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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슬립테크에 거는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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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선명규기자 |  2023.03.10 09:19:25

사진=Pixabay

사람이 잠을 못 자면 어떻게 되는지 본 적이 있다. 군 시절 무박 4일 훈련을 했을 때였다. 전술훈련, 기동, 철조망 설치와 제거 같은 육체적 행위를 낮밤 없이 했다. 하루 평균 행군 거리만 50킬로미터쯤 됐다. 걷고 또 걷고 들고 나르고 뛰기를 반복했다. 전방의 1월은 살갗이 아프도록 추웠다. 훈련 첫날 가장 참기 어려운 것은 물집 잡혀 아린 발바닥이 아니라 추위였다.

둘째 날 밤부터 기현상을 목격했다. 야간 행군 도중 저기 우리 집이 있다며 대열을 이탈해 저수지로 향한 병사가 신호탄이었다. 새벽에는 철조망 기둥을 끌어안고 가만히 있는 후임을 발견했다. 뭔가 잘못된 게 분명하다고 생각해 달려가 흔들었더니 그는 침을 흘리며 “안 잤습니다!”를 외쳤다. 누가 봐도 잘 잔 얼굴이었다.

나의 문제는 예기치 못한 것에서 발생했다. 발음이었다. “야! 느가 사래(누가 자래), 므여!(모여) 흘발!(출발)”처럼 발음이 뭉개졌다. 마지막 날 복귀 행군하면서는 나 역시 집을 봤다. 홀린 듯이 눈이 가고 발이 갔다. 거기는 소똥 뒹구는 축사였다. 사람이 잠을 못 자면 어떻게 되는지 이때 처음 경험했다. 헛것이 보이고 발음이 자꾸 새며, 한마디로 모든 감각이 제 기능을 못하게 됐다. 무감각한 인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때부터 잠에 민감해졌다. 잘 못자면 어떻게 되는지 겪어봤기 때문이다. 누군가 발명해줬으면 하는 항목 중에 꿀잠 유도장치가 추가된 것은 전역하고 나서다. 이전에는 순간이동이나 하루치 식사를 대신할 수 있는 알약의 등장을 꿈꿨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가장 필요하고 가장 실현 가능성 있는 것은 숙면 유도 장치이리라. 침대에 누워 이불처럼 덮거나 이마에 얹으면 스르르 잠이 드는 뭐 그런? 깨면 아주 상쾌하고 뭐 그런? 생각만 해도 정말 좋지 않겠습니까?

‘불면인’이 국내에 몇 명이나 되는지는 몰라도 관련 산업은 꽤 크다. 한국수면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수면 시장 규모는 3조 원대였다. 2011년 4800억 원 수준에서 수직상승한 것이다. 수요를 따라 돈이 몰린 것일 테니 굳이 ‘불면인’을 세어보지 않아도 얼마쯤 되는지 감이 온다.

그런데 희소식은 요원했다. 도심항공모빌리티(UAM)를 개발하고 인간의 직업을 위협하는 AI가 나왔음에도 왜 잠에는 관심이 없으신지요. 드디어, 라고 할까.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 CES에서 희망을 봤다. 수면의 질을 높이는 ‘슬립테크’(Sleeptech) 제품들이 쏟아졌다. 코골이를 인식해 기도를 열어주는 베개, 뒤척여도 몸의 하중이 실리는 부위의 압력을 조절해주는 에어매트리스 같은 것들이다. 특히 유용해 보인 것은 LG전자가 공개한 ‘브리즈(brid.zzz)’이다. zzz. 이름부터 졸린데, ‘고객에게 산들바람(breeze)과 같이 상쾌한 아침을 맞게 한다’는 의미로 지었다고 한다. 무선이어셋처럼 귀에 착용하면 수면에 최적화된 뇌파가 흘러나와 꿀잠으로 빠져드는 원리다. 설명과 효과가 일치한다면 불면은 이제 과거의 일이 될 것이다.

잠은 중요하다. 하루에 네댓 시간만 자고 일하다가 치매를 앓은 처칠만 봐도 그렇다. 그가 애주가였다는 사실은 잠시 빼놓자.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질병을 얻은 원인은 전부 부족한 수면 때문인 것 같다. 어느 시장이든 신조어가 나오면 일단 뜬다는 얘기인데, 부디 훨훨 날았으면 좋겠다. ‘슬립테크’ 말이다. 오늘도 퀭한 눈을 뜨고 있는 전국 ‘불면인’들을 위해서.

(CNB뉴스=선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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