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한국은 잘 조직돼 있는데 이번은 엉망인 것처럼 보입니다”
지난 7일 잼버리 조직위의 오전 정례 브리핑에 참석한 한 독일 기자의 ‘뼈 때리는 질문’이다.
그간 한국은 1991년 세계잼버리대회는 물론 올림픽과 월드컵, 엑스포 같은 초대형 국제행사들을 성공적으로 치러온 과거가 있고,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는 ‘K-방역’이라 불릴 정도로 정부의 모든 조직이 제대로 작동하는 모습을 보여왔는데 이번 잼버리는 왜 이 모양이냐는 질타였다.
팬데믹 기간 동안 비효율적이고 굼뜬 자국의 행정 시스템에 불만을 느끼던 외신 기자들은 연일 한국을 모델 국가로 내세우며 미진한 방역 상황을 질타했고, 한국은 ‘혁신’과 ‘효율’의 대명사였다. 그랬던 한국이 고작 잼버리 정도의 행사에서 온갖 허점을 노출하고 있는 것이 외국인 기자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던 듯 하다.
그리고, 이 질문에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 해줄 수 있는 대답은 “그때 정부와 지금 정부는 다르다”일 것 같다.
전임 문재인 정부가 모든 일을 다 잘했다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평창 동계올림픽을 비롯해 남북 정상회담과 아프카니스탄 현지인 협력자 구출작전, 코로나19 방역 등 수많은 대형 이슈들을 제법 잘 처리해냈다. 그 덕분에 해외 언론들의 한국 찬양 기사 소위 '국뽕 기사’들이 연일 지면과 온라인에 오르내렸다.
이를 두고 반대 진영에서는 ‘쇼통’이니 ‘쇼맨십 정부’니 하는 말로 비아냥댔지만, 정작 그들은 ‘쇼’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무능세력’이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지 고작 1년 3개월이 지났을 뿐이지만, 그 얼마 안되는 기간에 강남역은 물바다가 됐고, 매년 무탈하던 이태원 할로윈 축제에서 159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올해도 오송 지하차도 참사로 14명이 숨졌다.
급기야 잼버리 행사조차 제대로 운영하지 못해 먼 곳에서 한국을 찾은 전세계 청소년들을 온열질환과 벌레, 곰팡이 음식, 부족한 화장실로 고통받게 만들었다. 연일 국내외로 퍼져나가는 뉴스들은 국격을 추락시켰고, 국민들을 자괴감에 빠지게 했다.
올림픽, 월드컵, 엑스포를 문제없이 치렀던 나라가 훨씬 규모가 작은 청소년 행사 하나 치르지 못하는 무능한 나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국내 정치권에 오래 떠돈 말 중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무능으로 망한다”는 말이 있다. 사실 이 말은 “보수가 진보보다 유능하다”는 속뜻을 담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보수가 과연 유능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난 역사 속에서 보수 정부는 경제성장률, 수출증가율, 외환보유 증가율, 1인당 국민총소득 증가율, 취업자 증가율, 최저임금 인상률 등 대부분의 국정 지표에서 진보 정부보다 부족한 성과를 거둬왔다. ‘보수가 유능하다’는 건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허상에 불과하다.
그리고, 현 윤석열 정부는 역대 그 어떤 보수 정부보다도 무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제성장률은 매달 하향치를 경신하고 있으며, 수출도 계속 감소해 무역수지는 적자의 늪에 빠진 지 오래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10위에서 13위로 급락했다. 현재 한국의 경제규모는 10년 전으로 후퇴한 상태다.
경제나 외교 같은 거창한 영역은 짧은 기간에 개선시키기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해도 최소한 ‘안전’, ‘재난 대응’ 같은 영역에서는 유능한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하지만, 윤 정부는 위기 상황이 닥쳐도 이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아무런 대책도 강구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 결과는 대부분 국민 생명의 피해로 이어졌다.
이미 지난 박근혜 정부의 실패로 ‘보수의 유능’을 믿지 않는 사람이 많아졌다. 현재까지의 윤석열 정부도 비슷한 실패의 길을 걷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정부의 실패가 단지 특정 정치인, 정치진영의 실패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는 데 있다.
아무쪼록 윤 정부가 검찰을 이용한 반대세력 억누르기 외에도 잘하는 것이 있다는 평가를 받길 바란다. 우선은 재난 대응 분야 만이라도.
(CNB뉴스=정의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