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의 여왕’은 먹기 싫은 콩과 보기 싫은 동생이라는 두 가지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 아이가 벌이는 상상 놀이 그림책이다.
독차지했던 엄마 아빠의 사랑을 새로 생긴 동생에게 빼앗기고, 먹기 싫은 콩 한 접시를 앞에 둔 주인공은 이제부터 공주에서 벗어나 여왕이 되기로 결심한다.
여왕이 궁전에서 삶은 콩을 먹고 있을 때, 세 명의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들이 찾아온다. 긴 여행으로 배가 고픈 마트료시카들에게 여왕은 삶은 콩을 각각 나눠 준다. 맨 처음 방문한 제일 작은 마트료시카에게는 콩 한 알, 두 번째 방문자인 작은 마트료시카에게는 콩 두 숟가락, 마지막 방문자인 아주 큰 마트료시카에게는 남은 콩을 접시째 몽땅….
고마움의 표시로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들은 여왕이 좋아하는 달콤한 사탕을 선물한다. 게다가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들은 동생에 대한 여왕의 불만에 공감하면서, 동생이 숲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강물에 빠졌고, 결국 사자에게 잡아먹혔다고 말해 준다.
이 그림책은 여왕이 궁전에서 세 명의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를 연이어 만나는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다. 각 장면마다 똑같은 대화가 반복되면서 생겨나는 운율이 소리 내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한다. 여왕과 마트료시카들의 대화는 반복 변주되면서 긴장을 고조시키는데, 엄마 아빠가 등장하는 마지막 현실 장면에서 유머러스하게 해소되면서 안도감을 준다.
‘콩의 여왕’은 연극풍의 군더더기 없는 대화만으로 싫어하는 콩이나 동생에 대한 주인공의 감정을 솔직하지만 과장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어린이들이 일상에서 겪게 되는 미움이나 불만의 감정은 억누르거나 외면한다고 해서 해소되지 않으며, 자칫 서로를 향해 상처가 되는 다툼으로 이어질 수 있다.
생명력의 근원인 욕망과 그 욕망의 충족과 결핍의 간극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감정들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굴레다. 그러나 이 그림책에서 보여 주듯이 문학이야말로 분노나 증오의 감정을 정화시켜 웃음과 사랑으로 치환해 내는 힘을 지니고 있다.
색연필, 파스텔 등으로 그린 그림에 컴퓨터 그래픽으로 채색과 콜라주를 더한 레티샤 에스테반의 일러스트는 어린이의 감성을 솔직하게 드러내 웃음을 머금게 한다. 특히 싫어하는 콩에 대한 불만과 동생에 대한 시샘으로 일그러진 심술쟁이 여왕의 표정이 아빠를 바라보는 현실 장면에서는 귀여운 공주의 표정으로 돌변해 웃음이 터지게 한다.
그림의 색감 변화에서 주인공의 감정 상태가 변하는 것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어두운 무채색이었던 아이의 뒷모습으로 시작한 첫 장면은 뒤로 가면서 화려한 색깔로 변해 마지막은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는 주인공의 앞모습으로 마무리된다.
풍부한 감성을 담고 있는 그림과 긴장감 있는 간결한 글이 짝을 이룬 이 그림책은 반복해 읽을수록 어린이들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한편, ‘콩의 여왕’은 2022년 쿠아트로가토스 상을 수상했다. 쿠아트로가토스 상은 미국의 쿠아트로가토스 재단이 매년 그해 에스파냐어로 발간됐거나 라틴아메리카 출신 작가가 쓴 전 세계 어린이 책 가운데 선정하는 그림책 상이다.
빅토르 가르시아 안톤 지음 / 레티샤 에스테반 그림 / 유아가다 옮김 / 40쪽 / 1만3500원 / 지양사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