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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니&비즈] 덖음은 오븐으로…아모레퍼시픽, 차차(茶茶) 알게 되는 ‘오설록 티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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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선명규기자 |  2021.12.04 12:04:36

차(茶)에 대한 관심 갈수록 ‘쑥쑥’
아모레가 문 연 차의 공간 가보니
전통과 신식의 조화…조제의 진화
김훈 “차는 살 속으로 스미는 상징”

 

 

아모레퍼시픽이 서울시 종로구 북촌에 연 오설록 티하우스 1층. ‘차향의 방'은 차의 실험실을 떠올리게 한다. 이곳에서는 전문가인 '티 마스터'가 취향에 따라 차를 추천해준다. (사진=선명규 기자)


모이지 말고 움직임도 줄여야 하는 ‘자제의 시대’가 저물어 갑니다.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에 대한 기대감 때문일까요? 재밌고 새롭고 신선한 곳이 봄 새싹 나듯 생겨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움츠려서 아직 몸이 덜 풀렸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CNB가 먼저 가봅니다. 가서 발과 눈과 손과 귀에 담은 모든 것을 전해드립니다. 이번 편은 전통 차를 오감으로 체험한 이야기 입니다. <편집자주>


 


“다도(茶道)의 세계가 어렵구나”

“아니야. 절대 그러면 안 돼”

배우 성동일이 난색을 표하자 류승룡이 손사래를 친다. 최근 방영된 tvN ‘바퀴 달린 집3’의 한 장면. 다도에 조예가 깊은 류승룡이 다기를 펼치며 개완·세차·공도배 등의 용어를 설명하던 참이었다. 이 단어들의 뜻은 차례로 뚜껑이 있는 찻잔·마시기 전 찻잎을 씻는 과정·차의 맛과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주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 시작부터 성동일이 지레 겁먹자 거리감 느끼지 말라는 당부를 한 것이다. 말에 힘을 싣기 위해 차(茶)와 밥(茶)자를 쓰는 ‘다반사(茶飯事)’를 예로 든다. 차 마시는 일을 어려워 말고 예사롭게 여기라는 뜻이다.

하지만 종류도 많은 잎차와 복잡한 절차에 부담을 느낀 이가 어디 성씨 뿐이랴. 차에는 이처럼 작정하고 배워야 한다는 꼬리표가 붙는다. 거리감을 좁힐 순 없을까? 최근 아모레퍼시픽이 종로구 북촌로에 연 오설록 티하우스에서 특별할 것 없는 차의 세계를 접했다. 전문가가 취향을 선별해주는 ‘티 큐레이션’(Tea Curation)이란 통로를 통해.
 


처음은 눈으로 음미



첫 선택은 눈으로 한다. 1층 ‘차향의 방’ 한쪽에는 정갈한 부엌이 자리 잡고 있다. 식탁 위 나무판에 마른 잎과 과일들이 둥그런 그릇에 소박하게 나눠 담겼다. 한 가지 잎차를 비롯해 두 가지 이상이 섞인 블렌딩티까지 종류가 12개나 된다. 녹차, 캐모마일, 호박, 배, 도라지 등이 달리 불리는 이름만큼이나 개성있는 색깔로 늘어서 있어 눈맛부터 좋다.

눈으로 미감을 추측하는 와중에 보다 실체적인 설명은 ‘티 마스터’가 들려준다. 녹차의 어린잎을 구우면 떫은맛보단 구수한맛이 부각된다든지, 티스푼 하나(약 2g) 정도의 양을 90도 물 200ml에 2분간 우리면 최적의 맛을 찾을 수 있다든지 등이다. 초심자에게 요긴한 정보다.

여러 원물이 섞인 차를 고르면 티 마스터가 손수 블렌딩(blending. 두 개 이상의 성분을 혼합하는 과정) 해준다. 미리 구워놓은 재료를 하얀 종이에 흩뿌리고 누런 나무 도구를 양손에 쥔 채 뒤섞는다. 그래서 손수다. 마침내 충분히 한 몸이 된 원물들을 은빛 깔때기에 통과시켜 봉투에 담으면 비로소 온탕에 뛰어들 준비를 마친 차가 된다.

평소 관심있는 이라면 눈치 챘을 것이다. 여기까지 오다 빠진 과정이 있다. 찻잎을 볶는 ‘덖음’이다. 중요한 절차다. 소설가 김훈은 책 <자전거 여행>에 썼다. “차 맛은 이 ‘덖음’ 과정에서 크게 달라진다. 찻잎에는 독성이 있다. 그래서 차나무밭에는 벌레가 없고, 놓아먹이는 염소들도 차나무밭에 얼씬거리지 않는다. 덖음은 차의 독성을 제거하고, 잎 속의 차 맛을 물에 용해될 수 있는 상태로 끌어내고, 차를 보관 가능하게 건조하는 과정이다.”

그만큼 중요한데 과연 간과했을까? 그렇지 않다. 식탁 옆에 솥이 하나 있다. 그 안에는 푸른 녹차가 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 여기서 덖진 않는다. 일종의 연출이다. 티 마스터는 “실제로는 옆에 있는 오븐에서 덖는다. 원래는 솥으로 굽는 게 정확하다고 보여주는 용도”라고 설명했다. 전자기기가 전통과 신식의 조화를 이뤄낸 것이다.
 

12가지 찻잎에서 취향에 맞게 고르면 '티 마스터'가 블렌딩 해준다. (사진=선명규 기자)

 


취향의 발견



1층이 차의 취향을 찾아가는 여정이면 올라가서는 완성된 차를 맛 볼 수 있다.

2층 ‘찻마루’에서는 이 매장이 위치한 북촌에서 영감받은 차와 음식을 내놓는다. 한옥마을이 들어선 북촌을 상징하는 기와무늬 녹차 찰 와플 플레이트와 4색 디핑 라이스 디저트 등이다.

3층은 사적 공간으로 차별화를 뒀다. ‘기쁘고 즐거운 모임’이란 뜻의 가회다실은 방처럼 이뤄졌다. 반대편에 위치한 ‘바설록’에서는 실력 뛰어난 바텐더들이 만들어 낸 논알콜 티 칵테일을 만나 볼 수 있다.

3층의 백미는 전망. 아모레퍼시픽 측은 “창밖으로 보이는 북촌의 한옥 뷰와 함께 차를 가장 아름답게 즐길 수 있다”고 했다.
 

국내 정상급 바텐더들이 만든 논알콜 티 칵테일을 만나 볼 수 있는 3층‘바설록'에서는 북촌 일대 한옥 전망을 곁들일 수 있다. (사진=아모레퍼시픽)

 


느림의 미학



1인당 연간 약 353잔을 마셔 세계 1위 커피 소비를 자랑하는 한국에서 차의 인기가 뜨거워지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다도’를 치면 게시물 9만6000개 이상이 쏟아지고, 한 지자체가 유튜브에 올린 5분 남짓한 다도 순서 영상은 조회수 6만8000회를 넘겼다.

인기 비결은 느림의 미학. 한 업계 관계자는 “찻잎을 하나하나 고르고 천천히 우려야 마실 수 있는 차는 대표적인 슬로푸드”라며 “빠르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차를 준비하고 음미하는 시간을 통해 비로소 쉬는 느낌을 받는 이가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후루룩 마시는 일반적인 음용과의 차이가 바로 이런 더딤에 있다. “차는 살아 있는 목구멍을 넘어가는 실존의 국물인 동시에 살 속으로 스미는 상징이다”라는 김훈의 문장처럼 차는 차차 알아갈수록 미감의 영역에서 체화의 지대로 전이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CNB=선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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