조 돌파는 GH 설립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임기 마지막 해(2011년)에는 1776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내며 전문경영인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40년간 한 우물 판 전문성, ESG로 승화
이후 LH의 수장이 된 이후에는 ESG 분야에서 괄목한 만한 성과를 거뒀다. ESG는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의 머리글자를 딴 용어로, 기업의 활동에 친환경, 사회적 책임 경영, 지배구조 개선을 도입해 지속 가능한 경영을 하자는 글로벌 캠페인이다.
이는 곧 기업의 경쟁력과도 직결된다. 친환경·사회적 경영을 통해 궁극적으로 회사를 성장시키자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 실제로 글로벌 평가기관들은 기업의 ESG 점수를 기준으로 투자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LH는 이 사장 취임 이듬해인 작년에 서스틴베스트가 실시한 ‘2023년 ESG평가’에서 LH 사상 최초로 A등급을 획득했다. 서스틴베스트는 지난 2006년 국내 최초로 자체 ESG 진단모델을 개발한 국내 대표적 ESG 평가기관이다.
평가에서 LH는 환경(E)·사회(S)·지배구조(G) 모든 영역에서 점수가 상승했다. 전년 대비 14.04점이 오른 90.26점으로 1등급 상향됐다. 이는 이 사장이 취임 후 전담조직과 자체 ESG협의체를 설치해 ESG 경영체계를 강화한 결과다. 이 사장은 45개 과제를 편성해 고유 사업에 집중하는 한편 입주민 혜택, 국민 편익 증진 등에 애썼다.
특히 심사위원들로부터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분야는 ‘파키스탄 슬럼지역 주거환경 개선과 연계한 온실가스 국제 감축’ 노력이다. 이 사업으로 LH는 개발도상국 슬럼지역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것과 함께 향후 10년간 134만 톤의 탄소배출권(669억원)을 획득할 수 있게 됐다.
환경(E) 분야에서는 △임대주택에 태양광 설비를 설치해 입주민 관리비 월 1만5000원을 절감하고 잉여 전기는 인근 지역 주민에 무상 제공한 사례 △생물 다양성 확보를 위한 보호종의 대체서식지 조성 사업 △진주가좌산 폐선구간에서 탄소 365톤을 흡수하는 탄소상쇄숲 조성사업 등이 우수사례로 뽑혔다.
사회(S) 분야에서는 임대주택 공가를 청년 홀로서기, 범죄 피해자 보호 등에 적극 활용한 사례를 비롯해 △5060 은퇴자의 지방 정착을 돕는 지역활력타운 조성사업 △층간소음 해결을 위한 국내 최초 다양한 유형의 층간소음 실증실험이 가능한 시험실 건립안 등이 우수사례로 선정됐다.
지배구조(G) 분야에서는 공공 최초로 스웨덴 글로벌 가구기업인 이케아와 협업해 ‘뉴:홈’의 대국민 인지도를 높이는 등 민간기업과 국민의 경영 참여를 통해 성과를 창출한 다양한 사례가 인정받았다.
새해 ESG의 핵심은 ‘공공성 강화’
이런 여세를 몰아 이 사장은 올해 공공주택 물량을 대폭 늘이는 등 LH의 공공성 강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ESG 경영의 구체적인 방향타를 ‘서민 주거안정’에 맞춘 것이다. 이는 윤석열 정부의 주택 270만호 공급 공약과도 맞물려 있다. 특히 부동산 PF 부실 여파로 인해 민간 건설 부문의 공급이 위축된 터라 공기업인 LH의 공적 기능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이를 구체화한 키워드는 ‘공급·투자·안전’ 3가지다.
우선 LH는 인천계양, 하남교산, 고양창릉, 남양주왕숙, 부천대장 등 3기 신도시의 조성 일정을 앞당겨 10만 5천호 주택 인허가를 추진할 예정이다. 주택 분양과 직결되는 착공물량도 전년 대비 4배 이상 늘려 5만호 이상을 착공한다.
또한, 도심에서 공급 가능한 다가구 등 매입·전세 임대주택도 전년도 계획보다 1만호 더 많은 6만 7천호를 확보해 공급할 계획이다. 즉, LH는 올해 17만 2000호의 공공주택 확보와 최소 5만호 착공으로 부동산 시장 불안 요소 해소와 함께 정부의 대표 공약 달성에도 속도를 높일 예정이다.
LH는 투자를 확대해 부동산 PF, 원자재 가격 급등, 고금리 등으로 인해 빨간불이 켜진 건설산업 살리기에도 나선다.
금년도 주요 공공기관 전체 투자계획 중 29%에 해당하는 18조 4천억원을 집행하고, 이중 65% 이상을 올 상반기에 조기 집행해 중소 건설사의 자금난 완화에 기여할 방침이다. LH의 이 같은 상반기 투자집행은 역대 최고 수준이다.
주거안정·체질개선 ‘두 마리 토끼’ 잡을까
이와 더불어 부동산 부실 PF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사업장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 모색에도 적극 나선다. LH는 사업성은 있지만 자금 순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업장을 직접 매입해 사업을 시행하거나 시행사·건설사에 파는 방법을 추진 중이다.
이 사장은 이처럼 공급과 투자를 확대하면서도 ESG의 핵심 가치인 ‘안전’을 놓치지 않고 있다. ‘안전’은 공급·투자 보다 우선되는 공공 순기능의 전제조건이다. 이 사장이 올해 신년 메시지에서 지난해 ‘순살아파트(철근누락) 사태’에 대해 ‘병귀신속(兵貴神速)’을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손자병법의 병귀신속은 모든 일에 있어서 신속함이 으뜸가는 병법이라는 뜻으로, 강력한 재발방지대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CNB뉴스에 “이한준 사장이 2022년 말 취임했다는 점에서 작년에 사회적 논란이 된 부실시공(철근누락) 아파트 단지들은 이 사장 취임 훨씬 이전에 진행된 사업장들이지만, 이 사장은 공공기관 수장답게 고개를 숙이고 이 문제를 속도감 있게 개선하고 있다”며 “이 사장이 서민주거안정과 건설산업 체질개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을 지에 건설업계의 시선이 쏠려있다”고 전했다.
(CNB뉴스=황수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