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주 故임성기 회장의 미망인 송영숙 관장
사재 출연해 600평 규모 ‘뮤지엄한미’ 개관
20년전 설립한 한미사진미술관 계승해 탄생
사진 통해 인간존중·가치창조 창업정신 이어
모이지 말고 움직임도 줄여야 하는 ‘자제의 시대’가 저물어 갑니다. 코로나 엔데믹(풍토병)을 맞은 기대감 때문일까요? 재밌고 새롭고 신선한 곳이 봄 새싹 나듯 생겨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움츠려서 아직 몸이 덜 풀렸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CNB뉴스가 먼저 가봅니다. 가서 발과 눈과 손과 귀에 담은 모든 것을 전해드립니다. 이번에는 서울 삼청동 한미약품 미술관(뮤지엄한미)에서 진행 중인 ‘한국사진사 인사이드 아웃, 1929~1982’에 다녀왔습니다. <편집자주>
‘뮤지엄한미’는 한미약품이 2003년 한국 최초의 사진 전문 미술관으로 설립한 한미사진미술관이 모태다. 제약사가 사진미술과 무슨 상관이냐는 의구심이 들겠지만, 한미의 창업정신이 오롯이 ‘인간’에게 맞춰져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 기업과 예술 사이의 연관성이 낯설지 않다. 생명을 존중하는 제약 본업의 바탕이 인간의 무한한 창조성과 겹쳐지기 때문. 그중에서도 사진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창조와 도전정신의 극치다.
이런 배경에서 한미약품은 한미사진미술관을 통해 사진작가들의 창작과 전시 활동을 지원하며 사진예술의 대중화에 기여해 왔다. 전시와 소장품 수집, 작가 지원사업, 출판 및 교육사업 등을 펼치며 한국 사진계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힘써왔다.
그러다가 마침내 ‘사진예술의 확장과 다가가는 미술관’이라는 목표를 내걸고 ‘뮤지엄한미’로 새롭게 태어났다. 뮤지엄한미는 지난해 12월 21일부터 오는 4월 16일까지 개관 기념으로 ‘한국 사진사 인사이드 아웃, 1929~1982’전(展)을 열고 있다.
이번 전시는 1929년부터 1982년에 이르는 50여 년의 한국 역사를 사진 200여점, 아카이브 100여점으로 전시했다. 2013년, 2018년 두 차례에 걸쳐 수집한 자료체(corpus)에 의거하여 한국사진사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았으며, 한국 사진 역사를 새롭게 고찰하려는 의도와 예술계가 함께 공유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획되었다.
#풍경 삼청동과 잘 어울려…‘물의 정원’ 이색적
CNB뉴스는 지난 21일 이곳을 방문했다. 가는 길 내내 골목길 사이로 한옥식 건물과 현대식 간판이 조화를 이뤘다. 하지만 이런 풍경이 잘 어울리는 동네 삼청동(서울 종로 삼청로길). 이곳은 이색적인 갤러리와 카페들이 즐비하다. 아늑한 골목길 사이로 뮤지엄한미 삼청이 조용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순환형의 동선으로 만들어진 건축물이 보인다. 실제 내부의 관람객들은 흐트러짐 없이 전시된 작품 하나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이도 있다.
미술관은 밖에서 보았을 땐 벽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원래 내부에 들어서면 한국 전통 가옥의 중정처럼 가운데 ‘물의 정원’의 자리가 있다. 사전 조사와는 다르게, 정원 공간에 물이 보이지 않는다. 뮤지엄 학예실 관계자는 “물의 정원이 앞으로 유지될 계획이지만, 현재 유영호 작가 작품 설치 때문에 빼놓은 상태다”라고 말했다.
또한, 건물 중심에는 이 조형물을 두고 세 개의 동이 3차원으로 교차한다.
이동공간은 공간의 흐름에 따라 관람객이 순환하게 설계돼있다. 개방 공간은 지하 1층과 지상층, 2층 총 3개의 층이다. 지하 1층에는 복도형 전시실과 멀티 홀, 카페와 아트스토어가 있고, 지상층에는 전시실 3개와 개방 수장고가 있다.
이번 전시는 연대기 순으로 구성됐다. 지루한 연대기 표를 일일이 살펴보는 이는 없지만, 꼼꼼하고 세부적인 묘사는 훌륭했다. 관람객은 로비에서 오른쪽으로 들어가 1전시실부터 관람을 시작한다. 한국 사진이 어떤 제도적 조건과 문맥 속에서 역사를 일궈 갔는지를 기념비적인 작품들을 통해 보여 준다. 현란한 스킬도 없는, 투박한 흑백 스트레이트 사진 속에 담긴 옛 풍광을 들여다본다. 먼지처럼 사라졌을 사진 속 인물들을 만나며 잠시나마 그분들의 마음을 느끼곤 한다.
빈티지 느낌의 ‘흑백’ 출력물은 사건의 진지한 모습을 더한다. 제목에 연대기가 있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한국 제도의 안팎을 샅샅이 뒤집어 보고, 사실적 기록에 집착한 것은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유 송 관장의 사진 향한 열정…창업정신 계승
한미약품은 ‘인간존중·가치창조’라는 경영이념의 일환으로 20여년 전 한미사진미술관을 개관했다.
한미약품 창업주 고 임성기 회장의 부인이자 사진작가인 송영숙 관장(현 한미약품 회장)은 올해 미술관 개관 20주년을 앞두고, 서울 삼청로에 사비를 출연해 600평 규모의 독립된 미술관을 건립했다. 지난해 12월 14일 모습을 드러낸 이곳이 바로 ‘뮤지엄한미 삼청’이다.
송 관장은 대학 시절 사진동호회 ‘숙미회’에서 활동했다. 4학년 때 잠시 활동을 접었을 때를 제외하곤 줄곧 사진계와 호흡해 왔다. 직접 사진 작업을 하면서 연 개인전도 수차례.
송 관장은 2017년 프랑스 문화예술 공로훈장 슈발리엔장을 수상했으며, 2019년에는 이탈리아 베니스를 여행하면서 ‘Another...Meditation 4(2019)’ 작품을 남기는 등 사진작가로서의 실력을 발휘했다.
‘Another...Meditation 4’는 송 관장이 2019년 이탈리아 베니스를 여행할 때, 투병 중이던 남편과 같이 본 하늘을 담은 작품이다. 마치 자연의 한순간을 빠르게 낚아채듯, 속도감으로 이미지를 포착한 게 송 관장의 특유의 시선과 순발력이 녹아든 작품이다. 남편에 대한 추억과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듯하다.
이같은 송 관장의 사진에 대한 열정과 인간존중·창의도전 창업정신을 기반으로 한미약품의 사진예술 지원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뮤지엄한미 관계자는 CNB뉴스에 “차기 전시로 작년 9월 작고한 윌리엄 클라인(William klein) 사진작가 회고전을 준비하고 있다”며 “사회적 울림이 큰 작가들의 전시를 꾸준히 준비해 인간과 생명, 창의를 존중하는 한미약품의 정신을 이어 가겠다”고 말했다.
(CNB뉴스=김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