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좌판 깔아 준 ‘은행 이자장사’
尹대통령 맹비난·금융당국 ‘유체이탈’
오락가락 부동산 정책이 혼란 불러와
은행들 “어느 장단에 춤춰야 할지…”
(CNB뉴스=도기천 편집국장)
“서민들이 마치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 은행들은 일종의 독과점이기 때문에 갑질을 많이 한다”
최근 국무회의,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연달아 나온 윤석열 대통령의 말이다.
이 발언들은 금융권에 나비효과를 몰고 왔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금융지주회사 CEO들을 소집해 “대출이자 부담을 낮출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달라”고 주문했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시중은행장들을 불러 ‘상생금융’에 나서라고 압박했다.
정치권에서는 야당을 중심으로 횡재세 얘기가 나온다. 지난달 14일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한 금융소비자보호법 개정안(일명 횡재세법)에는 금융회사의 순이자수익이 직전 5년 평균 120%를 초과하는 경우 초과 순이자이익의 일부를 징수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시중은행들은 부랴부랴 상생금융안을 내놓고 있다. 하나은행은 소상공인·자영업자 30만 여명을 대상으로 한 1000억원 규모의 금융 지원 대책을 발표했으며, 우리금융그룹은 상생금융 태스크포스(TF)를 발족했다. KB국민은행은 혼합형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최저금리를 3%후반대까지 내렸다. 다른 시중은행들도 주담대 금리를 내리거나 동결하는 추세다.
윤 대통령의 말처럼 은행들이 가만히 앉아서 역대급 이익을 낸 것은 맞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은행권의 1~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38.2% 증가한 19조5000억원이었다. 3분기까지 누적 이자이익은 44조2000억원으로 지난해 동기(40조6000억원) 대비 8.9% 증가했다.
예대금리차 계속 줄어…‘이자장사’ 표현 부적절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단순히 ‘이자 장사’로 폭리를 취했다고 보긴 힘들다.
전국은행연합회 공시에 따르면, 올해 10월 기준 5대 시중은행들의 정책상품(햇살론 등)을 제외한 예대금리차(저축성예금-가계대출간 금리차이)는 채 1%P가 되지 않았다. KB국민은행 0.90%p, 우리은행 0.69%p, 하나은행 0.69%p, 신한은행0.59%p였다. NH농협은행만 1.11%p로 1%P를 넘었다. 인터넷은행, 지방은행, 외국계 은행을 포함 전체 은행의 예대금리차는 1.29%p(신규취급액 기준)였다.
이는 최근 10년간 평균 예대금리차보다 낮은 수준이며, 미국 등 주요 선진국들과 비교해도 낮은 편이다.
심지어 정부가 주관한 정책대출의 경우 일부 역마진이 발생한 경우도 있다. 올해 초 실수요자들의 내집마련 지원을 위해 출시된 특례보금자리론의 현재 최저 우대금리(저소득청년·신혼가구·사회적 배려층 대상)는 연 3.70%(10년)∼4.00%(50년)다.
시중은행 1년 만기 저축성 예금 평균 금리가 3.95%(10월 기준)인 점을 감안하면, 예대마진(예금-대출간 발생이익)이 거의 없거나 일부 구간에서는 손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청년층(만19~34세)을 대상으로 한 청년도약계좌, 청년희망적금 등도 평균 5%대 금리를 주고 있어 역마진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따라서 알려진 것처럼 ‘예금이자는 낮추고, 대출이자는 높여’ 폭리를 취했다고 보긴 힘들다.
그럼에도 은행들이 막대한 이익을 거둘 수 있었던 건 워낙 대출 총량이 컸기 때문. 5대 은행의 대출총액을 보면 2020년 1258조5114억원에서 2021년 1358조6599억원으로 급증했고, 고금리 기조에 들어간 작년과 올해(6월말 기준)에도 각각 1416조1529억원, 1428조9230억원으로 증가했다.
금융권 전체로 확대해보면, 지난 3분기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875조6000억원으로 전 분기 말(1861조3000억원) 대비 14조3000억원(0.8%) 늘었다.
가계 빚 증가는 주담대(주택담보대출)가 이끌었다. 4일 은행권에 따르면, 11월 말 기준 주담대 잔액은 526조2223억원으로, 한 달 새 4조9959억원 불어났다. 주담대 증가 폭 역시 5월 6935억원, 6월 1조7245억원, 7월 1조4868억원, 8월 2조1122억원, 9월 2조8591억원, 10월 3조3676억원 등으로 계속 늘고 있다.
주담대가 증가한 원인은 정부가 출시한 정책대출상품의 영향이 가장 컸다. 주택금융공사는 올해 연말까지 특례보금자리론을 비롯한 정책모기지 공급 규모가 5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부동산 정책 바꿔야 답 나온다”
이런 상황을 종합하면, 은행권 예대금리차는 낮은 편이지만 주담대가 매월 수조원씩 늘면서 막대한 이자이익이 발생한 것이다. 여기에다 신용대출 및 수수료 수입, 프로젝트파이낸싱(PF), 점포 절감에 따른 지출비용 감소 등도 실적행진에 한몫했다.
따라서 은행이 앉아서 돈을 벌게 된 주요 원인은 이자 폭리가 아니라, ‘특례보금자리론’, ‘50년 만기 주담대’ 등 정책모기지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CNB뉴스에 “은행들의 순이자마진(NIM)이나 예대금리차 부분은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오히려 수치상으로는 줄어들었다. 다만 전반적으로 대출 자체가 급증하다 보니 수익이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CNB뉴스와 만나 “정부가 주담대(특례보금자리론 등)를 늘리라고 해서 늘렸는데 지금 와서 이자장사 한다고 비판하니 당황스럽다”며 “좌판을 깔아줄 땐 언제고 지금은 가계대출의 원흉으로 지목하고 있으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정부의 시장 개입이 금융권 전반에 큰 혼란을 주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혼란이 정부의 일관성 없는 부동산 정책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부동산 시장이 급속히 냉각되자 정부는 올해 초부터 각종 부양책을 쏟아냈는데 이중 상당 부분이 금융과 연계돼 있다. 대출규제인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완화, 주택 매입 시 중도금 대출 상한기준(분양가 12억원) 철폐, 특례보금자리론, 50년 만기 주담대 등이 대표적이다.
이로 인해 가계대출이 급속히 증가하자 최근 다시 대출규제에 나서며 은행권을 압박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CNB뉴스에 “가계부채 문제와 은행권 이자장사를 동시에 잡으려면 부동산 정책을 과감하게 수정해야 한다”며 “지금처럼 정부가 부동산에 미련을 둔다면 계속 금융정책이 오락가락할 것이고, 이는 결국 은행권에 큰 부담을 줘 상생금융 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게 된다”고 지적했다.
(CNB뉴스=도기천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