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부기자 | 2023.12.20 09:24:27
김정희 작가는 지난 17일 전남 영암군에 위치한 이안미술관 제1전시관에서, "어둠에서 황혼까지"라는 주제로 제22회 초대 개인전을 오픈했다. 이번 전시는 내년 1월 27일까지 열린다.
2003년 100호 작품 "사양"부터 2023년 완성작이자 20호 메인작품인 "기다림"까지 총 21년간 작업한 작품들 21점이 전시되고 있다. 이 중 100호 작품만 10점이다.
특히 이번 초대전에서는 2016년 100호 작품인 이브(EVE), 루비(LUBY), 3개의 달 연작(100호 3개 작품) 등을 통해 김정희 작가의 일명 "실낙원(LOST PARADISE) 시기"의 귀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또한 "구상회화 시기" 경향을 볼 수 있는 2003년 100호 작품 '사양', 2007년 작 '한가한 날', 2007년 작 'I GAZE AT FLOWER, YOU' 등 초기 맨드라미 작품과 풍경화 시리즈 작품들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 작품들은 20여 년간 작가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열쇠가 되는 작품들이다.
무엇보다도 김정희 작가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맨드라미 시리즈"는 20여 년간 꾸준하게 변화해 온 작가의 작품 경향 속에서도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는 시리즈다. 따라서 혹자는 김정희 작가를 "맨드라미 작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맨드라미는 작가에게 무엇일까?
"어둠에서 황혼까지"라는 주제의 이번 초대 개인전의 메인 작품도 맨드라미 속 밝은 등불을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시종일관 등장하는 각양각색의 맨드라미는 작가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 의미를 한마디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김정희 작가가 간략하게 작성한 '작가노트'를 통해 어느정도 가늠할 수 있다.
김정희 작가는 자신의 작가노트를 통해 "어머니는 맨드라미나 봉숭아를 장독대 근처에 심었다. 뱀들을 막기 위해서였다. 뱀들이 장독대 근처에 자주 출몰하는 이유가 탈피 시기에 간장이나 된장을 먹어야 그 소금기로 허물을 쉽게 벗기 때문이었다. 맨드라미나 봉숭아의 붉은 색감은 시력이 안좋은 뱀에게는 무서운 존재였나 보다. 실제로 장독대 근처에는 불투명한 뱀들의 허물이 있었던 것 같다."라고 맨드라미의 어릴 적 기억에 대해 언급했다.
또한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렸던 나의 어머니에게 맨드라미는 가족을 지키기 위한 호신책이었다. 사랑하는 가족의 양식에 짐승이 닿지 못하도록, 얼마나 소박하고 지고 지순한 마음인가."라며 그 속에 어머니의 마음, 가족의 마음을 담기도 했다.
서영희 평론가가 바라본 김정희 작가는?
김정희 작가의 작품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감상자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작품들을 볼 수 있겠지만, 홍대 미대 교수인 서영희 평론가의 관점을 통해 김정희 작가를 바라볼 수도 있다.
서영희 평론가는 특히 2016년 실낙원 시리즈 중 '3개의 달' 연작에 대해 "이들은 각자의 공간 속에서 내면화된 형상으로 나타나있다. 다만 그들 머리 위에 떠 있는 두 개의 달은 하늘-이곳이 아닌 저곳-에 비추어진 내면의 염원을 상징하는 신화적 기호로, 두 인물을 엮어주는 본원적 생명의 표상이다. ‘월인천강’(月印千江) 속 달은 천 개의 강물에 비추어져도, 결국 본질적으로 하나이지 않던가?"라고 언급했다.
특히 김정희 작가의 작품세계와 관련해 "장 모레아스가 '상징주의 선언문'에서 발표한 미학 노선 즉 예술은 “현상 세계가 아닌 본질 세계로서의 원형(原型)적 관념(Idée)을 지향해야 한다”라는 실천이념을 따르자면, 김정희 작가의 최근작들은 그 같은 범주에 도달한 유추(analogie)와 상징(symbole)의 예술로 여겨지며, 이는 단순히 실재하는 사물의 재현에 치중해온 고답적 사실주의와는 대립되는 태도를 취한 결과임을 깨닫게 된다."라며 맨드라미라는 소재주의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표현 의지와 일치되는 상징의 지평을 확장한 작가로 평가하고 있다.
이번 21년간의 작품 21점의 전시 "어둠에서 황혼까지"는 김정희 작가의 작품세계 단면을 훑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CNB뉴스= 김진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